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5) 늙은 악사의 노래 -이주송의 '거리의 악사' (2022.04.14)

푸레택 2022. 4. 14. 08:05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5) / 늙은 악사의 노래 -이주송의 '거리의 악사'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5) / 늙은 악사의 노래 -이주송의 '거리의 악사' - 뉴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5) / 늙은 악사의 노래 -이주송의 '거리의 악사' 거리의 악사 이주송아코디언 켜는 노파팔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왼발을 절룩이며 육교를 오른다오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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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5) 늙은 악사의 노래 -이주송의 '거리의 악사'

거리의 악사 /
이주송


아코디언 켜는 노파
팔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
왼발을 절룩이며 육교를 오른다
오른손으로 주름을 폈다 접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샌들 사이로 빠져나온 발가락 물집
밀린 월세처럼 부풀어 올라
지나가는 바람이 어루만지고 있다

가파른 계단에 그려져 있는 오선지
그 위에 얼룩져 있는 음표들
제 몸보다 무거운 악기를 메고서
처진 어깨를 들썩이며
마이웨이를 부르며 간다
노래 반 울음 반의 목소리에
주름진 바이브레이션이 가득하다

구성진 멜로디가
번데기처럼 주름진 뭉툭한 손가락 끝에서
도돌이표로 연주되고 있어도
젊은 날로 되돌아갈 수 없는 노파
검버섯만 늘어간다
그녀의 심장이 되어버린 아코디언을 안고
육교를 내려간다

-『몽당연필로 쓴 긴 문장』(중앙대학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2018)

<해설>
 
시인에게 물어보았다. 이 시 속의 인물이 실존인물이냐고. 그렇다고 한다. 노파는 한 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젊을 때부터 아코디언을 켰을까, 나이를 먹어서 아코디언을 켜기 시작했을까. 영화 <길>의 젤소미나가 생각난다. 지금도 종로3가, 낙원상가, 세운상가 같은 데를 가면 옛 거리의 풍경이 조금은 남아 있다. 파고다공원 근처는 말할 것도 없고. 아코디언을 켜는 이 노파의 지난 생애는 참 고달팠으리라. 지금도 연주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란다. 아, 언젠가 이분도 10대였고 20대였을 텐데.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 것은 발가락 사이의 물집도, 뭉툭한 손가락도 아니었다. 혼자 부르며 가는, 프랑크 시나트라 말년의 최대 히트곡인 <마이웨이>이다. 이 노래에는 회한이 없다. “언젠가 그대 곁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가 언제라도 나를 잊지 않았다면// 그댈 그린 날들이/ 내게 마지막 남은 기쁨이었단 걸/ 내가 택한 운명이/ 다른 무엇이 아닌 그대뿐이라는 걸/ 이제 그대 곁에서 영원히”로 끝나는 이 노래의 주제는 후회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 한 세상 즐겁게 살았어. 이제 늙어 월세도 못 내 쩔쩔매고 있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지 않겠어. (이 말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가 한 말이지만.) 그렇다, 늙음을 비애로만 볼 것이 아니라 순리로 볼 필요도 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6.18

/ 2022.04.1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