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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도시는 동물 없는 인간만의 공간인가? (2022.03.28)

푸레택 2022. 3. 28. 14:26

<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도시는 동물 없는 인간만의 공간인가? (daum.net)

 

<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도시는 동물 없는 인간만의 공간인가?

A : 인간·동물·기술·물질의 사회-생태적 네트워크…‘인간 이상의’ 공간⑩ 브루스 브라운(Bruce Braun, 1964∼)토지효율 위해 도입된 地區制가축 사육장·도축장 추방하며도시의 비자연화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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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작가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도시는 동물 없는 인간만의 공간인가? 

A : 인간·동물·기술·물질의 사회-생태적 네트워크…‘인간 이상의’ 공간

⑩ 브루스 브라운(Bruce Braun, 1964∼)

토지효율 위해 도입된 地區制
가축 사육장·도축장 추방하며
도시의 비자연화 가속화시켜
대륙넘어 전파된 사스 계기로
인간신체·도시‘존재론’재고찰
근접성은 거리아닌 ‘연결’ 효과
도시는 지역 아닌 지구적 장소
빌딩·자동차·돈·상품 등
살아있는 것의 생물학적 공간
도시, 탄소배출 약점 갖지만
글로벌시스템 연결된 장소로서
변혁 주체이자 통치의 대상

◇ 도시는 비생물학적 공간인가?

우리는 보통 도시를 복잡한 생물학적 공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산업혁명 이래 서구에서 도시는 자연과 반대되는 사회적·정치적 공간으로 여겨졌다. 근대 환경주의 운동, 20세기 반(反)도시 운동에서 두드러진 이런 이분법에 따르면, 도시는 비자연적·인위적 공간이다. 시골이 토양과 초목으로 구성된 비옥한 장소로 그려지는 반면, 도시는 철강과 콘크리트로 구성된 불모의 공간으로 대비된다. 오늘날에도 지리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은 여전히 도시를 사회적·경제적 관점으로 다루는 반면, 생태학자들은 도시 밖의 들판과 숲을 연구한다.

도시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환에는 다른 요인도 존재한다. 우선 20세기 도시 계획과 재개발 과정에서 도시의 생물학적·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기술적·물리적 시스템이 인간의 시야에서 제거됐다. 상하수도관을 비롯한 기반 시설이 땅 아래로 매립되면서 도시가 인간 존재의 생물학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사물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한편 ‘지구제(zoning)’의 도입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구제는 도시를 계획할 때 토지 이용 효율을 높이고 무질서한 공간 이용을 예방하고자 도입됐다. 그 결과 도시에서 식용 가축의 사육장과 도축장이 추방됐고 도시 공간의 비자연화가 가속화됐다.

이런 현상은 전염성 질병과의 전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더욱 심화됐다. 항생제와 백신은 인간 신체가 그것을 구성하는 체외 시스템에서 분리된 것처럼 인식하게 했다. 항생제는 인체에 침입한 다른 미생물의 성장이나 생명을 막고 백신은 외부에서 침입한 항원에 저항하는 항체를 생성한다. 이로써 인간의 신체는 주변 환경과 공간, 세균과 바이러스와 같은 물질의 영향으로부터 스스로가 자유로운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신체의 필수적 특성들은 여타의 살아 있는 물질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되고 유지된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가 지적했듯 신체는 그것의 생명력을 위해 동원되는 수많은 비인간 수행원을 통해서만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 도시, 몸의 새로운 존재론을 향해

이런 맥락에서 지리학자 브루스 브라운은 도시 내 생물학적인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 이상의(more-than-human)’ 도시 지리학을 주창했다. 브라운은 특히 인수 공통 전염병이라는 문제에 주목해 인간의 몸과 도시에 대한 통념을 문제시하고 ‘무경계의(unbounded) 몸과 도시’라는 새로운 존재론을 제시한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조류 인플루엔자(AI),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의 인수 공통 전염병은 과학자나 의학자들조차 규명할 수 없는 변종 바이러스로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렸다.

브라운은 특히 2002~2003년에 발생한 사스 위기를 통해 인간 신체와 도시에 대한 존재론을 다시 생각했다. 인수 공통 전염병은 도시적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동물, 미생물, 항공기, 하수도 시스템, 인공호흡장치(마스크) 등의 행위자에 주목하게 한다. 또한 사스가 중국의 편자 박쥐와 사향 고양이에서 유래했듯, 인수 공통 전염병은 특정 동물 종에서 감염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동물이 사회적 집합체 내부에 있음을 드러낸다. 애완동물을 비롯해 쥐, 새, 고양이 등의 동물은 도시에 거주하는 인간 주변을 맴돈다. 또한 유제품, 육류, 의류, 조제약, 쓰레기, 내장 등의 형태로 도시 공간을 끊임없이 순환하기도 한다. 곤충, 바이러스, 박테리아는 인간 신체에 침투해 ‘인간-동물 아상블라주’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도시를 인식할 때 동물의 존재를 고려해야 한다. 동물은 단순히 타자가 아니라 역동적인 생물학적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한편 인수 공통 전염병은 도시에 엄격한 경계가 있다는 인식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사스의 최초 감염자인 미국인 사업가는 중국 광둥(廣東)성을 방문했다가 사스에 감염됐고 베트남 하노이에서 증상이 발생했다가 치료를 위해 이송된 홍콩에서 사망했다. 이후 그와 접촉한 병원 의료진, 비행기 탑승객, 호텔 투숙객 등이 사스에 감염됐으며 이 보균자들을 통해 사스는 단 몇 주 만에 무려 37개국으로 확산됐다. 이 점에서 사스 위기는 바이러스의 확산과 감염이 진원지와의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달리 말하자면 근접성이란 거리가 아닌 연결의 효과다. 따라서 도시는 지역적(local) 장소를 넘어서는 지구적(global) 장소이자, 다중적인 공간-시간성이 있는 위상학적 공간이며, 빌딩, 자동차, 돈, 상품 외에도 모든 종류의 살아 있는 것들로 구성된 생물학적 공간이다. 이때 신체의 공간성은 전통적 좌표상의 기하학적 개념을 넘어 네트워크의 범위를 따라 펼쳐지고, 근접성은 네트워크 내 신체의 위치에 의해 측정된다.

브라운은 도시 또한 다양한 물질의 창발적 효과가 일어나는 공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피노자, 니체, 들뢰즈가 발전시킨 관계적 존재론에서 신체가 다른 신체와의 관련 속에서 작동하고 형성되듯, 도시적 삶 또한 사회적인 것, 생물학적인 것, 화학적인 것, 기술적인 것, 정치적인 것이 계속해서 혼합되고 변화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구성된다. 이 점에서 도시는 ‘탈인간적’ 내지는 ‘인간 이상의’ 공간이다. 인간은 도시를 구성하는 기술적·사회 생태적 네트워크에 선행하지 않으며 이 네트워크에서 구성되는 효과로 나타날 뿐이다. 사스 위기 또한 신체의 생명력을 구성하는 네트워크의 우연한 효과다. 광둥성의 야생동물 시장, 홍콩의 호텔, 대륙 횡단 항로, 항공기 내부의 환경, 병원의 응급병동, 공중 보건, 의료 신기술, 특정한 법과 규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사스 위기라는 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 기후 변화와 도시 회복력: 새로운 통치성 개념을 향해

한편 브라운은 오늘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시도를 미셸 푸코의 개념인 통치성의 차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오늘날 기후 변화와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국제적 노력이 난항을 맞으면서 도시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다루는 가장 긴급하고도 중요한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인류는 ‘행성적 도시화’ 속에 살고 있기에, 도시의 사회적 조직과 물리적 디자인의 관점에서 미래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브라운은 기후 변화의 위협에 대응해 회복력을 갖출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디자인과 계획들을 통치의 문제로 봤다. 이런 실험들이 도시적 삶을 조정하고 정렬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몇 년 전 토요타 프리우스와 같은 자동차에 처음 도입된 연료 소비 계기판을 살펴보자. 이 새로운 기술 장치는 현재 운전자의 운전 행태로 얼마나 많은 연료가 소비되는지를 실시간으로 알려 줌으로써 운전자가 스스로 이 정보에 대응하도록 유도한다. 브라운은 연료 소비 계기판의 사례에서 운전자가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로 계기판을 모니터링하고 대응함으로써 단일하고 폐쇄된 ‘자동차-운전자 아상블라주’를 형성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운전자는 효율적 연료 소비나 탄소 저감을 위해 스스로를 합리적으로 규율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운전자는 자동차와 내적으로 결합해 장치의 일부가 된다. 이 장치는 한데 모여 있다는 점 말고는 어떤 통일성이나 필연성도 없는 다양한 지식, 실천, 제도로 구성된다.

따라서 브라운은 기후 변화에 대응해 도시의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를 통한 ‘통치’는 선진 자본주의에 관리 대책을 단편적·우연적으로 도입한 ‘임시적 아상블라주’라고 말한다. 기존의 통치성 연구는 통치가 먼저 존재하고 통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술이 발전한다고 보지만, 브라운은 일상생활에 경제와 관리를 도입하는 유력한 장소로 기술이 먼저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앞서 사스 사례를 통해 언급한 ‘인간 이상의’ 공간으로서 도시, 즉 기술적, 사회-생태적 네트워크로서의 도시를 바로 이 지점에서 마주하게 된다. 도시는 기후 변화에 직면해 탄소를 많이 배출한다는 약점을 드러내는 주체이지만 동시에 글로벌 시스템과 밀접히 연결되는 장소로 변혁의 주체이자 통치의 대상이기도 하다. 연료 소비 계기판의 사례에서처럼 도시적 삶이 새로운 기술적 관리 양식에 종속되고, 이러한 기술적 장치를 통해 연료 소비 효율성이 도입되면서 기술적 대상 자체가 개입의 장소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도시적 삶은 우리가 의식하건 못하건 탄소와 관련되고, 탄소가 글로벌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력이 조절되고 관리되는 것이다.

김숙진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

■브루스 브라운은

분야- 지리학 - 자연과 사회, 환경 정치

사상- 인간 이상의 지리학, 포스트 휴머니즘, 생명 정치, 그린 어버니즘

주요 활동·사건- 자연과 사회 존재론의 이론화, 자연의 정치와 후기 식민주의의 관련성 탐구, 인류세 관련

미셸 푸코·조르조 아감벤의 재해석

1990년대 이후 지리학계에서 부흥한 ‘자연과 사회’ 연구를 주도했다. 질 들뢰즈, 미셸 푸코, 브뤼노 라투르 등에 영향을 받아 지리 존재론, 포스트 휴머니즘, 신유물론 계열의 지리 철학을 연구했고, 생명의 정치와 도시, 인류세 등을 폭넓게 탐구하고 있다. 1996년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지리학과에서 ‘자연의 물질성: 온대 다우림의 담론, 실천, 권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미네소타대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포스트 휴먼 도시성을 연구해 도시를 ‘인간 이상의(more-than-human)’ 아상블라주로서 개념화하고 과학, 민주주의, 도시 정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박사 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낸 ‘온대 다우림: 캐나다 서부 해안의 자연, 문화, 권력’(2002)에서는 후기 구조주의 이론에 기반해 19세기 캐나다의 산림 정책 이면에 있는 식민주의적 사고, 토지를 되찾고자 한 원주민들의 투쟁, 현대의 합리적 산림 관리 정책, 원시 자연에 대한 인식, 생태 관광 등을 분석했다. ‘정치적인 것의 중요성: 기술과학, 민주주의, 공적 생활’(2010)에서는 정치에 대한 유물론적 이론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공편서 ‘현실 다시 만들기: 밀레니엄 시대의 자연’(1998), ‘사회적 자연: 이론, 실천, 그리고 정치’(2001)에서는 자연과 사회 연구의 주요 흐름인 마르크스주의적 논의와 행위자-연결망 이론 등의 후기 구조주의적 논의를 한데 모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치적인 것의 중요성: 기술과학, 민주주의, 공적 생활’은 2006년 옥스퍼드대에서 열린 워크숍의 내용을 묶은 책이다. 최근에는 인류세와 관련해 생물 안보, 도시 회복력을 연구하면서 미셸 푸코, 조르조 아감벤을 재해석하고 있다.

 

문화일보 2019.11.05

/ 2022.03.28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