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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함께 사유하는가? (2022.03.21)

푸레택 2022. 3. 21. 09:44

<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함께 사유하는가? (daum.net)

 

<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함께 사유하는가?

A : 새들도 다양한 언어·유희 가져… 동물 입장에서 생각하라■ 뱅시안 데스프레(Vinciane Despret, 1959~)인간만큼…동물도 사람 응시해철학, 동물의 응시에 답하려면동물의 사유방식 배워야 가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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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근 작가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함께 사유하는가? 

A : 새들도 다양한 언어·유희 가져… 동물 입장에서 생각하라

■ 뱅시안 데스프레(Vinciane Despret, 1959~)

인간만큼…동물도 사람 응시해
철학, 동물의 응시에 답하려면
동물의 사유방식 배워야 가능
이스라엘 사막에 사는 조류
이타성과 위계질서 등 지녀
춤도 번식만을 위한 것 아냐
동물 입장서 보기를 실천해야
돼지열병탓 살상된 멧돼지 등
많은 생명체에 책임감 가져야

◇ 동물을 향한 경이와 호기심

동물은 이제 인간 사회 바깥의 존재가 아니다. 신문의 사회면에도 동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해 야생 멧돼지 사냥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물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자로서 온기와 애정을 나누기도 하지만 가축 전염병의 매개체로서 위험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가축 살처분으로 인해 동물들이 무수히 죽어가는 모습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렇듯 동물들은 사회에서 다양한 지위, 역할, 정동을 통해 인간들과 다양한 관계를 형성한다. 이런 이유로 인간이 동물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의 문제가 인문학적으로 진지하게 성찰되고 있다.

벨기에의 철학자이자 동물 행동학자인 뱅시안 데스프레는 인간과 동물이 맺는 다양한 관계를 철학과 동물 행동학의 서사로 직조한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설정하는 여러 정동 가운데서도 특히 경이와 호기심을 강조한다. 철학이 경이와 호기심에서 시작되듯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두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동물과 인간의 동질성보다 이질성과 차이를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은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점에서 경이를 불러일으키며 이로써 인간과 흥미로운 동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데스프레는 프랑스 철학자 이사벨 스탕게르스가 이야기하는 ‘코스모폴리틱스’, 다시 말해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가 공통으로 참여하는 생태적 집합체의 다양한 결합’을 추적하는 철학을 실천한다고 할 수 있다.

데스프레는 자크 데리다에 대한 도나 해러웨이의 비판을 인용하며 철학은 왜 동물이 부재한 상황에서 동물을 관념적으로 논하는지 질문한다. 인간이 동물을 응시하는 만큼 동물 역시 인간을 응시한다. 그럼에도 철학은 동물의 응시를 무시한다. 데스프레는 철학이 동물의 응시에 응답해야 하며 그러려면 철학자들이 동물로부터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로써 그는 동물을 이성과 계몽의 타자로 인식하는 기존의 철학 전통과 거리를 둔다.

◇ 동물은 어떻게 연구에 참여하는가

데스프레는 실험실 과학이 아니라 현장에서 동물을 직접 관찰하는 동물 행동학의 방법론을 통해 동물로부터 생각하는 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한다. 그는 동물을 연구하며 예의를 갖추는데, 이것은 윤리적 의무이자 일종의 방법론적 장치이기도 하다. 동물을 단순히 연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달리, 데스프레는 동물들도 앎의 과정에서 일종의 공동 작업을 함께 수행하고 훨씬 생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동물은 때로 데스프레의 연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도 한다. 데스프레는 동물을 하나의 대상이나 범주로 환원하지 않으며 각각의 동물은 모두 개별적 개체로 인식돼 저마다의 성격을 생생히 드러낸다.

데스프레는 동물의 생각을 알아내고 동물과 함께 사유를 발전시키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다. ‘양에게도 의견이 있다’ ‘생태학과 이데올로기’ ‘동물 세계의 주체성 형성’ ‘우리가 제대로 질문한다면 동물은 뭐라고 답할까?’ ‘공감, 관점, 입장들 사이의 동물 행동학’ 등 논문 제목만 살펴보더라도 연구 주제의 다채로움이 드러난다. 이뿐만 아니라 현장 연구(남부얼룩무늬꼬리치레, 양, 늑대), 유튜브 비디오(고양이, 까마귀, 사자), 과학 실험실(카푸친 원숭이, 쥐), 동물원(오랑우탄, 개코원숭이), 농장(돼지, 염소, 소), 영화(앵무새), 문학(말, 호랑이), 철학 및 역사(문어, 진드기, 갈까마귀) 등 다양한 종과 매체를 넘나들며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공존하고 결합하고 얽히는지 설명하기도 한다.

그중 대표적 사례가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에 서식하는 조류종인 남부얼룩무늬꼬리치레와 이 종을 연구한 동물 행동학자 아모츠 자하비에 대한 연구다. 자하비는 관찰을 통해 이 새들이 복잡한 상호작용, 이타성, 관계성을 형성하고 자기들만의 다양한 언어와 위계 등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데스프레는 자하비가 새들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살펴보며 자연 과학자들의 작업이 이데올로기와 정치성으로 오염되어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찰스 다윈과 표트르 크로포트킨을 예로 들자면 동일한 동물의 행위를 관찰하더라도 다윈은 경쟁을 중시한 데 반해 크로포트킨은 이타성과 연대를 강조했다. 새들의 행위를 경쟁 중심적으로 설명하는 다른 동물학자들과 달리, 자하비는 이타성, 유희 등 다양한 상호작용과 사회적 관계성을 탐구했다.

데스프레는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인간의 탐구 방식 자체를 의문시한다. 생물학적 연구에서는 새의 모든 행동을 단순히 진화와 번식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기존의 행동학을 비롯한 분야에서는 새의 행위를 진화 등의 목적에 따른 행위로 설명하지만, 새의 춤을 그 자체의 유희로서 볼 수는 없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새의 춤은 번식만을 위한 행위인가 아니면 유희인가? 새에게도 놀이가 있느냐는 질문은 새가 진화의 법칙에 의해서만 생존하고 번식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름의 미학, 유희, 놀이를 갖춘 유기체임을 생각해 보게 한다.

데스프레는 자하비를 관찰하며 알게 된 내용을 토대로 동물 행동학이 단순히 과학적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생산한다고 말했다. 과학 지식의 생산은 언제나 어떤 구체적인 존재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과학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관찰과 분석이 아니라 암묵적 서사에 기초해 있으며 동물은 인간과 함께 그 서사를 형성하는 데 개입한다. 그래서 데스프레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로 구성할 때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실천한다. 그러려면 연구자가 던지는 질문이 인간만이 갖는 관심에 의해 제시된 것인지 동물도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인지 되물어야 한다. 데스프레가 보기에 재미있는 연구란 모든 존재를 흥미롭게 보이게 하는 연구다. 경험과 의미를 강조하는 이유는 동물을 도구로 볼 것인가 생명으로 볼 것인가의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함이다. 경험과 의미를 통해 과학 기술에 잠재돼 있는 서사를 드러내고 이로써 새로운 과학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인간-동물 공존을 위한 현실적 해결책과 책임감

데스프레의 철학은 실용주의에 근간한다고 볼 수 있다. 데스프레는 스탕게르스가 언급한 낙타 열한 마리의 유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산으로 남겨진 낙타 열한 마리를 세 아들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 아버지는 낙타 열한 마리 가운데 절반을 첫째에게, 4분의 1을 둘째에게, 6분의 1을 막내에게 유산으로 나누어 주기로 했다. 세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어떻게 실행할지 논의하다가 현자를 찾아갔다. 현자는 세 아들에게 낙타를 한 마리 빌려주고는 이 낙타를 각각의 몫에 맞게 나눠 보라고 제안했다. 아들들은 셈을 해 본 뒤 낙타를 현자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 이야기는 유산과 전통의 역설을 잘 보여 준다. 역사적으로 과학, 철학 등 여러 학문적 전통에서는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동물 관계를 이해해 왔다. 각각의 관점은 상충하기도 하지만 데스프레는 이를 정합적으로 통합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낙타 이야기를 통해 실용주의적 태도로 실제 문제에 접근해야 함을 주장한다. 인간은 전통에 긴박돼 있는 존재다. 유산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연원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열한 마리 낙타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유산은 파괴하지 않으면 나눌 수도 없다. 그래서 데스프레는 철학의 전통에서 사유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동물로부터도 사유함으로써 두 가지 철학적 충돌 지점을 나름대로 절충한다. 그는 관념적 유토피아나 이상향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 방안, 인간이 동물과 공존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임감 등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인간-동물의 만남과 관계에 대해 실천적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다.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주 전염원으로 지목돼 수많은 돼지가 살처분되고 멧돼지들은 무차별하게 살상되었다. 인간은 이 돼지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농민, 살처분 노동자뿐만 아니라 죽음을 맞은 돼지들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 나아가 공장식 출산에 의존해 육식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본원적 한계를 인정하되 모든 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동물과 더 책임감 있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덜 사악하면서도 덜 인간 중심적으로 동물을 대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숙고해야 한다. 인간은 지구에서 상호 의존적으로 얽혀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

주윤정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


■ 뱅시안 데스프레

분야: 철학, 동물 행동학, 사회 심리학

사상: 실용주의, 포스트 휴머니즘, 인간-동물 관계

주요활동·사건 : ‘동물과 인간’ 전시 기획

동물 행동학과 과학 철학을 융합한 철학자로, 리에주대 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1997년에는 ‘열정의 지식, 지식의 열정’이라는 논문으로 감정 이론을 분석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 심리학 연구에서 동물 행동학으로 관심 영역을 확장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2008년에는 파리정치대에서 과학인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수많은 동물 행동학적 관찰을 통해 동물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며 동물 행동학을 성찰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다양한 사상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스탕게르스, 라투르, 해러웨이 등과 공동으로 연구하며 지적 영향을 주고받았다.

‘늑대가 양과 함께 살게 될 때’(2002), ‘동물과 인간’(2007) 등 초기 저작에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념을 문제시하며 동물의 관점을 과학 철학에 도입하고자 했다.

스탕게르스와 함께 쓴 ‘소란 떠는 여자들’(2014)에서는 여성 학자들의 이력과 지적 유산을 검토하며 부정의, 잔인함, 무지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제대로 질문한다면 동물은 뭐라고 답할까?’(2016), ‘양과 함께 일하기’(2016), ‘새와 함께 살기’(2019)에서는 동물이 인간과 적극적으로 맺는 관계를 논했다.

양은 양치기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양치기는 양에게 무엇을 배우는지, 새들은 영토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새가 노래를 통해 어떤 말을 하는지 등을 기술함으로써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고 얽혀 있는 다양한 방식을 가시화하고자 했다. ‘죽음의 행복’(2015)에서는 살아 있는 인간들의 현존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존재인 망자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의 문제를 다뤘다. 동물과의 관계에 이어서 죽은 자와의 관계라는 문제를 탐구함으로써 철학의 영역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문화일보 2020.01.08

/ 2022.03.2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