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우의 인물조각보]수집하는 사람 (daum.net)
[노명우의 인물조각보] 수집하는 사람 /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다. 티끌, 즉 작은 부스러기나 먼지조차도 한데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태산이 될까 하여 실제로 티끌을 모으는 사람은 세상에 없겠으나 그게 무엇이든 ‘무엇인가’를 모으는 데 집중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내 이름은 미미’라는 아리아로 유명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원작은 앙리 뮈르제의 같은 이름의 소설이다. 뮈르제는 19세기 파리에서 보헤미안이라 자칭했던 사람들의 생활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자칭 ‘위대한 철학가’ 귀스타브 콜린, ‘그림의 거장’ 마르셀, ‘음악의 대가’ 쇼나르, 그리고 ‘거룩한 시인’ 루돌프가 《라 보엠》에 등장하는 보헤미안이다. 이 4명으로 이루어진 보헤미안 ‘세나클’(살롱에 모여 문학에 대해 토론하는 문학동인) 중 미미의 손을 잡고 ‘그대의 찬 손’을 부르는 시인 루돌프가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보헤미안은 주류의 삶을 거부하는 생활철학을 신봉했기에, 보헤미안이 되기 위해서는 남들에게는 없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칭 보헤미안인 철학자 콜린은 책을 태산이 되도록 수집한다. 콜린은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만 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응한다. 강의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책을 살 작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수입의 거의 전부를 책 구입에 쏟아붓는다. 파리 센강의 콩코드 다리에서 생 미셸 다리 사이에 늘어선 서점 상인 사이에서 콜린은 유명인사다. 단 하루도 책을 사지 않고 그 길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기에, 그 거리의 서점 상인은 모두 콜린을 알고 있다. 뮈르제는 콜린의 수집벽을 이렇게 묘사한다. “만일 새로운 책을 한 권이라도 들고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면 그는 습관처럼 티투스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아, 오늘 하루는 완전히 공쳤어.”
이른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의 법칙은 수집에도 적용된다. 콜린의 눈에 책은 보석과 다를 바 없으나, 다른 사람은 책을 그저 티끌로 간주할 수도 있다. 무엇에 ‘꽂혀’ 무엇인가를 탐닉하고 수집의 열정에 빠져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판단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조선의 선비 이서구는 앵무새의 매혹에 푹 빠졌고, 유득공은 비둘기에 ‘꽂혀’ 비둘기를 탐구했고 비둘기 사육법을 《발합경》이라는 책에 모두 담았다. 담배가 ‘최애템’이었던 이옥은 담배에 관한 모든 지식을 수집해 《연경》을 썼다. 그들은 고질병(癖)이 있는 바보(痴), 즉 벽치라고 취급받았으나 결국 일가를 이루었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한 귀한 것을 제대로 보는 귀한 눈이 있었던 간송 전형필은 수집으로 인한 탐닉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간송이 없었다면 《훈민정음 해례본》과 《혜원 전신첩》은 전설로만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수집되어야 마땅한 대상은 정해져 있지 않다. 수집의 열정을 일깨우는 대상이라면 무엇이든 수집 가능하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는 구두 수집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었다. 이멜다는 무려 3,000켤레의 구두를 남겼다고 알려졌다. 남긴 구두의 숫자가 놀랍기만 하지만, 이멜다의 구두 컬렉션에선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에 있는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이 불러일으키는 경외감을 느낄 수 없다. 돈만 많으면 구두 3,000켤레를 수집하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에게 이멜다의 구두 컬렉션은 ‘강박적 쇼핑욕구’를 뜻하는 ‘오니오마니아(oniomania)’의 대표적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돈만 쏟아부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상품 싹쓸이’를 우리는 수집이라 하지 않는다. 결제 가능 한도가 넉넉한 신용카드만 있으면 누구나 한정판을 쇼핑할 수 있지만, 수집하려면 돈 이외에도 식견이 필수적이다. ‘오니오마니아’는 자신이 수집가라고 착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쇼퍼홀릭’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만년필도, 자동차도, 오디오도, 커피 잔도, 카메라도, 운동화도 자신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대상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모을 수 있다. 연필이 좋다면 연필을 모아도 상관없다. 코카콜라 병도 수집 대상이 될 수 있다. 스타벅스 텀블러이면 어떠하며 블루보틀의 굿즈라고 해서 수집 대상이 안 될 이유는 없다. 애니메이션 주인공 피규어를 모은다고 해서 품격이 떨어진다고 예단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모든 수집이 찬양받을 행위인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모으는 사람은 수집으로 일가를 이룬 컬렉터가 될 가능성도 지니고 있지만, ‘오니오마니아’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품광고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일 수도 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해 쌓아두고 있는 소비자본주의의 풍토병인 ‘저장강박증’이라는 산을 넘고, 돈만 있으면 누구나 될 수 있는 ‘오니오마니아’의 산도 넘어야 마침내 경지에 오른 컬렉터들이 모여 있다는 ‘태산’에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책과 피규어와 만년필을 모은다. 새삼 그 물건들을 사들여 모셔둔 책장 앞에서 자문한다. 나는 ‘저장강박증’인가, ‘오니오마니아’인가, 아니면 컬렉터가 될 가능성이 있는 ‘티끌’을 모으는 사람인가? 나도 ‘태산’에 오르고 싶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ㅣ경향신문 2019.05.07
/ 2022.05.07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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