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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의 산촌일기] 또 한 해가 저문다 (2022.03.30)

푸레택 2022. 3. 30. 18:50

[김석봉의 산촌일기] 또 한 해가 저문다. < 진주사람 < 삶의 향기 < 기사본문 - 단디뉴스 (dandinews.com)

 

[김석봉의 산촌일기] 또 한 해가 저문다. - 단디뉴스

또 한 해가 저문다. 내년이면 예순 셋, 환갑진갑 다 넘긴 중늙은이가 되었다. 올해도 잘 지나갔다. 이런 산골에서 꼼지락거리며 사는 것도 일이라고 우리 가족도 이런저런 일을 더러 겪었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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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의 산촌일기] 또 한 해가 저문다

ㅣ2018년 우리 집 10대 뉴스

또 한 해가 저문다. 내년이면 예순 셋, 환갑진갑 다 넘긴 중늙은이가 되었다. 올해도 잘 지나갔다. 이런 산골에서 꼼지락거리며 사는 것도 일이라고 우리 가족도 이런저런 일을 더러 겪었다. 시끌벅적한 세상, 쓰지 못한 일기를 쓰듯 2018년 기억해야할 몇 가지를 적어둬야겠다. 2018년 우리 집 10대뉴스다.

‘서하, 세상을 향해 말을 하다.’

함께 사는 손녀 서하가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배냇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훌쩍 커서 골목길을 뛰어다닌다. 말문이 안 터져 속앓이를 했는데 어느 순간 “밥 더 줘.”라고 온전히 한 문장의 말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함께 살아야 가족이라는 생각을 한다. 품에 안고 키웠던 아들딸들 모두 좋은 직장으로, 대도시로 떠나보내고 둘만 남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외롭고 쓸쓸하겠구나 싶었다. 헛헛한 세월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녀석과 보름이가 단란하게 살아가는 모습, 날로 늘어가는 서하 재롱을 곁에 두고 보면서 환갑진갑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 김석봉 농부

‘아내, 발가락 골절로 깁스를 하다.’

12월, 아내가 발가락을 다쳤다. 선반을 정리하다 생긴 일이었다. 발가락이 금세 퉁퉁 부어올랐다. 발바닥에 두꺼운 박스조각을 대고 끈으로 칭칭 묶어 견디던 아내가 사흘 만에 병원을 찾았다. 오른쪽 가운데 발가락에 금이 갔다. 깁스를 하고 돌아온 아내가 참 초라해보였다. 여보, 이제는 절대로 몸을 다치지 마시게. 나이 들어 몸을 다친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네. 농사일 한다고 집안 그만그만한 일은 거의 당신께 맡기다시피 했지. 창고를 정리하고 평상을 옮겨도, 처마 물받이홈통에 나뭇잎이 쌓여 물이 빠지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았지. 이젠 내가 다 해드리겠네. 나머지 세월, 집안일은 그냥 앉아서 시키기만 하시게.

‘바둑이 별이 되다.’

9월, 바둑이는 별이 되었다. 기도협착과 수종과 부종으로 인한 노환이었다. 도시에 살 때 버림받아 골목길을 떠돌던 바둑이는 우리와 함께 17년을 살았다. 관절염으로 걷지 못하던 시기엔 아내가 열흘 넘게 다리를 주물러 다시 걷게 해주었다. 기도협착으로 숨을 쉬기 어려워할 때 전북대 동물병원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우리 가족들의 사랑으로 천수를 누렸지만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는 가슴이 아팠다. 아내의 품속에서 편안히 운명을 맞았고, 밭 언저리 사과나무 아래 묻어주었다. 잘 가. 바둑아.

‘아내, 자기 부엌을 가지다.’

7월, 마침내 아내는 자기만의 부엌을 가졌다. 결혼하고 지금껏 여덟 번의 이사를 다녔다. 그때마다 부엌은 있는 것을 그대로 썼었다. 기껏해야 선반 하나 더하거나 조금 고쳐서 쓸 뿐이었다. 여기 산골 이 빈집에 왔을 때도 부엌가구는 남아있는 것을 문짝만 바꿔달고 그대로 썼다. 보름이가 서둘러 아내의 부엌을 바꿔버렸다. 유명한 메이커 부엌가구를 새로 들이고, 보기 좋은 타일도 직접 골라와 붙이고, 선반도 새것으로 바꿔달았다. 결혼 서른여섯 해, 어쩜 처음으로 아내를 위해 마음을 쓴 것 같다. 우중충했던 부엌이 환하게 바뀌었다. 아내의 표정도 환하게 밝았다.

‘농사 시작하고 처음으로 고춧가루를 팔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한 지 9년, 고추농사가 풍작이었다. 무더운 날씨 탓에 탄저병이 늦게 찾아왔다. 해마다 서너 번 따면 탄저병이 들어 망치곤 했는데 올해는 여섯 번을 땄다. 처음으로 고춧가루를 팔았다. 올해는 양파와 감자농사도 풍작이었다. 늦여름 가뭄이 있었지만 고구마도 예년처럼 캤다. 농사로 경제적 도움을 많이 받은 해다. 그에 비해 몸은 더 심하게 상해가는 것 같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많이 아프다. 해가 갈수록 농사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다. 내년 영농을 생각하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큰일이다. 그러나 겨울 밭에 양파와 마늘이 푸릇푸릇 실하게 뿌리 내리고 있으니 또 한 해 농사를 해봐야지.

‘산촌민박 사업자등록, 사장이 되다.’

4월, 우리 민박집 사업자등록증이 나왔다. 가끔 영수증을 필요로 하는 손님 때문이었다. 간이과세사업자인데다 연간 수입이 턱없이 적어 세금 낼 일이야 없겠지만 소득신고와 같은 귀찮은 일만 늘었다. 여하튼 사업자등록을 했으니 나도 자영업자, 사장이 되어버린 셈이다. 올해도 우리 산촌민박엔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다. 다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 손님들이 떠날 때마다 산밤이나 묵은지라도 한 묶음 쥐어 보내드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벽지도 새로 발라 내년엔 더 깨끗하고 밝은 방으로 손님을 모셔야겠다.

‘지리산 댐 백지화, 가문의 영광.’

1997년 가을 정부의 지리산 댐 건설계획 발표 이후 내 인생은 이 댐 반대운동에 몰입되었다. 그동안 한국의 수자원정책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을 바꾸기 위한 투쟁은 스무 해를 넘겼다. 반목과 상실의 댐 건설사업은 다른 토목공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폐해를 낳았다. 맑은 물을 가두어 오염시켰고, 마을을 수장해 실향민을 만들었다. 내가 시작한 댐 반대운동을 몇 년 전부터 아들녀석이 맡아서 해왔다. 지리산생명연대 활동가로 일하면서 끝끝내 지리산 댐 백지화라는 정부발표를 이끌어냈다. 이 활동이 환경부와 SBS가 주관하는 물환경대상도 받았다. 혹자는 2대에 걸친 싸움의 종지부를 축하해 주지만 댐 반대운동에 내몰렸던 내 청춘의 나날은 고달팠다. 어쨌거나 강을 위해, 이 나라의 물을 위해 활동한 우리에겐 영광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나눔의 기쁨, 복된 나날들’

올해는 참 많은 것을 주고받았다. 농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십시일반 달려라 밥묵차’에 몇몇 농산물을 보냈다. 세상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들, 세상의 거짓과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지어 싣고 가 나눠 먹는 ‘밥묵차’에 아주 조금이나마 보내줄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 있었다. 속이 찬 봄배추를 보내면서 고춧가루를 함께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리고 참 많은 것을 받기도 했다. 가정상비약과 농사일로 아픈 몸을 위해 전문약품을 보내주신 서울 약사님, 서하 장난감 점보비행기를 가져오신 예림이네, 아내를 위해 빵을 가져오고, 서하에게 옷을 보내주고, 귀한 중국술과 보드카를 가져와 함께 마시자던 손님들. 사람 사는 모습을 더욱 포근하게 꾸미려는 모든 분들이 고마운 2018년이었다.

‘서하, 난생처음 비행기 타고 외국을 여행하다.’

유난히 여행을 좋아하던 보름이. 서하 가지고, 낳아 기르느라 속절없이 흘려보낸 지난 삼 년. 아들내외와 서하가 삼 년 만에 여행을 떠났다. 이런저런 짐을 챙기면서 소녀처럼 즐거워하던 보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산골에서 함께 살아줘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좋은 시아비가 되어야겠다. 그러고 보니 우리 내외도 여행을 다녀온 지 꽤 되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계획했던 기차여행을 아직도 못했다. 새해엔, 봄이 오기 전에 꼭 첫차를 타고 떠나야겠다. 아침햇살 가득한 차창 밖으로 너울거리는 바다를 봐야지.

‘보름이 카페에 박원순 시장 찾아들다.’

세상에 귀하고 반갑지 않은 손님이 어디 있으랴만 아내와 아들 내외가 존경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어느 날 문득 보름이 카페에 찾아들었다. 온 가족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세상을 맑게 닦아보려는 진심을 가진 몇 안 되는 정치인이기에 보름이는 마음을 담아 차를 끓였다. 우리 산촌민박에서 혹은 카페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많은 분들이 생각난다. 청계에서 찾아주신 새 손님들, 배달일기가 훈훈한 그 젊은 시인 가족들, 밥상머리에서 함께 나눈 대화와 웃음과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쌓였다. 사랑이 있어 체온은 유지되는 것이지.

이렇게 한 해를 살았다. 앉은뱅이처럼 이 산골만 맴돌며 살았지만 많은 이들이 일으켜 세워주기도 했고, 함께 걸음을 걷기도 해주셨다. 내년엔 이 세상 아픈 사람들이 몸부림치는 현장에도 더러 다녀와야겠다. 돈이 넉넉지 않으니 마음이나마 더 나누면서 살아야겠다.

 

글=김석봉 농부ㅣ단디뉴스 2018.12.31

/ 2022.03.3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