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1) / 수출품목 - 김이듬의 '물류센터'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61) 수출품목 - 김이듬의 '물류센터'
물류센터 / 김이듬
난 화물, 썩은 물 흐르는 컨테이너다
출하되자마자 급하게 포장해서 운반되어진
뭐든지 입으로 가져가던 음식물 분쇄기다
영세한 가내공장에서 만들어져
교회 입구에 유기되었음직한 재봉이 터진 우주복
세심하게 기록을 살펴볼수록 모호한 출처
유아간질 히스테리 증세만 아니었어도
미끄럼틀에서 내려 캐나다나 미국쯤 수출되었을 성가신 짐짝
어디로 수송 중인지 꽉 막혀버린 골방
나는 처박아 넣기 쉬운 형태로 묶인 채
이렇게 사창의 밤 야적장을 통과하여
드디어 거대한 물류센터에 도착하면
이 물건은 대체 뭐였던 거야 아무것도 아니잖아
하역을 하다 처리비용도 필요 없이 아주 넘겨질
표류물, 일종의 유기체였던, 다분히 정치적이었던
-『현대시』(2003. 6)
<해설>
두 가지 사물의 기막힌 결합. 하나는 화물연대의 총파업으로 선적되지 못하고 있는 “화물, 썩은 물 흐르는 컨테이너”다. 컨테이너 속의 물품은 음식물 분쇄기인데, 이것은 또한 14만 3,000여명에 이르는 해외입양아의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미혼모의 아기나 버려진 아기, 장애아 등 해외로 입양되고 있는 아기들을 “재봉이 터진 우주복”으로 그려낸 상상력이 놀랍다. 두 사물은 “유아간질 히스테리 증세만 아니었어도/ 미끄럼틀에서 내려 캐나다나 미국쯤 수출되었을 성가신 짐짝”에서 완벽하게 합쳐진다. 마지막 3행 처리도 산뜻하다. 인간을 사물화한 영화적 기법과 언어의 치밀한 운용 방법이 돋보인다.
해외에 입양을 간 아기가 어른이 되어 고국의 혈육을 찾고자 할 때, 서류가 없어서 상봉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를 봤다. 뿌리를 찾으려고 하지만 찾을 방도가 없다면 그야말로 표류물이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그 아기를 내다판 것이 아닐까. 영원한 디아스포라가 10만 명이 넘는다. 우리가 도대체 그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시인은 독자들의 동정심을 유도하지 않고 냉철하게 물류센터의 안팎을 살펴본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6.14
/ 2022.04.1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