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미래를 강조하는 삶은 가짜..네덜란드 정물화에 담긴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교훈 (daum.net)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미래를 강조하는 삶은 가짜..네덜란드 정물화에 담긴 '메멘토모리(죽
은퇴 후의 삶이 너무 길다. 은퇴가 다가왔거나, 은퇴한 세대는 허무하다. 겨우 이렇게 살려고 포기한 것이 그다지 많았단 말인가. 감정적이 되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슴속에선 회한의 눈물이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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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미래를 강조하는 삶은 가짜.. 네덜란드 정물화에 담긴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교훈
은퇴 후의 삶이 너무 길다. 은퇴가 다가왔거나, 은퇴한 세대는 허무하다. 겨우 이렇게 살려고 포기한 것이 그다지 많았단 말인가. 감정적이 되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슴속에선 회한의 눈물이 흐른다. 미래에 저당 잡힌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 현재가 된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중장년을 꽃으로 말하자면 시든 꽃? 아니다, 열매다. 무르익은 과일이다. 꽃이 시들어야 열매가 맺는 법이다. 그런데 꽃을 피운 적도 없으니, 당연히 쭉정이만 있는 열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인생을 다시 꽃피는 봄으로 돌리고 싶은가? 물론 불가능하다. 꽃피는 청춘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가능한 게 있다. 지금부터 오늘, 현재를 살아보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두려울 게 무엇이 있겠나. 이제 자식도 부모도 다 나만큼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현재가 행복해야 한다. 더 이상 현재를 미래에 담보하지 말자.
순간의 기쁨과 현재의 쾌락을 중시하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볼까. 꽃이나 과일 같은 흔하디흔한 대상을 그린 정물화가 사실은 서양미술사상 가장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 물론 모든 정물화가 그런 건 아니다. 미술학원에서 데생을 위해 그리는 정물은 그저 형태를 연습하기 위한 것이다. 정물은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꽃과 과일은 그 형상이 매우 조형적이니까. 그런데 수많은 정물화 중에서 특별히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우리 인생이 벤치마킹해야 할 지침이 들어 있다.
그 정물화를 보면 ‘꽃을 왜 그리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저 꽃과 과일이 아름다워서 그렸노라고 대답하는 것은 너무 피상적이다. 꽃은 언젠가는 시들기 때문에 그린다. 시드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리고, 그림으로나마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을 갖고 싶어서 그린다. ‘화무십일홍(열흘 붉은 꽃은 없다)’이라는 사실 때문에 화가들은 앞다퉈 그 생명의 정점의 순간을 그림 속에 담았던 것이리라.
정물화는 영어로는 ‘스틸 라이프(still life)’, 프랑스어로는 ‘나튀르 모르테(nature morte)’다. 각각 ‘움직이지 않는 생명’ ‘죽은 자연’이란 뜻을 담고 있는 정물화는 움직이지 않는 사물과 생명이 없는 사물만 모아놓고 그린 그림을 총칭한다. 서양미술사에서 정물화가 독립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아주 늦다. 꽃과 과일은 17세기 네덜란드에 와서야 비로소 주인공이 된다. 그전까지는 초상화나 성서 필사본 말미에 부수적으로 그려졌을 뿐이다. 정물은 인물과 서사에 비해 아주 하찮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정물화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것도 18세기 네덜란드 미술사학자 후브라켄에 의해서였다.
네덜란드 정물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흔히 봐온 정물화와는 아주 다르다. 피상적으로 봤을 때는 비슷해 보여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꽃의 조형성과 아름다움만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림이 아니다. 네덜란드 정물화 속에는 시든 꽃, 벌레 먹은 과일은 물론 징그럽게 생긴 곤충과 애벌레가 반드시 존재한다. 게다가 그 사실적인 묘사가 얼마나 정교하고 치밀한지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관객들은 먼저 전자 때문에 놀라고 후자 때문에 두 번 놀란다.
네덜란드 정물화가 탄생한 배경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네덜란드 정물화는 단순한 꽃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화다. 당대 화가 렘브란트의 종교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네덜란드 정물화는 개신교(칼뱅교) 국가인 네덜란드가 선택한 종교화라는 얘기다. ‘아름다움이나 부유함, 화려함과 즐거움, 예술, 위대한 명성 그리고 지상의 모든 것들은 꽃처럼 사라진다(시편 103장 15절)’는 성서의 말씀을 정물화만큼 잘 반영해주는 장르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더 이상 성상을 제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개신교 국가가 선택한 종교화가 바로 정물화였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런 까닭에 네덜란드 정물화 속 꽃과 과일(꽃이 피어야 열매가 맺으니, 정물화에는 꽃과 과일이 동반될 때가 많다)은 모두 비유로 이뤄져 있다. 우의화, 즉 알레고리 그림이다. 정물화의 내용을 하나의 텍스트처럼 재구성해 읽는다는 뜻이다.
이로써 네덜란드 정물화는 절제를 권면하는 기독교적인 교훈과 신이 주신 풍요를 누리라는 세속적 즐거움이 결합된 그림이 된다. 예컨대 하나의 정물화를 종교화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불의한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장미)으로, 성령(매발톱꽃)으로 잉태해 인간의 몸을 입고(카네이션), 이 땅에 내려와서 인간을 대신해 죽음으로 그 죄를 대속했고 부활(나비)했다…. 새사람으로 거듭난 인간(도마뱀 등 탈피하는 곤충류)은 땅에서 믿음을 지키며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해 신의 축복(튤립과 조개껍질 등으로 상징되는 네덜란드의 풍요로움)을 받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날은 한정이 있으므로(허물어지는 벽) 그리스도가 이 땅의 온전한 주인으로 다시 올 날을 기억하며(떨어진 꽃잎) 신앙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꽃 정물화를 통해 전해지는 식이다. 이뿐 아니다. 이들 꽃그림에는 네덜란드 사회의 경제 부흥과 지리상의 발견으로 인한 세계에 대한 지적 관심, 그리고 사치를 지향해가는 사회 풍조가 첨예하게 반영돼 있다. 흐드러지게 만발한 꽃들, 주위에 흩어져 있는 조개껍질, 꽃병 등 모든 것이 지리적 발견과 해외 교류를 의미한다. 이 발견은 당연히 종교적인 확고한 신념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 시대의 발견이란 아직까지 종교적 신념을 위한 것이었으니. 신의 섭리는 우주와 세계부터 한 송이 꽃이나 곤충과 같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정물화에 어떤 (종교)철학이 담겨 있는지 감이 잡히시는가? 아직 모르겠다면 다시 성서 속으로 들어가보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장)’라는 솔로몬의 한숨은 시대를 초월한 아포리즘이다. 그가 헛되다고 한 것은 죽음 앞에 모든 것이 무력하고 허무하다는 뜻이다. 즉 ‘메멘토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메시지다. 이를 꽃만큼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이 있겠나. 그런 까닭에 네덜란드 정물화는 ‘바니타스(vanitas·허무, 무상. 영어로 vanity는 자만심, 허영심, 헛됨, 무의미)’를 나타내는 최고가 장르가 됐다.
우리는 이 정물화에서 최고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메멘토모리’와 ‘카르페디엠’.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을 긍정한다는 것은 지금의 삶을 아주 적극적으로 살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그 시시하게만 보이는 꽃들에서, 삶의 커다란 모토를 다시 새길 수 있다. 죽음을 기억할 때만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자기답고 멋지게 살라는 말이다. 오늘을 살고 싶은 이들에게 이보다 더 큰 아포리즘은 없다. 남도에 매화가 지천일 것이다. 심기일전을 위해 매화 향기를 맡으러 떠나보는 주말은 어떨까?
유경희 미술평론가ㅣ매일경제 2016.03.21
/ 2022.03.2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