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6) / 인정의 온기 - 전동균의 '봄눈'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6) 인정의 온기 - 전동균의 '봄눈'
봄눈 / 전동균
걷다보니 구포시장 국밥집이었다
백년은 된 듯 허름했다
죽은 줄 알았던 김종삼(金宗三) 씨가 국밥 그릇을 나르고 있었다
얼굴이 말겠다
눈빛도 환했다
여전히 낡은 벙거지를 쓰고 있었다
설렁탕이며 해장국이며 깍두기를 딱딱 제자리에 갖다주었다
뜨건 국물을 가득 부어주었다
공손하였다
두 병째 소주를 시키자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왼쪽 벽을 가리켰다
‘소주는 각 1병’
삐뚤삐뚤 아이 글씨였다
ㅡ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창비, 2019)
<해설>
이 시가 사실이라면 구포시장 국밥집에 가보고 싶다. 국밥을 주문하고 그 집 아저씨가 김종삼 시인과 닮았는지 확인하고 싶다. 소주를 두 병째 주문해보고 싶다. 살벌하고 삭막한 자본 만능의 현실적 삶에서 장사를 ‘공손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이 우러난다. 편의점이나 백화점에 가서 상품 구매를 하고 음식점이나 찻집에 가서 먹을 것을 주문할 때, 종업원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묻어 있으면 나도 미소로 응대한다. 그것이 의례적인 것일지라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시인은 아직 우리네 저잣거리에 인정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 예전 가요 <유정천리>의 가사인데 세상을 원망하면서 살 수만은 없다. 아직도 사회 일각에는 정직한 사람들이 있고 진실한 사람들이 있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정의파도 있고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는 의인도 있다. 그리고 구포시장 국밥집 아저씨 같은 분이 있다. 우리 집에서 과음은 금물이라고. 이런 아저씨 이야기를 들려주어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시인이 있다는 것이 나는 고맙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6.19
/ 2022.04.14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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