[이기호의 미니픽션] 스무살 지방러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스무살 지방러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최종민은 2002년 생으로 올해 2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태어난 곳은 광역시이지만 다섯 살 이후부턴 쭉 현재 살고 있는 군 소재지에서만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8년 전 다니던 재활용공장에서 폐지 더미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그 바람에 허리를 다쳤고 이후 줄곧 자리보전한 채 방 안에서만 누워 지냈다. 최종민의 아버지는 4년 전 당뇨합병증으로 세상을 떴다. 그의 어머니는 식당 설거지와 공공근로를 병행하다가 2년 전부터는 요양병원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새벽 5시에 출근했다가 오후 7시쯤 퇴근했는데, 그 일을 얻은 것을 아주 다행으로 여겼다.
최종민이 나온 고등학교는 전체 학생 수가 47명이었고, 그중 고3이 19명이었다. 그 19명 중 수도권 소재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은 2명. 한 명은 아버지가 군청에 다녔고, 다른 한 명은 읍내 대성 한의원 집 둘째 딸이었다. 나머지 17명 중 8명은 인근 광역시에 위치한 국립대와 사립대에 진학했고, 5명은 같은 군 소재지에 주소를 두고 있는 전문대에 진학했다. 나머지 4명은 학기 초부터 거의 학교를 나오지 않은 친구들이었다. 최종민은 전문대 응급구조학과에 진학했다. 담임교사의 권유로 원서를 썼는데, 입학한 이후 3번 정도 학교에 간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1학기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아 당황하기도 했다.
“그 치킨집에서 알바 시작한 건 지난 6월부터였어요. 원래 제 고등학교 선배가 하던 일인데, 그 형이 군대 가는 바람에 제가 들어갈 수 있었던 거죠. 그 전에는 친구들하고 광역시에 나가서 이삿짐센터나 물류창고 알바도 몇 번 했고요. 출퇴근하는 게 어려워서 다 그만뒀지만…여긴 피시방도 편의점도 알바 잡기가 어렵거든요. 그냥 다 가족이 돌아가면서 일해요. 그러니까 저 같은 친구들은 할 일이 없죠. 그렇다고 우리가 돈이 필요 없는 건 아니잖아요? 지방에 살아도 매달 내는 휴대폰값은 똑같잖아요? 진로니 꿈이니 그런 것도 다 돈 걱정이 없어야 생각할 수 있죠…그냥 매일 친구들하고 만나요. 우리 동네도 빈집이 많거든요. 제 친구 할머니가 혼자 살다가 돌아가셔서 비어 있는 집이 있는데, 매일 거기에서 만나요. 뭐 라면도 끓여 먹고 막걸리도 마시고 배그도 했다가 유튜브도 봤다가 그러다가 그냥 거기에서 잘 때가 많아요. 시골이어서 다 아는 얼굴이고 하니까 밖에 돌아다니기도 그렇고…에이, 다 쓸데없는 말만 하죠. 가상화폐가 어떻다, 서울에 지금 올라가면 굶어 죽는다, 자영업자 다 망해서 우리 같이 지방에서 올라간 사람들은 월세만 빚지고 내려온다더라, 뭐 그런 얘기나 하고 있는 거죠. 맨날 똑같은 얘기.”
“진만이 형은…그러니까 저보다 더 안쓰럽더라고요. 형이 받는 월급은…그러니까 그게 시급으로 치면 정말 형편없거든요. 제 친구들도 아무리 돈이 궁해도 그렇겐 일 안 하는데 형이 그냥 덥석 잡은 거죠. 거기에다가 오갈 곳도 없어 보였고…그런데 이 형이 성격이 좋더라고요. 웃긴 말도 자주 하고, 꼰대 같지도 않고…그래서 금세 친해졌어요. 일 끝나고 형이랑 저쪽 뚝방에 가서 소주도 두 번 마시고, 제가 오토바이 뒤에 형을 태우고 혁신도시로 드라이브도 나갔고….”
“없다는 건 알고 있었죠…형이 먼저 말했거든요. 면허도 없고, 오토바이도 몰아본 적 없다고요. 여기 치킨집 오토바이들이 다 50㏄ 스쿠터거든요. 초보자도 몰기는 쉬운데, 그래도 면허는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저도 일부러 3만원 주고 원동기 면허를 딴 건데…네…사장님도 알고 있었죠. 형이 면허 없다는 거….”
“모르겠어요…사장님은 형이 스스로 배달을 나간 거라고 하는데…그날 하필 배달이 밀려서 저도 매장에 없을 때 일어난 일인데…그건 제가 쉽게 말할 수 없는 문제인 거 같아요…사실 사장님이 제 친구 삼촌이거든요….”
“저도 그 일 있고 나서 바로 그만뒀어요. 엄마도 걱정하고…또 저도 그냥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치킨집 나가면 자꾸 진만이 형 얼굴 떠오르고…저도 그냥 조만간 경기도로 올라가려고요. 서울은 어려워도 경기도엔 물류창고 같은 곳에 일자리가 꽤 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가 월세도 좀 싸고…거기엔 최소한 아는 사람들은 없겠죠.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거 같아요. 여긴 좀 지겨워요. 모두 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ㅣ경향신문 2021.10.01
/ 2022.05.14(토)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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