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나이 들어간다는 것 < 진주사람 < 삶의 향기 < 기사본문 - 단디뉴스 (dandinews.com)
[김석봉의 산촌일기] 나이 들어간다는 것
ㅣ삶의 끝에서 만나게 될 그 무엇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두려워진다.
“뭐, 뭐라고?” “아니, 내 말이 안 들려요? 귀가 가나봐.” “당신이 말을 좀 알아듣게 해야지.” 곁에 앉은 아내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요즘 들어 걸핏하면 이런 모습을 보여 왔다. 특별히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씩은 못 알아듣곤 했었다. 내가 다른 생각에 열중할 때 아내가 느닷없이 말을 해와 못 알아듣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전화통화를 할 때도 ‘뭐라고? 뭐라 했는데?’라며 되묻기 일쑤였다.
“당신이 뭔 말을 할 때면 자꾸 목소리가 커지는 거 같아.” 일전에 아내와 대화를 하면서 나도 놀랄 정도로 내 목소리가 커져있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조곤조곤 시작했던 목소리가 어느새 커져버리는 것이었다. 귀가 문제라는 진단이었다. 잘 알아듣지 못하면 목소리가 커진다는 거였다.
“앗따. 그거 되게 아픈데......” 발뒤꿈치가 갈라져 많이 아팠다. 머큐로크롬을 바르고 일회용 밴드를 붙이는데 곁에 앉아있던 민박손님이 안쓰러운 듯 말했다. “그러게요. 왜 겨울만 되면 이렇게 갈라지는지 모르겠네.” 발을 이리 비틀고 저리 끌어당기며 발뒤꿈치 갈라진 틈에 약을 발랐다. “그게 다 나이 먹어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나이 먹었다고 다 그러나? 이제 겨우 환갑 지났는데. 나보다 나이 더 먹은 사람들은 아예 걷지를 못하겠네?” 나이 먹었다는 말에 약간 서운한 맘이 들었다. 내 목소리가 조금 퉁명스럽게 변했다.
“손톱 가는 괜찮으세요? 거기는 안 갈라지세요?” “거기도 갈라지지. 이렇게 밴드 붙여놨잖아요.” 나는 밴드가 감겨 있는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겨울에 들면서 손톱 가가 갈라져 아프고 불편하기 일쑤였다. “나이 들면 심장의 펌프질이 약하거나 혈관이 노쇠해 신체의 끝부분까지 피와 영양물질 공급이 안 돼 그렇게 갈라지는 거래요. 피부가 건조해지는 계절이어서 겨울에 주로 그런 현상이 나타난대요.” 손님은 의사처럼 친절히 말해 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렇구나,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어.
크리스마스를 넘기고 새해까지 민박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빈 방이 없는 날도 많았다. 바쁜 나날이었다. 마지막 손님이 떠나고 집을 치웠다. 마당을 쓸고, 마당 가 수북이 쌓인 쓰레기를 정리하고, 아궁이를 가득 채운 재를 치고, 이부자리를 걷어냈다. 고요한 마당에 서서 청명한, 그래서 눈이 부신 겨울하늘을 바라보다 집을 나섰다. 가끔 산책하는 마을 뒷길을 걸었다. 어느새 해는 바뀌어 있건만 오늘이나 어제나였다. 마음엔 무슨 기대나 설렘도 없었고, 무덤덤하게 지나버린 해넘이 해맞이였다.
“나 정서방과 1일 날 부산 엄마 보고 왔소.” 이제 한가한 날들이니 부산 요양병원 어머니께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탈길을 내려오는데 마산 사는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 고맙다. 정서방께도 고맙다고 전해주고. 어머니는 좀 어때?” “지난번보다는 좋아 보입디다. 말도 많고.” “그래 나도 한번 가볼라고 그런다.” “내가 다녀왔으니 며칠 더 있다 댕겨가소.”
문득 어머니가 생각났다. 병상에 누워 당신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시는 어머니. 그러면서도 멀건 죽을 남김없이 드시는 어머니. 해를 넘겼으니 올해 아흔다섯이다. 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머리카락은 온통 은빛이고, 틀니마저 끼지 못한 하관은 볼품없이 눌러 붙어있었다. 얼굴을 반쯤이나 덮어버린 검버섯은 당신의 거친 인생길만큼이나 흉했다. 산등성이 끝자락에서 솔개 한 마리가 빙빙 타원형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늙어가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 잘 안 들리고, 목소리가 커지고, 발뒤꿈치가 갈라지는 내 몸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결혼 십 년차엔가 기념으로 나누어 낀 반지가 이젠 비누칠을 해도 빠지지 않는다. 농사일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보기 흉하리만치 굵어졌다. 귀밑머리도 더 희졌다. 해가 바뀔 때마다 돋보기도 바꿔야할 지경이다. 비탈길을 걸을 때면 무릎이 뜨끔거린다.
일흔을 지날 즈음 내 몸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가는귀가 먹지나 않을까. 잔소리가 늘어 가족들을 괴롭히지나 않을까. 머리카락은 얼마만큼이나 하얗게 물들까. 무릎이 아파 혹시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나 않을까. 밤마다 요강을 방에 들이지는 않을까. 이빨이 많이 상해 틀니를 끼고 지낼지도 몰라. 그렇게 나이를 먹고 여든을 앞두면......
“나도 언젠가는 저 아래 요양원으로 들어가겠지.” 며칠 전 밥상머리에서 내가 중얼거린 말이 떠올랐다. 밥상을 물리고 민박 손님들과 마주앉아 차를 나누면서였다. 농사이야기가 나오고, 농사가 남기는 골병이야기가 나오고, 나이이야기가 나오고,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행복이야기가 나오고, 어찌어찌 살아야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회사에 다닌다는 그 젊은 손님이 부러웠고, 장난감가게를 한다는 그 젊은 손님이 부러웠다. 강단진 체구의 그 젊은 소방관이 부러웠고, 조선소에 부품을 납품한다는 그 젊은 노동자가 부러웠다. 그들의 현재와 미래가 눈부시게 부러웠다.
“사장님도 세상을 참 잘 사셨어요.” “세상에서 사장님만큼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드물어요.” 가끔 이런 말을 듣기도 하지만 세상의 끝에서 만나게 될, 혹은 이 행복한 삶의 끝에서 만나게 될 아득한 그 무엇이 왜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꾸만 두려워지는 것일까. 마을로 올라오는 골짜기 초입 이층건물 요양원이 지는 햇살을 받아 더욱 또렷이 드러나 보였다.
글=김석봉 농부ㅣ단디뉴스 2019.01.07
/ 2022.03.30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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