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물질의 행위는 인간의 몸에 우발적 영향을 끼치는가? (daum.net)
이정호 작가
김종갑 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물질의 행위는 인간의 몸에 우발적 영향을 끼치는가?
A : “몸은 장소·물질·제도가 상호 작용하는 물질적 실체”
(24) 스테이시 앨러이모(Stacy Alaimo, 1962~)
물질·제도 등이 몸 가로지르는
운동으로서 ‘횡단신체성’ 제시
음식=대표적 ‘횡단신체적’ 물질
인간의 몸은 많은 물질과 만나
건강해지기도, 病 걸리기도 해
자연의 살이 인간의 몸이자
인간의 살이 자연의 몸 주장
생산과정에 퍼진 독성물질 추적
사회적 부정의·환경피해 폭로
20세기 후반 서구 담론계에서는 ‘몸적 전환(bodily turn)’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몸이라는 주제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조형적 몸, 액체 몸, 말랑말랑한 몸, 수행적 몸과 같은 용어가 등장했고, 몸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몸의 물질성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는 비판이 이내 제기되었다.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물질이며 이 사실을 간과한 채 몸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었다. 이에 따라 담론계에서는 물질로서의 몸에 주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물질을 해명하려는 노력은 신유물론을 비롯한 새로운 이론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스테이시 앨러이모는 신유물론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학자로, 그의 물질관은 휴머니즘적 전통과 상반된 지점에 있다. 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을 유일한 지적·이성적 존재로 간주한다. 인간은 다른 동식물과 달리 자기 행동의 의미와 목적을 명확히 인식한다. 반면 자연은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몸이라면 다른 동물은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휴머니스트들은 인간과 동물을 분리할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도 구분한다. 성적 행위에서 남성에게는 능동적 역할을, 여성에게는 수동적 역할을 강제로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앨러이모는 이로써 여성의 몸이 남성의 성적 만족을 위한 살덩어리로 격하되었다며 휴머니즘적 전통을 맹렬하게 비판한다.
서구의 사유 전통에 따르면, 여성은 동물처럼 자연에 속박된 존재로서 추상적 사유 능력이나 자율성, 주체성 등 근대적 인간의 특성을 결여하고 있다. 기존의 페미니즘 이론은 이 오래된 편견에 맞서 싸우기 위한 전략으로 여성을 자연에서 분리해 내려 노력했다. 그 결과, 생물학적·자연적 성(섹스)과 사회적 성(젠더)을 구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더욱 급진적인 학자들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앨러이모는 과거의 페미니즘 이론이 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성의 자연적·물질적 소여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물질 세계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페미니즘이 생물학적 결정론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물질이 무엇인지 새롭게 정의하고 물질과 인간의 상호 작용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세상의 모든 물질은 어떻게 교차하고 상호작용하는가
앨러이모는 서양의 인간 중심주의와 남성 중심주의를 해체할 도구로 ‘횡단신체성(transcorporeality)’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횡단신체성에는 ‘신체(body)’가 아니라 ‘살된(corporeal)’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개념적으로 중요한 차이다. 신체는 안과 밖의 경계, 너와 나의 경계가 분명한 개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한 명, 두 명과 같은 방식으로 그 수를 명확히 헤아리는 일이 가능하다. 그러나 살에는 형태가 없어서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다. 또한 안과 밖을 나누지 않기 때문에 모든 동식물과 광물질을 개별화하지 않으며 모두가 자유롭게 넘나드는 땅처럼 존재한다. 이 점에서 횡단신체성은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서 포스트 휴머니즘과 같은 계보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상 없는 물질을 여성적인 것으로 규정했던 철학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횡단신체성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사유할 여지가 더욱 큰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앨러이모는 횡단신체성을 개념적으로만 정의하지 않는다. 그는 이 개념으로 역사적 사례를 재조명해 이전에 간과되던 물질적 진실의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앨러이모가 주목한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업 재난 중 하나인 호크스네스트 터널 사고다. 1930년대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는 산을 가로질러 4.8㎞ 길이의 터널을 뚫는 공사가 시행돼 인부 3000여 명이 투입되었다. 그런데 규폐증을 유발하는 위험 물질인 이산화규소 분진이 발생하는데도 건설 회사에서는 마스크를 비롯한 보호 장비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인부들은 이산화규소 분진에 장기간 노출되었고, 그중 500∼1000명이 규폐증으로 사망했다.
신유물론이 등장하기 전 페미니스트와 생태 비평가들은 이 사건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에 주로 주목했다. 재난이 자본, 권력, 계급과 연루되며 어떻게 담론으로 구성되는지, 몸이 규폐증과 같은 특정한 병명으로 어떻게 의료화하고 증상화하는지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으로는 노동자의 몸과 자연의 물질성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없다. 앨러이모는 그 대신 노동자의 몸, 화학 물질, 터널, 의료 시스템 등이 침투하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물질적 상호 작용을 더욱 중시한다. 굴착 작업에 임하는 노동자의 몸에서 권력, 지식, 물질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살펴보려 한 것이다.
노동자는 고통을 호소하지만 건설 회사에서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의 고통을 일축해 버린다. 질병을 가시화하려면 그 밖에도 여러 물질이 개입해야 한다. 노동자는 병원을 방문해 엑스선 사진을 촬영한 뒤 전문의에게 해석과 진단까지 받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경험을 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렇듯 앨러이모는 이산화규소, 엑스선, 의사의 시선 등이 유입하는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석회암, 주물사(沙), 연마재와 같은 물질이 어떻게 노동자의 몸을 투과했는지를 밝혀낸다.
◇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앨러이모가 묘사하는 자연은 척박한 황무지도, 아름다운 풍경도, 기괴한 절벽도 아니다. 자연은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이자 몸에 치명적인 해를 가하는 불길한 힘이며 권력과 지식의 연결망과 분리될 수 없는 물질적 실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은 장소, 물질, 제도가 서로 충돌하며 상호 작용하는 물질적 실체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자의 허파로는 미세 먼지만 침투하는 게 아니다. 회사 시스템, 의료 제도, 경찰, 행정 당국과 같은 네트워크도 침투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횡단신체성은 다양한 물질, 제도, 담론이 몸을 가로지르는 물질적 운동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호크스네스트 터널 사고의 사례가 말해 주듯 이 물질적 운동의 행위자는 인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위, 무기체, 생태계, 화학 물질, 엑스선 등 모든 물질에 행위 능력이 있다. 인간의 몸은 이들 물질과 만나 더 건강해지기도 하고,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몸은 물질 세계의 우발적·창발적 혼합물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인간이 날마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음식은 대표적인 횡단신체적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앨러이모에 따르면, 살을 비롯한 물질에는 주체와 타자, 안과 밖,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주체와 타자가 서로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고 몸이 외부를 향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가 인간 주체이고 어디서부터가 비인간 타자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 자연의 살이 인간의 몸이고, 인간의 살이 자연의 몸이다. 몸이 곧 자연이자 물질이다. 그래서 앨러이모는 횡단신체성이 “인간이 인간을 넘어서는 세계와 맞물리는 지점”이라고 주장한다.
앨러이모의 논의는 생태계 파괴를 비롯한 전 지구적 위기에 대처하는 생태이론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그는 환경주의 운동이 논리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요구들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즉 지역적이지만 전 지구적이고, 개인적이지만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실천적이고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앨러이모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횡단신체성이라는 독창적 개념을 제시해 물질이 몸과 환경 사이를 이동하는 양태를 보여 주었다. 그의 이론은 인류의 생산 및 소비 활동 전반에 퍼져 있는 독성 물질을 추적하고, 전 지구적으로 연결돼 있는 사회적 부정의, 느슨한 규제, 환경 피해의 실상을 폭로하는 데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시의적·실천적 가치를 지닌다.
오늘날 지구는 기후 변화, 온도 상승, 오존층 파괴, 플라스틱 오염, 해빙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류의 멸종이 임박했다는 불길한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생태계가 마주한 위기가 인간의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 등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점이다. 자연을 이용 대상으로만 여기는 기술 문명적 세계관이 인류세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화석 에너지 사용을 감축하고 그린 에너지를 개발하는 등 과학 정책 차원의 실천과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의 근본적 전환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간의 몸이 자연의 살이며 자연의 몸이 인간의 살이라는 깨달음이 없다면 이런 노력은 임시방편으로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김종갑 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스테이시 앨러이모
분야: 환경 인문학, 영미 문학, 과학학
사상: 신유물론, 물질적 페미니즘, 환경 정의
주요 활동·사건: 문학환경학회 환경 비평 부문 저술상 수상(2011)
오늘날 신유물론적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학자로 환경 인문학, 과학학, 동물학, 미국 문학, 문화 이론 등을 횡단하며 연구와 강의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특히 신유물론, 물질적 페미니즘, 환경 정의, 해양 인문학을 연구하는 새로운 모델을 창안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1985년 구스타프아돌푸스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86년 위스콘신대 매디슨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 일리노이대 영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 4년간 같은 학교에서 영문학과 여성학을 가르쳤다. 강사 생활을 마무리한 뒤 텍사스대 알링턴 영문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으며 2010년 같은 과 석학 강의 교수로 부임했다. 2019년부터는 오리건대 영문학과 석학 강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0년 첫 저서 ‘길들지 않은 땅’을 출간해 남성적 권력에 훈육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제시했다. 2010년에는 ‘말 살 흙’을 발표해 학문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창안한 횡단신체성 개념은 살(물질)의 횡단하는 성질을 이론적 논의 대상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는데, 동명의 미술 전시가 2019년 독일 쾰른 루트비히미술관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말 살 흙’은 생태적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와 함께 2011년 문학환경학회(ASLE) 환경 비평 부문 저술상을 수상했으며 독일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됐다. 2016년작 ‘노출’에서는 인류의 윤리와 정치가 21세기 지구 환경에 의해 급진적으로 뒤바뀌는 현실을 드러내 과학자, 활동가, 예술가, 작가, 이론가들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 밖에 신유물론적 페미니즘과 관련된 여러 기획서와 학술지를 편집했으며, 단독 저서로 ‘푸른 생태학의 구성’ ‘저항과 쾌락’을 출간할 예정이다
문화일보 2020.02.18
/ 2022.03.2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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