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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의 인문학] ① 프롤로그 - 소설 '그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얻어낸 것' (2022.03.23)

푸레택 2022. 3. 23. 17:39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① 프롤로그 - 소설 '그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얻어낸 것' (daum.net)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① 프롤로그 - 소설 '그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얻어낸 것'

■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새로운 일상의 탄생철곤 씨는 반나절 내내 베란다 의자에 앉아 아내의 그 말만 생각했다. 그냥 얌전히 자신이 벌어다 주는 밥을 먹으라는 것. 베란다에 말라죽은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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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백두리 작가
이기호 소설가

■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새로운 일상의 탄생

철곤 씨는 반나절 내내 베란다 의자에 앉아 아내의 그 말만 생각했다. 그냥 얌전히 자신이 벌어다 주는 밥을 먹으라는 것. 베란다에 말라죽은 화분들처럼, 그 화분들의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별안간 철곤 씨는 그곳에 벼를 심을 생각을 한 것이었다. 쌀이 나오고, 밥이 나오는 일.


1. 부러진 마음

철곤 씨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벼를 재배할 마음을 먹은 것은 지난 5월 초순의 일이었다.

뭐를 키운다고? 그의 아내는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철곤 씨는 그때 베란다에 웅크리고 앉아 빈 스티로폼 박스에 볍씨를 옮겨 담고 있었다. 볍씨가 모두 잠길 정도로 물을 채운 후 키친타월을 덮어줄 생각이었다. 철곤 씨는 느리지만 신중하게 볍씨를 깔았다. 배를 키운다고? 갈아 만든 배? 아내가 아무리 물어도 철곤 씨는 묵묵부답, 자기 할 일만 했다. 그래, 당신 마음대로 해… 아내는 철곤 씨의 등 뒤에 그 말만 남기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다고.

사실 철곤 씨는 그때까지도 아내인 상미 씨에게 섭섭한 마음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아니, 섭섭한 정도가 아니지. 그 이상이지. 철곤 씨는 찰방찰방하게 볍씨를 적신 물을 손바닥으로 가늠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부부라는 게 뭔가? 남들과는 다른 관계, 특별하고 하나뿐인 인연, 그게 아니던가? 때때로 다투고 사소한 일에 상처받더라도, 그래도 마지막까지 내 편이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 그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아니던가? 부부관계가 예전만 못했지만 철곤 씨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두 달 동안 아내에게서 받은 인상은 그 믿음과 정반대되는 것들뿐이었다. 어쩌면 제일 먼저 나를 떠나갈 사람, 누구보다 냉정하게 나를 외면할 사람.

두 달 전, 철곤 씨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50cc짜리 스쿠터를 몰아보다가 그대로 자빠졌고(코너를 돌다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해 혼자 넘어진 것이다), 그 바람에 오른쪽 팔꿈치 뼈와 정강이뼈가 그대로 부러지고 말았다. 팔꿈치는 그냥 깁스만 해도 되는데 정강이는 입원 후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입원 기간만 2주, 재활 기간까지 포함하면 모두 두 달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며칠 전, 철곤 씨가 중고나라를 통해 구입한 30만 원짜리 중고 스쿠터는 그대로 폐차되고 말았다.

문제는 아내의 태도였다. 철곤 씨가 응급실을 거쳐 바로 수술을 하고, 또 6인실에 입원하는 과정 내내, 아내는 한 번도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 전화가 오고 아들인 성주를 시켜 간단한 속옷과 수건, 덮는 이불을 챙겨줬지만 정작 자신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성주 아빠, 섭섭해하지 말고 잘 들어 봐. 나, 지금 병원에 갈 수가 없어. 우리 국장하고도 얘기해 봤는데… 국장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야. 정 필요하면 따로 간병인을 붙이더라도.”

아내의 말인즉슨 코로나 때문에 병원 출입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한 학습지 회사의 지역총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학습지 교사 서른 명을 관리하는 남부 지역팀장. 그것이 아내의 직함이었다. 매주 한 번씩 회사에 모여 교사들과 회의를 하고, 또 따로 일일이 학습지 교사들을 찾아가 실적이나 본사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일. 그래서 자신은 좀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자신이 병원처럼 고위험 시설에 갔다가 코로나라도 걸리는 날엔 그것이 학습지 교사들에게, 다시 학습지 교사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그 부모에게, 연쇄적으로 번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 가뜩이나 학습지 끊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비상이 걸렸는데.

처음 철곤 씨는 그런 아내의 입장을 십분 이해했다. 영상통화를 하면서 ‘당연하지. 당신이 여길 오면 안 되지’ 하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아들도 보낼 필요 없다고, 아들이 감염이라도 되면 당신은 또 어쩌려 그러느냐, 역정을 내기도 했다. 아내는 학습지 교사를 8년 가까이 한 다음 팀장으로 올라간 사람이었다. 철곤 씨는 아내가 매달 실적 그래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지, 엇나가는 학습지 교사들과 얼마나 많이 다투고 화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철곤 씨는 작년 말부터 다니던 용역회사에서 퇴직한 후 이렇다 할 직업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스쿠터를 산 것도 퀵서비스 일을 시작해보려고 한 것이었다). 몇 개월 동안 혼자 힘으로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 철곤 씨는 자신이 설령 두 팔 두 다리가 다 부러졌다고 하더라도 아내가 병원에 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딱 하루밖에 가지 않았다. 병원에선 발열 검사를 통과한 사람에 한해 입원환자당 한 명씩 보호자 출입을 허가해 주었다. 철곤 씨가 입원한 6인실은 골절 환자 전용이었는데, 철곤 씨만 빼곤 모두 보호자가 있었다. 두 명은 아내 대신 동생과 딸이 와 있었고, 또 나머지 두 명은 출퇴근 이후 아내가 찾아와 자리를 지켰다. 오직 철곤 씨만 혼자 힘으로 배식을 받고 화장실을 가고 엑스레이를 찍으러 낑낑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그래도 다들 마스크를 쓰고 오는구나, 어쩌면 병실이 더 안전할 수도 있으니까. 철곤 씨는 왼손으로 밥을 먹다가 자주 앞 침대 환자와 보호자에게 시선이 갔고, 그 바람에 자꾸 음식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 번은 오겠지. 장조림이나 깻잎 같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왜 골절환자에게도 저염식을 주는 거지? 철곤 씨는 매 끼니 거의 밥을 남기곤 했다.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퀵으로 병원 데스크에 맡겨둘게. 아내는 통화할 때마다 그렇게 말했지만 철곤 씨는 누워만 있는데 뭐, 하고 말을 줄였다. 누워만 있으니까 불편해서 죽겠네, 누워만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 아내가 그다음 말을 알아듣길 원했지만… 매정해라, 아내는 그래 그럼, 이참에 푹 쉬고 있어, 라는 말만 거듭했다. 그리고 정말로 2주 동안 단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 철곤 씨의 팔과 다리가 아닌, 마음의 어떤 부분이 골절된 건 바로 그즈음이었다.


2. 벼는 자란다

하얗게 발아한 볍씨를 좀 더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로 옮긴 것은 5월 중순의 일이었다. 스티로폼 박스가 부족해 비어 있던 김치통과 화분에도 볍씨를 옮겨 심었다. 6월 초순, 베란다 가득 발 디딜 틈 없이 한 뼘 크기의 벼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철곤 씨는 매일 두 번씩 빠트리지 않고 스티로폼 박스와 김치통에 물을 담뿍담뿍 뿌려주었다. 벼는 물만 먹고도 잘 자랐다.

“정말 이러기야?”

어제 아침, 아내는 출근하기 직전 베란다에 있는 철곤 씨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철곤 씨는 그때도 호스로 벼에 물을 주고 있었다. 화분에서 튄 물방울들이 거실 유리창에 점점이 달라 붙었다.

아내의 손에는 아들 성주의 하얀 면티가 들려 있었다. 빨래한 옷들이 하나도 제대로 마르지 않았다는 말씀. 베란다에 빨래를 널 수 없으니….

“당신이 뭐 소작농이야? 뭐 동학농민 운동할 거야? 왜 아파트 베란다에 농사를 짓겠다고 이러는 거야?”

철곤 씨는 대꾸하지 않고 계속 호스만 잡고 있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에 시작한 농사인데. 철곤 씨는 계속 속으로만 생각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철곤 씨는 자주 아내와 다퉜다. 별일 아닌 것에도, 별말 없이 넘어갈 일에도, 계속 툭툭 철곤 씨의 입에서 빈정대는 말이 튀어나왔다. 밥은 어떻게 같이 먹지? 내가 병원에서 감염되었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당신 일에 지장 많잖아? 나 오늘 집 앞 마트도 다녀왔는데 괜찮겠어? 당신, 출근하면서 모르는 사람도 많이 만나잖아? 그 사람들은 괜찮은 거야? 철곤 씨가 계속 이죽거리자 아내가 참다 참다 폭발했다.

“나까지 일 그만두면? 앉아서 서로 얼굴 보고 있으면 쌀이 나오니, 밥이 나오니?”

그러면서 아내는 실직한 철곤 씨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난했다. 그 말 앞에선 철곤 씨도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게 또 사실이니까.

“당신은 그렇게 쭉 집에만 있어. 괜히 나가서 사고 치지 말고. 그게 나 도와주는 거니까.”

철곤 씨는 반나절 내내 베란다 의자에 앉아 아내의 그 말만 생각했다. 그냥 얌전히 자신이 벌어다 주는 밥을 먹으라는 것. 집에만 있으라는 것. 그 말이 그의 몸피를 바싹바싹 메마르게 만들었다. 베란다에 말라죽은 화분들처럼, 그 화분들의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별안간 철곤 씨는 그곳에 벼를 심을 생각을 한 것이었다. 쌀이 나오고, 밥이 나오는 일. 집에만 쭉 머물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일. 철곤 씨는 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볍씨 구매 경로를 알아 보았다.

베란다에서 일을 마치고 새참이라도 먹을까(사실 ‘아점’인데, 벼를 재배한 뒤부터 철곤 씨는 늘 ‘새참’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렸다), 거실에 나오니 아들이 노트북으로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었다. 철곤 씨가 신기한 마음에 목장갑을 낀 채 등 뒤로 다가가니, 아들이 몸을 조금 틀어 화면을 감췄다. 그 바람에 노트북 웹캠에 철곤 씨의 베란다가 그대로 잡힌 모양이었다.

“어? 성주네 집 베란다엔 웬 풀이 저렇게 많니?”

선생님의 음성이 노트북에서 흘러나왔고, 곧이어 아이들이 와, 하고 웃는 소리도 튀어나왔다. 성주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철곤 씨가 대신 노트북 앞으로 얼굴을 삐죽 내밀며 선생님께 인사했다.

“아, 선생님, 저거 벼입니다.”

“벼… 벼요…?”

노트북 화면 속에서 중년의 남자 교사 한 명이 철곤 씨를 보며 인사했다.

“네. 제가 직접 키운 겁니다.”

아이들이 또 한 번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 네. 거 참, 대풍이네요.”

“그렇죠? 제가 노력 좀 했습니다.”

철곤 씨가 계속 말을 이으려고 했을 때, 아들인 성주가 노트북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은 홱,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철곤 씨는 뒤돌아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바닥 타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자리 잡은 벼들. 이제 곧 이삭이 팰 벼들. 철곤 씨는 그렇게 올해 첫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글=이기호 소설가ㅣ문화일보 2020.10.05

이기호 : 소설가.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99년 현대문학에 단편 ‘버니’가 당선되며 등단. 장편 ‘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소설집 ‘누가 봐도 연애소설’ ‘최순덕 성령충만기’ 등이 있다. 이효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받았다.

[문화일보·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공동기획]

/ 2022.03.2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