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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의 인물조각보] 일은 더 많이 하고, 잠은 덜 자는 나라

푸레택 2022. 5. 7. 17:30

[노명우의 인물조각보]일은 더 많이 하고, 잠은 덜 자는 나라 (daum.net)

 

[노명우의 인물조각보]일은 더 많이 하고, 잠은 덜 자는 나라

[경향신문] 황소개구리는 잠들지 않는다고 한다. 잠을 자지 않고도 어떻게 하루를 버틸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현재까지 과학자에 의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지구에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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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의 인물조각보] 일은 더 많이 하고, 잠은 덜 자는 나라 /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황소개구리는 잠들지 않는다고 한다. 잠을 자지 않고도 어떻게 하루를 버틸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현재까지 과학자에 의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지구에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저 신기하기 그지없는 생명체가 아주 많다. 가을이 되면 알래스카에서 북멕시코로 이동했다가 봄이 되면 다시 돌아가는 흰정수리북미멧새는 무려 7일 동안이나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잠을 아주 많이 자는 동물도 있다. 들다람쥐는 하루에 14~15시간을 잔다. 박쥐는 한 술 더 떠 20시간가량을 잠으로 보낸다. 지구에서 가장 잠을 많이 잔다고 알려진 생명체는 앙증맞은 외모로 사랑받는 코알라이다. 코알라는 자그마치 하루에 22시간 동안이나 잔다. 코알라에 못지않은 잠보 동물도 있는데, 단단한 껍질로 유명한 아메리카 대륙에만 서식하는 포유류 아르마딜로다. 아르마딜로는 무려 20여시간이나 잔다고 한다. 하마나 나무늘보도 많이 자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간의 곁에 있는 고양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잠꾸러기다.

이렇게 잠을 많이 자는 동물이 있는 반면, 어떤 동물은 도통 자지 않는다. 황소개구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소는 불과 4시간, 노루와 말은 3시간가량, 그리고 기린은 심지어 2시간도 미치지 못하는 시간만을 잠에 할애한다고 한다. 지구는 잠이 없는 동물과 하루를 거의 잠으로 보내는 동물로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동물은 밤에 자는데, 낮에 잠을 청하는 동물도 있다. 야행성인 고슴도치는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움직인다. 잠이라는 틀로 지구의 생명체를 분류해 보면 지구의 종다양성이 실감난다.

이제 사람의 잠으로 눈을 돌려볼 차례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은 하루 평균 9시간13분을 잠으로 보낸다. 반면 한국인은 7시간41분 잔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이 권장하는 건강을 위해 가장 좋은 수면시간은 하루 8시간인데,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이 기준을 밑돈다. 사실상 수면 부족인 셈이다. 평균 수면시간은 나라마다 다르다. 영국 사람은 8시간 4분가량 자고, 독일 사람은 8시간 14분 동안 침대에 있다. 프랑스인도 넉넉하게 잠을 잔다. 프랑스의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 29분이다. 미국인은 한국인보다 무려 1시간 이상 더 잔다. 그들은 8시간 45분간 수면한다. 수면다양성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잠에 할애하는 시간은 나라에 따라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수면다양성은 그 나라의 사회환경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국인이 OECD 국가의 평균 수면시간 8시간 22분보다 훨씬 덜 자는 이유가 ‘김치’와 ‘마늘’을 먹기 때문일 리 없다.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 다른 나라 사람보다 적게 자고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일 리도 없다. 한국인의 수면 부족 원인을 찾기 위해 노동시간부터 살펴보자. 2017년 기준으로 한국 노동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24시간에 달한다. OECD 국가 평균 1759시간보다 무려 265시간을 더 일한 셈이다. OECD 국가 중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인은 연간 1356시간 일한다. 독일인은 한국 사람보다 1년에 668시간이나 덜 일한다.

부지런하다고 정평이 난 독일인이 한국인보다 많이 잘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인보다 1년에 668시간을 덜 일한다는 사실로만 설명될 수 있다. 5년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생활시간 조사는 한국인이 왜 잠이 부족한지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실마리를 제공한다. 2014년 통계청의 ‘한국인들의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하루 24시간 중 통근 및 통학에 평균 1시간30분을 소비한다. OECD 평균보다 연간 265시간을 더 일하면서 하루 24시간 중 16%를 통근 및 통학에 써야 하니, 우리에겐 잠을 줄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는 셈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처지 때문에 노루나 말처럼 짧은 시간만 자야 한다. 어떤 아이돌 멤버는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한창 바쁠 때 하루 2~3시간 잔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10대 청소년은 하루 10시간 정도 잘 것을 권유하는데, 교육부의 2016년 조사에 의하면 한국 고등학생 10명 가운데 4명이 6시간도 채 자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쑥쑥 자라던 한국 고등학생의 평균 키는 2016년 조사에서는 10년 전보다 남학생은 0.2㎝, 여학생은 0.5㎝나 줄었다고 한다. 나부터도 하루에 2시간을 통근에 할애한다. 항상 부족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어떤 날은 소처럼 조금 자기도 한다. 그보다 더 여유가 없는 날은 황소개구리를 부러워한다. 소처럼 적게 자야만 하는 날이 쌓이다 보면 코알라가 되고 싶어진다. 오늘도 그렇다. 코알라가 되고 싶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ㅣ경향신문 2019.04.09

/ 2022.05.07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