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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컴퓨터 네트워크서 통제와 자유는 어떻게 공존하는가? (2022.03.21)

푸레택 2022. 3. 21. 09:50

<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컴퓨터 네트워크서 통제와 자유는 어떻게 공존하는가? (daum.net)

 

<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컴퓨터 네트워크서 통제와 자유는 어떻게 공존하는가?

A : 사이버공간의 자유, 모니터 이면의 통제에 순응한 대가(18) 웬디 희경 전(Wendy Hui Kyong Chun, 1969~)빅데이터가 찾아낸 상관관계불평등 심화와 인종차별 유도뉴 미디어 기술 결정론 비판각종 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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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작가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컴퓨터 네트워크서 통제와 자유는 어떻게 공존하는가? 

A : 사이버공간의 자유, 모니터 이면의 통제에 순응한 대가

(18) 웬디 희경 전(Wendy Hui Kyong Chun, 1969~)

빅데이터가 찾아낸 상관관계
불평등 심화와 인종차별 유도
뉴 미디어 기술 결정론 비판
각종 매스미디어·문화 탐사
컴퓨터 프로세싱 ‘未知 영역’
전산과정 비가시적으로 은폐
‘GUI=이데올로기 유사물’규정
빅데이터의 사용자관리에 맞서
‘잊어질·지워질’권리 실현하는
네트워크 사용방향도 제안해

2009년, 미국의 컴퓨터 전문가 블랙 데시는 유튜브에 영상 하나를 업로드했다. 이 영상은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현재까지 3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해당 영상에서 데시는 휴렛팩커드 컴퓨터에 내장된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를 동료와 함께 시연해 보인다. 먼저 흑인 남성인 데시가 컴퓨터 웹캠 앞에 선다. 그는 좌우로 움직이지만 소프트웨어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화면도 그대로 멈춰 있다. 그러나 백인 여성 동료가 화면 앞에 서자 갑자기 웹캠이 그녀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데시는 이 모의실험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이것을 영상의 제목으로 붙였다. “휴렛팩커드 컴퓨터는 인종차별주의자다(HP computers are racist).”

오늘날 사람들은 자아를 표현하고 세계와 연결되기 위해 일상적으로 소셜미디어를 이용한다. 또한 인공지능(AI)과 빅 데이터는 삶의 영역 곳곳으로 급속히 확산되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사용자 권한과 정보 검색을 대가로 네트워크에서 사용자의 행위를 추적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데이터 수집은 사용자의 취향과 성향을 바꾸기보다 이를 강화한다.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추천 페이지, 추천 영상, 광고 사이트 등이 알고리듬에 따라 자동적으로 제시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금년 초 뉴욕대 AI나우연구소는 미국 13개 도시 경찰에서 운영하는 범죄 예측 시스템이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이 담긴 결론을 산출해 왔다고 발표했다. 이를테면 흑인과 소수 인종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에 더 많은 잠재적 범죄자가 있다고 예측한 것이다. 이렇듯 시민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더러운 데이터(dirty data)’의 활용은 비판적 디지털 미디어학자 웬디 희경 전이 빅 데이터에 대해 통찰한 바를 뒷받침한다. “빅 데이터는 언뜻 무관해 보이는 상관관계를 찾음으로써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하고 인종주의적·차별적 실천을 유도한다.”

웬디 전의 견해는 이른바 뉴 미디어에 대한 기술 결정론이나 사용자 우선적 낙관주의에 비판적으로 맞선다. 즉 디지털 미디어가 세계, 대상, 주체를 전례 없이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시각에도, 사용자의 자유와 사용 방식에 따라 디지털 미디어의 효과가 결정된다는 시각에도 공히 반대하는 것이다. 그는 첫 번째 저서 ‘통제와 자유’(2008)에서 인터넷이 다양한 기술적·정치적·문화적 통제를 수반함에도 왜 신문, 방송 등 기존의 매스미디어에서 누릴 수 없는 자유의 도구로 도입되고 확산됐는지 묻는다. 그 이유는 네트워크가 통제와 자유를 불가분의 짝패로 마련하기 때문이다. 즉 사이버 공간의 사용자가 누리는 항해와 검색의 자유는 컴퓨터 모니터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일련의 통제에 은밀히 순응한 대가로 주어진다. 그러므로 인터넷을 이용하며 누리는 자유는 주체에게 프라이버시의 약화를 포함한 새로운 유형의 취약함을 수반하고 편집증적 불안을 야기한다.

웬디 전은 통제와 자유의 역설적 공존을 드러내고자 네트워크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 밖에 네트워크를 재현하는 다양한 미디어 문화를 탐사한다. 그는 우선 하드웨어의 차원에서 인터넷의 TCP/IP(Transmission Control Protocol/Internet Protocol)를 분석한다. 이로써 네트워크가 신호의 전송과 수신을 동시에 수행하는 쌍방향의 창처럼 작동함을 드러내고 인간의 인식을 벗어나는 그 창의 이면에서 기술적 통제가 이루어짐을 밝힌다. 또한 네트워크의 표면에서는 인터넷 포르노 문화의 양가적 면모를 지적한다. 즉 사이버 공간에서 번성하는 각종 포르노 사이트는 미국의 헌법 정신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공히 천명하는 사상과 상업의 자유를 웅변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자유와 더불어 부과되는 정보 통제의 존재를 입증한다. 통제와 자유의 갈등적 공존은 인터넷 문화를 재현한 광고,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등에서도 확산돼 왔다. 기업들은 인종, 성별, 연령과 관계없이 사용자의 자유와 역량을 강화하는 공간으로 인터넷을 홍보해 왔지만, 유색 인종은 사이버 주체의 초월적 정체성을 체험함으로써 차별받는 신체라는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나 이상화된 백인 부르주아 주체와 동일시하게 된다.

통제와 자유의 역설적 공존이라는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존재론은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역설적 공존으로 심화된다. 웬디 전은 두 번째 저서 ‘프로그래밍된 시각’(2011)에서 소프트웨어는 물리적 실체 없이 수많은 컴퓨터와 사용자 환경에서 널리 작동한다는 비물질성의 선입견에 도전한다. 그는 소프트웨어의 비물질성이라는 신화에 도전하면서도 소프트웨어의 역설적이고도 모호한(vapory) 특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인간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알 수 있지만 이를 구동하는 컴퓨터의 프로세싱은 인간의 지각을 넘어서기 때문에 미지의 상태로 남는다.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코드는 언어적으로 행동을 실행하지만, 전능한 프로그래머가 이 코드를 조직하고 개발한다는 신화는 코드의 기계적 자동성을 마법적인 것으로 은폐한다.

웬디 전은 소프트웨어의 이와 같은 역설이 사용자가 컴퓨터를 사용할 때 대면하는 인터페이스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raphical User Interface·GUI)는 컴퓨터 운영 체제 등에 적용됨으로써 사용자가 컴퓨터 하드웨어에 접속하고 이를 가시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GUI는 하드웨어 이면에서 작동하는 전산(computational) 과정을 비가시적인 상태로 은폐한다. GUI의 상호 작용성은 개인적 행위와 선택의 자유를 경제적 발전의 원천으로 상정하면서도 불안정한 세계에 계속 적응하기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을 체현한다. 웬디 전은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동원해, 사용자를 생산하고 하드웨어와 상상적 관계를 맺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GUI를 ‘이데올로기의 유사물’로 규정한다.

가시성과 비가시성이 다면적으로 공존하는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가장 심오한 역설은 메모리(memory·기억)의 차원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은 컴퓨터가 영구적인 기억 기계가 될 것이며 네트워크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정보의 아카이브가 되리라 기대하곤 한다. 이런 믿음은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기억과 저장을 통합하며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재생하고 다시 읽어 낸다는 점 때문에 생겨났다. 정보는 영구적 기억을 구성하기 위해 사라지고 갱신되는데, 웬디 전은 이 같은 정보의 역설을 ‘오래가는 덧없음(enduring ephemeral)’이라고 일컫는다.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내재된 ‘오래가는 덧없음’의 역설은 최근작 ‘동일 유지를 위한 업데이트’(2016)에서 소셜 미디어의 차원으로 연장된다. 웬디 전은 소셜 미디어의 본성과 소셜 미디어가 구축하는 ‘당신(들)(You)’이라는 정체성의 역설을 설명하고자 습관(habit)이라는 익숙한 철학적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는 습관을 둘러싼 사상적 계보, 즉 데이비드 흄, 존 듀이, 질 들뢰즈, 피에르 부르디외를 가로지르며 습관에 대한 자기만의 관점을 내놓는다. 웬디 전에게 습관이란 과거를 반복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한다는 점에서 ‘창조적 기대’다. 습관의 이 역설적 특징은 오늘날 활발히 서비스되는 소셜 미디어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은 개별 사용자인 ‘당신’인 동시에 세계 곳곳의 다른 사용자와 연결되게끔 독려받는 ‘당신들’로 호명되고, 자신의 존재가 항상적임을 입증하도록 끊임없이 상태 업데이트를 권유받는다.

습관은 업데이트를 촉발하는 기제임과 동시에 소셜 미디어를 순환하는 다양한 종류의 위기이기도 하다. 웬디 전은 이런 특성을 뉴 미디어의 결정적 차이, 네트워크의 시간성 등으로 규정하고 업데이트를 습관과 위기의 합(Habit + Crisis)으로 정식화한다. 소셜 미디어와의 습관적 연결은 업데이트를 촉진하면서 신자유주의의 동력인 불안정성과 변화의 논리를 뒷받침한다. 또한 빅 데이터를 비롯한 계량화된 데이터의 수집을 촉진하고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전통적 구별을 와해한다. 웬디 전은 소셜 미디어에서 벌어지는 친구 맺기나 사이버 폭력 등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전통적 프라이버시를 옹호하거나 전통적 공동체의 소멸을 애도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소셜 미디어에서 사적이고 개별적인 중독으로 치부되는 습관을 타자와 공유해 공통의 경험으로 재구성하고, 사용자의 행위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저장하고 관리하는 빅 데이터의 정치에 저항해 ‘잊어질 권리’와 ‘지워질 권리’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네트워크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지훈 영화미디어학자, 중앙대 교수

■ 웬디 희경 전


분야- 비판적 디지털 미디어 연구, 소프트웨어 연구, 컴퓨터 공학, 비판 이론

사상- 디지털 유물론, 비판적 인종 연구

주요 활동·사건-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 디지털 민주주의 그룹 연구 주도

현재 사이먼프레이저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로 있다. 2000년대부터 영미권 학계에서 성장해 온 비판적 디지털 미디어 연구 분야를 알렉산더 갤러웨이, 리사 나카무라, 이언 보고스트, 매트 퓰러 등과 함께 선도하며 기술 연구와 비판 이론의 생산적 결합이라는 학제 간 연구의 탁월한 사례를 보여 줬다. 디지털 문학, 비디오 게임, 온라인 비디오·텍스트, 데이터 시각화 등 컴퓨터에 기반한 문화적 대상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인터페이스에 주목해 이들의 기저에 작동하는 코드, 알고리듬, 프로그래밍의 기술적·물질적 차원을 상세히 분석한다. 또한 미셸 푸코, 질 들뢰즈, 프레드릭 제임슨, 조르조 아감벤 등의 비판 이론과 접속해 자신의 분석 작업을 디지털 미디어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활용에 대한 독해로 연장한다. 이로써 디지털 미디어가 비인간 행위자로서 기존의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동시에 인간의 주체성과 행위, 인간이 상정한 세계와 대상의 정의를 새롭게 재구성한다는 점을 입증한다.

뉴미디어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전반을 작동시키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기술임을 깨달으려면 컴퓨터 스크린 너머의 기술적·이데올로기적 작용을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반면 디지털 인문학에서 주장하듯 모든 인문학자가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식의 입장에는 비판적이다. 컴퓨터 하드웨어가 인간의 지각을 넘어 작동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코딩 지식만으로 이를 지배할 수 있다는 거짓 환상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디지털 인문학이 기존 인문학에서 연구한 대상을 단순히 소프트웨어로 다루는 데 그쳐선 안 되며, 과학과 인문학이 결합된 비판적 사유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차기작 ‘차별하는 데이터’에서 입증될 것으로 보인다. ‘차별하는 데이터’는 빅 데이터를 활용한 네트워크 분석이 인종과 젠더 정치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는 내용이라고 알려져 있다.

문화일보 2020.01.07

/ 2022.03.2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