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0) / 권력과 금력 - 김철교의 '매 맞는 강남 부자 아들놈'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0) 권력과 금력 - 김철교의 ‘매 맞는 강남 부자 아들놈’
매 맞는 강남 부자 아들놈-김홍도의 풍속화 <서당> / 김철교
까불던 졸부 자식, 훈장에게 매 맞으니
친구들이 쌤통이다 웃고 있구나
스승은 멍청한 자식을 둔
부잣집 애비가 고소해서 체통도 없이 키득거린다
저 펼쳐진 책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가난해도 배부를 수 있는 합리화 법칙?
세상 권력에 눌려 살아도 천국을 차지하는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
이 시대 고관대작 글 보따리에 가득한
자식을 위해 위장 전입한 두툼한 기록과
육법전서 속에서만 살고 있는 정의라는 단어와
빛바랜 강남 땅 개발 예정 보물지도가
청문회 때만 되면 튀어나와
매문賣文하는 주인을 고발하고 있다
권선징악은
사후 세계까지 지경을 넓혀야
유효한가?
― 『사랑을 체납한 환쟁이』(시와시학, 2014)
<해설>
소재는 김홍도의 그림이지만 시는 그림 감상이라기보다 시대상을 반영한 현실풍자다. 서당 훈장이 어린 학동을 혼내자 학동이 울고 있고 나머지 학동들은 킬킬대며 웃는 그림을 보고 시인은 “까불던 졸부 자식”을 풍자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식을 위해 위장 전입을 일삼고 치부를 위해 투기를 일삼는 졸부도 꼴사납지만 아버지를 믿고 거만하게 구는 자식도 꼴사납다. 시인은 이 나라 고위층의 불법과 탈법, 부정과 부패를 비판하는 도구로 김홍도의 그림을 가져온 것이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한데 대체로 하느님은 부자를 안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 옛날에도 일부 부자의 삶은 호화롭고 쾌락적이었다. 비싼 자색 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벌이며 흥청망청 살아갔다. 반면에 이름이 ‘하느님의 도움’이라는 뜻을 가진 나사로는 병든 몸으로 구걸하며 살아가던 거지였다. 부자도 죽고 나사로도 죽는다. 부자는 음부(陰府)에 가서 고통을 당하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 (이 대목을 읽고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 신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길 수 있었던 것은 비록 병든 거지로 평생 살았을지라도 이름의 의미대로 ‘하느님의 도움’을 믿었기 때문이다. 청문회장에 서는 고위공직자보다는 졸부가 법은 덜 어겼을까. 대한항공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뉴스페이퍼 2019.06.03
/ 2022.04.07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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