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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의 산촌일기]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 (2022.03.30)

푸레택 2022. 3. 30. 12:05

[김석봉의 산촌일기]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 < 진주사람 < 삶의 향기 < 기사본문 - 단디뉴스 (dandinews.com)

 

[김석봉의 산촌일기]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 - 단디뉴스

“그게 뭡니까?” 마실을 나가는데 이웃집 돌담 안에서 남자어른 둘이 쪼그려 앉아 무슨 일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고라니가 한 마리 걸렸네. 허허.” 골목 끝 박샌이 피 묻은 칼을 든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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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의 산촌일기]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

그래도 아직은 이 세상에 꽃이 피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게 뭡니까?” 마실을 나가는데 이웃집 돌담 안에서 남자어른 둘이 쪼그려 앉아 무슨 일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고라니가 한 마리 걸렸네. 허허.” 골목 끝 박샌이 피 묻은 칼을 든 채 뒤돌아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가죽이 벗겨진 채로 큰 다라에 담긴 고깃덩이가 어깨 너머로 보였다.

“이 놈 이거 가는골 콩밭에 콩잎 다 뜯어 먹은 놈이라.” 그의 아내가 빈 물바가지를 고깃덩이가 담긴 다라를 향해 흔들어댔다. 속이 후련하다는 투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올무에 걸려 버둥거리는 고라니의 모습이 떠올라 얼른 자리를 뜨는데 박샌이 히죽거리며 말을 던졌다. “이따가 한 잔 하러 와.”

▲ 김석봉 농부

이 산골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고 세 해쯤 지났을 때였다. 저녁밥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건너편 산자락에서 고라니 울부짖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짝을 찾아다니는 고라니 울음소리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우는데 한 곳에서 숨 가쁘게 울부짖는 것이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철사 자를 연장과 빈 부대를 챙겨 아들 녀석과 함께 소리 나는 산자락으로 다가갔다. 먹물 같은 어둠이었다. 손전등이 만드는 한줄기 밭두렁을 타고 산자락에 도착하자 소리가 멈췄다. 빈 나뭇가지 사이를 이리저리 비추는데 손전등 불빛이 반사되어 돌아오는 곳에 두 개의 눈동자가 보였다.

고라니는 왼쪽 목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올무에 걸린 채 반쯤은 드러누워 있었다. 비탈진 잡목 숲을 기어올랐다. 아들 녀석이 고라니에게 다가가 부대를 얼굴에 씌웠다. 고라니는 앞이 보이지 않으면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다는 말을 들었었다.

나는 연장으로 철사를 끊었다. 철사는 질겼다. 이리 비틀고 저리 꺾으며 몇 번을 흔들어서야 철사가 끊겼다. 가만히 고라니를 안고 비탈을 내려 서 편평한 곳에 내려놓고 부대를 벗겼다. 순간 고라니는 어리둥절 고개를 몇 번인가 주억거리더니 위쪽 빈 밭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난생 처음 야생동물을 품에 안아본 순간이었다.

지난해 여름이었다. 이른 아침 꽃분이를 앞세워 밭을 둘러보러 갔는데 거기서 고라니를 만났다. 고라니와 산돼지 들어오지 말라고 밭을 빙 둘러 망을 쳤기에 이 고라니는 꼼짝 없이 밭에 갇힌 형국이었다. 빠져나갈 길은 내가 들어온 출입구가 전부였다.

꽃분이가 고라니를 쫓았다. 당황한 고라니는 위 밭과 아래 밭을 종횡무진 오가며 빠져나가려 했다. 망에 걸려 버둥대다가 겨우 발을 뽑아내 고구마밭을 가로질러 뛰기도 했고, 돼지감자 대궁 속에 갇혀 허우적대다 겨우 빠져나오기도 했다. 마침내 고라니는 지쳤다. 덤불에 숨어 숨을 헐떡이는 고라니 앞에서 꽃분이가 맹렬하게 짖어댔다.

잠시 쉬었던 고라니가 몸을 일으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제풀에 놀라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니다 아뿔싸, 밭두렁 아래 샘물을 받는 커다란 물통에 고라니가 빠져버렸다. 물통에 빠진 고라니는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뒷발로 돋움이 안 되니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였다.

꽃분이는 또 그 앞에서 마주보고 짖어댔다. 물통으로 다가가 물에 젖은 고라니를 안아 밖으로 내놓았다. 고라니는 다시 몇 바퀴 밭을 돌다 마침내 밭을 빠져나갔다. 야생동물을 품에 안아보기는 그때가 두 번째였다.

“아버지, 오늘도 봤어요. 꽃분이 새끼.” 읍내를 다녀온 보름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어째......”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우리가 다시 데려오면 안 돼요? 읍내 갈 때마다 보여서 속상해요.” “너그 어머니도 그러더라마는 어찌 할 도리가 있냐.” 나도 속이 상했다.

지난 봄 꽃분이는 다섯 마리의 아가를 낳았다. 세 해 연속 다섯 마리씩을 낳아 붙여준 칭호가 ‘다산의 여왕’이었다. 젖을 떼기 시작하면서 분양이 문제꺼리였다. 다행히도 세 마리는 잘 아는 좋은 곳으로 갔다. 남은 두 마리가 문제였다.

분양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이웃마을에 귀농한 지인이 한 곳을 소개해 주었다. 동물을 잘 키워주는 곳이라고 했다. 알아보니 우리 마을에서 읍내로 가는 고개 너머 길가에 있는 집이었다. 사료도 한 포 사 싣고, 두 마리를 데려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여기저기 철망으로 만들어진 우리가 보였다. 그래도 잘 키워주겠거니 하며 두 마리를 맡겼다.

그리고 며칠 뒤 읍내로 가는 길, 그 집 앞을 지나다 꽃분이 새끼를 보았다. 집 앞 차도 건너편 밭두렁 아래 철망으로 만든 우리가 있는데 거기 갇혀있는 거였다. 가로세로높이 일 미터도 안 될 철망우리였다. 똥이 잘 빠지라고 땅에서 서너 뼘은 높게 설치되어 있었다. 읍내 오갈 때마다 그 안타까운 모습을 보아야 했다. 우리 가족은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속상해 했는지 모른다.

가을이 다 지나갈 즈음 기회가 찾아왔다. 강아지를 찾는 사람이 나타났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목줄 없이 함께 살아줄 사람이었다. 소개해준 그 지인에게 부탁을 하고, 꽃분이 새끼를 철창 안에 키우던 그 집에도 우리의 의사가 전달되고, 마침내 와서 가져가라는 말을 전해 듣고, 우리는 그 꽃분이 새끼를 철창으로부터 탈출시키는데 성공했다.

다시 우리집 마당으로 돌아온 녀석은 살이 투실투실 쪄있었다. 좁은 철창에 갇혀 오직 먹고 싸는 일이 전부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처음 마당에 내려놓았을 때 녀석은 잘 걷지도 못했다. 다음날은 다리를 절룩거리기까지 했다. 넉 달 만에 처음으로 땅을 되짚은 터였다. 꽃분이가 킁킁거리며 다가가자 알아보기라도 하는 듯 이내 반갑게 달려들기도 했다. 그날 우리 가족은 녀석의 이름을 ‘똘똘이’로 지어주었다.

마을 맨 윗집, 홀로 남은 노인네가 요양원으로 떠나자 강아지만 홀로 외로이 남았다. 멀리 언덕배기에 새 집을 짓고 사는 그 집 며느리가 닭장에 달걀 챙기러 드나들면서 닭 모이와 강아지 사료를 주곤 했다. 내가 가끔 먹을 것을 챙겨 강아지를 찾아가면 물그릇은 비었기 일쑤였다. 집 앞 개울물로 물그릇을 챙겨주는 일은 어느새 나의 몫이 되어버렸다.

아랫말로 가는 길가 고사리밭에 조그만 개집이 하나 놓였고, 거기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묶여있었다. 지난해 집을 새로 짓는다며 그 고사리밭으로 데려와 묶어둔 터였다. 집을 다 지어 들어갔건만 그 강아지는 거기 그대로 있었다. 지난해 겨울 그 혹독한 추위와 폭설 속에서 바람에 날아 가버릴 듯한 플라스틱 집에 의지해 살았다. 내가 안 입는 두툼한 옷을 챙겨 바닥에 깔아주러 갔을 때 나를 쳐다보던 그 강아지의 눈빛이 한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며칠 전 그 고사리밭에서 그 강아지는 집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 산골에서 나는 많은 것에 실망하며 살았다. 그 중 하나가 동물을 대하는 이웃들의 태도였다. 생명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야생동물에 대해서는 증오에 차있었고, 가축에 대해서도 경제적 가치만 따질 뿐이었다. 개는 키워 잡아먹거나 팔아야할 대상에 불과했다. 산돼지와 고라니는 저주의 대상이었고, 돌담을 넘나드는 길고양이도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볼 뿐이었다.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밭두렁을 장식한 저 황홀한 모습의 달맞이꽃도 피었다 스스로 지련만 그 기간을 참지 못하고 싹둑싹둑 잘라없애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듯 삭막한 사람들이었다. 필요치 않는 모든 것은 돌로 짓이겨 죽이거나 제초제로 벌겋게 태워 없애야 시원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이 어디 여기 산골마을 사람뿐이겠는가. 많이 가지고, 가지고 또 가지려는 사람들. 서로 경계하고 질시하면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속이고 빼앗고 내팽개치는 일이 다반사인 세상 아니던가. 짓밟고 떼밀고 넘어뜨리면서, 짓밟히고 떼밀리고 넘어지면서 살아가는 일상 아니던가.


슬픔도 잊고 눈물도 잃어버린 사람들. 미소도 잊고 손뼉도 잃어버린 사람들. 무심하고 무정하고 무감각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삼십육 점 오 도의 체온마저 얼음덩이 속에 가둔 채 살아가는 세상에서 꽃이 핀들, 눈이 내린들......

이런 세상에서 반달가슴곰 세 마리가 나를 울렸다. 수천 마리의 곰들이 철창에 갇혀 살아가는데 그 중 세 마리를 구출해 동물원으로 보냈다고 하는 소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금에 참여해 오직 세 마리를 구출했다는 소식이다. 연봉도 없는 가난한 농부인 나도 월 이만 원 후원약정서를 썼다.

내년 가을엔 백 마리, 아니 천 마리의 곰이 철창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라면서. 그래도 아직은 이 세상에 꽃이 피어야 할 이유가 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려야 할 이유가 있다.


글=김석봉 농부ㅣ단디뉴스 2018.12.14

/ 2022.03.3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