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우의 여행으로 쓴다]몽테뉴의 여행법 (daum.net)
[노명우의 여행으로 쓴다] 몽테뉴의 여행법 /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요즘 여행책을 자주 읽는다. 다른 사람이 쓴 여행책이라도 읽어서 대리만족하기 위해서다. 고육지책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책으로 여행해 보니 몰랐던 장점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책으로 여행하면 일단 방역당국이 권장하는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또한 여행경비에 비해 책값은 정말 저렴하다. 공항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 요금이면 책 한 권은 너끈히 살 수 있으니 책으로 하는 여행은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여행하려면 긴 휴가가 필요하지만, 책은 틈나는 시간에 짬짬이 읽어도 되니 그것도 편리하다.
몽테뉴의 여행기를 읽었다.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타고난 여행가였다. 1580년 6월22일 그의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하는 책 《수상록》 집필을 끝낸 몽테뉴는 여행을 떠났다. 보르도 근교의 주거지를 출발해 파리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일대를 지나 다시 몽테뉴의 성으로 돌아오는 데 1년 5개월이나 걸린 대장정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여덟. 평균수명이 지금과 다른 시절이니 마흔여덟살은 결코 젊은 나이가 아니다. 주변 사람은 그를 말렸다. 누구는 객사, 즉 여행 중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나보다. 그래도 그는 떠났다. 《수상록》에서 그는 말했다. “젊을 때는 즐거움을 좇아도 된다고 하면서 노년에 이를 금하는 것은 부당하다. 젊었을 때 나는 생기발랄한 열정을 신중함 뒤로 감췄으나 나이 들어선 우울감을 떨치려 방탕을 즐긴다.” 그가 나이 들면서 불가피하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즐기는 방탕은 다름 아닌 여행이다.
몽테뉴 식 방탕의 비법을 배우려고 《몽테뉴 여행기》를 읽기 시작했는데, 책은 예상 밖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다른 여행기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국적 풍경을 찬양하는 구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베네치아에서도 그는 호들갑 떨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베네치아는 생각보다 덜 감탄스럽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피렌체에 대한 그의 평가도 인색하다. “특별히 아름다운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딱 잘라 말한다. 로마의 유적을 보는 관점도 다르다. 후대의 여행객들이 찬탄을 금하지 못하는 고대 로마의 흔적에 대해 “한낱 그 국가의 무덤에 지나지 않는다”고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그는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여행의 기쁨을 맛보고 환호한다. 몽테뉴가 발견한 로마의 뛰어난 점은 로마가 다양한 국적을 지닌 사람들로 이뤄졌고,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다름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그가 발견한 로마의 매력이다.
여행하는 몽테뉴의 눈은 다양성을 내다보는 열린 창이다. 그는 여행하는 지역마다의 고유한 테이블 매너와 음식의 다양함을 발견한다. 프랑스 요리는 다양한 음식 중 하나로만 취급된다. 다양함은 다양함일 뿐 그는 다양성에 높낮이를 부여하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은 어떤 다름을 목격하고도 그는 덤덤하게 반응하며, 귀는 늘 열려있다. 비트리 르 프랑수아라는 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그는 낯선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처럼 옷을 입고 살기로 결심한 여자가 있었고, 그 사람이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나 후에 발각되어 사회의 통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는 놀라지 않는다. 로마에서는 심지어 동성결혼을 목격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도 그는 해괴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건조한 기사체로 자신이 들은 이 특이한 사례를 몽테뉴는 이렇게 전한다. “미사가 진행되던 중에 남자들끼리 혼인을 올렸는데 우리 프랑스에서 결혼을 할 때처럼 동일한 의식을 진행했고, 일반적인 결혼식에서 읊는 복음을 똑같이 읽고 나서는 바로 잠자리에 들어 같이 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몽테뉴에게 여행이란 향락을 위한 핑계도, 현실 도피의 구실도 아닌 다양성과 다름의 가치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렇기에 다양성을 눈으로 확인하고 다름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과정의 귀만 있다면, 몽테뉴처럼 하는 여행은 팬데믹 시대에도 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이미 몽테뉴 식의 여행하는 이유를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지 자문해 본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ㅣ경향신문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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