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늙은 인디언의 이야기 / 작자 미상
ㅡ 삶의 원칙, 늙은 인디언에게서 배운다
‘포타-라모’ 라는 한 인디언 노인이 시장에 나와 좌판을 열고 양파를 팔고 있었다.
어느 날 시카고에서 날아온 백인이 다가와 물었다.
“양파 한 줄에 얼맙니까?”
“10센트 입니다.”
“두 줄에는 얼맙니까?”
“20센트죠.”
“세 줄에는요?”
“30센트라오.”
그러자 백인이 말했다.
“별로 깍아 주는 게 없군요. 세 줄을 25센트에 파시죠.”
“그렇게는 안 됩니다.”
인디언 노인은 느리지만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다시 백인이 물었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것 다 사면 얼맙니까?”
백인은 ‘떨이’로 사보겠다는 속셈이었다.
인디언 노인은 그 백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게는 팔 수 없습니다.”
백인은 의아해 하면서 물었다.
“왜 못 파신다는 거죠? 양파 팔러 나오신 것 아닙니까?”
늙은 인디언은 깊은 호흡으로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며 천천히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여기에 단지 양파만을 팔려고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오. 난 지금 내 인생을 사려고 여기 나와 있는 거요.”
늙은 인디언의 예상치 않은 대답에 백인은 적이 당황했다.
늙은 인디언은 굵게 팬 주름 사이로 흐르는 땀을 갈퀴같이 험해진 손으로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붉은 서라피(어깨나 무릎 덮개 등으로 쓰는 색깔이 화려한 모포)를 좋아하지요. 나는 햇빛을 사랑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담배를 태우고, 시장통 아이들과 소란스레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는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날마다 느끼지요. 이게 바로 내 삶입니다. 그 삶을 살아내기 위해 나는 하루 종일 여기 앉아서 양파를 팔고 있는 거랍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이 양파들을 몽땅 팔아치운다면 내 하루도 그걸로 끝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어디 가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 지낼 수 있을까요? 결국 다 잃게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선글라스를 낀 채 거만하게 서 있던 온 백인은 더 이상 인디언 노인을 내려다 볼 수 없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어 들고 양파 파는 노인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가을 해가 남겨 놓은 그림자 속에 그 백인은 인디언 노인보다 한없이 작아만 보였다.
‘포타-라모’라는 이름의 그 인디언 노인은 지금도 여전히 하루 스무 줄 안팎의 양파를 팔며 그가 사랑하는 시장의 어느 한구석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팔 수 있는 것과 팔 수 없는 것, 아니 팔 수는 있지만 결코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뭐든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뭐든 팔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지혜’다. 그 인디언 노인에게는 지혜가 있었다. 그러나 지혜만으로는 부족하다.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파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을 팔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인디언 노인에게는 용기가 있었다. 그러나 용기만으로도 부족하다. 용기는 팔기를 권하는 회유와 압박이 커감에 따라 얼마든지 사그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으로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을 팔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원칙’에 따를 때다. 팔 수 있지만 팔지 않고 지켜내는 일은 원칙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원칙이 중요하다.
원칙은 단순히 어느 순간 내거는 모토나 슬로건이 아니다. 그렇다고 고집이나 아집도 물론 아니다. 그것은 하나하나의 실전 경험 속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다져지는 마음의 진지(陣地) 같은 것이다. 마음의 진지로서의 원칙의 힘은 바로 그 하나하나의 쌓여짐과 다져짐 속에서 우러나온다.
여기 ‘구멍가게’와 ‘1인 기업’이 있다고 치자, 모두 혼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 차이가 나타난다 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원칙이 있으면 1인 기업이고 원칙이 없으면 구멍가게다. 형태는 같아 보여도 내용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인디언 노인 ‘포타-라모’는 비록 좌판 하나를 틀고 앉아 있지만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빈정거림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어떤 유혹에도 휩쓸리지 않았다.
우리는 인디언 노인한테 그의 삶 속에서 하나하나 쌓아서 다져온 ‘원칙'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의 힘을 온 몸으로, 온 삶으로 절실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 2022.05.0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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