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예술] 역사 예술 문화 경영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예술가들의 양로원 로맨스 손녀뻘 아내 맞은 거장들.. “나이는 숫자” (2022.03.20)

푸레택 2022. 3. 20. 21:40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예술가들의 양로원 로맨스 손녀뻘 아내 맞은 거장들.."나이는 숫자" (daum.net)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예술가들의 양로원 로맨스 손녀뻘 아내 맞은 거장들.."나이는 숫자"

90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활동 중이신 노철학자 김형석 교수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그는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이 당신의 인생 중

news.v.daum.net

‘카롤린’, 1961년, 알베르토 자코메티. 자코메티는 거리의 여자들을 사랑했다. 50대 후반의 그는 몽파르나스의 한 바에서 만난, 그보다 40세쯤 어린 카롤린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카롤린은 자코메티의 마지막 모델이자 최후의 열정이었다.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예술가들의 양로원 로맨스 손녀뻘 아내 맞은 거장들.. “나이는 숫자”

요즘 양로원 로맨스가 간간이 들려온다. 몇 년 전 우연히 본 양로원 르포-다큐는 흥미로웠다. 나이 80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며 어떤 할머니가 운다. 다른 여자를 더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양다리를 걸치고 싶었겠지만, 가부간에 결단을 내라는 할머니 말에 당신은 아니라고 에둘러 말하고 자리를 뜬다. 또 한 할아버지는 남자친구가 있는 할머니를 짝사랑한다. 그 할머니는 병든 남친 할아버지와 함께 다른 양로원으로 옮겼다. 그러자 할머니를 짝사랑하던 할아버지도 양로원을 같은 곳으로 옮겼다. 기묘한 동반자적 삼각관계가 시작됐다. 씩씩한 현대 여성에 속하는 할머니는 여전히 병든 할아버지를 배려하고 보살피며, 자기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와는 친구로 지낸다. 조금 연하인 이 할아버지의 말이 더 압권이다. 자기는 평생 찾아 헤매던 이상형의 여자를 만났고, 그 할머니가 누구를 더 좋아하든 상관없다고. 자기는 그녀를 위해 해줄 것이 무엇인지에만 관심이 있다고…. 늙은이의 사랑, 이제 체면도 겉치레도 모두 벗어던졌으니, 이게 두려움 없는 진짜 사랑 아닐까?!

화가들은 늙어서는 어떤 사랑을 했을까? 늙은 거장의 사랑은 또 어떻게 예술에 영감을 줬을까? 미켈란젤로는 예순이 넘어서야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1541년 ‘최후의 심판’이 완성됐고 노쇠해진 60대 중반의 그는 이후 23년 동안 조각가로, 때로는 화가로, 때로는 토목기사와 건축가로 밤낮없이 일했다. 만년이 되자 그는 점차 고독해졌다. 동년배의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가까운 친척도 거의 다 죽었다. 그는 유일한 상속자인 조카 로렌초에게 모든 애정을 쏟았다.

그런 만년의 미켈란젤로에게 생애 최초의 위대한 열정이 싹텄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까지 젊은 청년들에게 바친 동성애적 사랑과는 다른 종류의 사랑, 즉 지성적인 열정에 근간을 둔 사랑이었다. 예순이 넘어 미켈란젤로가 사랑을 바친 여인은 비토리아 콜론나(Vittoria Colonna)였다. 콜론나는 베네치아 화파인 티치아노의 비너스 작품 주인공으로 등장할 만큼 유명한 귀족 여성이자 미망인이었다. 그녀는 남달리 독실한 종교적 감정을 지닌 지적이고 지혜로운 여성이었다. 콜론나 역시 미켈란젤로가 받아들인 플라톤의 지혜,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 예술의 신비를 똑같이 열렬하게 찬미했던 것 같다. 그러니 미켈란젤로 예술에 대한 그녀의 찬사는 누구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영감의 근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루벤스도 늙은 나이에 젊은 아내를 맞아들였다. 원만하고 다정했던 첫 번째 부인 이사벨라 브란트가 흑사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큰 상심에 빠진 그는 정치적 활동에 더욱 전력한다. 그러나 결국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외로움은 점점 더 커졌다. 루벤스는 자신이 독신으로 살며 금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고, 태피스트리 상인의 막내딸이었던 헬레나 푸르망과 혼인한다. 52세의 루벤스와 16세의 푸르망, 무려 36세의 나이 차가 났다. 그녀는 나이만 어린 게 아니라 ‘북유럽의 비너스’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풍만한 미인이었다. 푸르망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총명한 여인이기도 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년 이전, 캔버스에 유화, 베첼리오 티치아노. 미켈란젤로는 예순이 넘어 비토리아 콜론나란 여인을 깊이 사랑했다. 그녀는 당대 화가인 티치아노가 그린 비너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만큼 유명한 귀족 여성이자 미망인이었다.

루벤스는 생애 마지막 10년간 사랑스러운 젊은 아내의 모습을 여러 점 그린다. 특히 ‘모피를 두른 헬레나 푸르망’은 그가 마지막까지 간직했던 수작이다. 한 손은 가슴을, 다른 한 손은 모피를 잡아 음부를 가리며 ‘비너스 푸디카’의 포즈를 취했다. 화면 밖을 바라보고 있는 푸르망의 눈길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아는 듯 다소곳하고 수줍지만 동시에 당당하다. 그녀는 10년 동안 무려 다섯 명의 아이를 낳는다. 마지막 아이는 루벤스가 사망한 후에 태어났다.

"모피를 두른 헬레나 푸르망’, 1636~1638년, 나무에 유채, 페테르 파울 루벤스. 52세의 루벤스는 16세의 어린 푸르망과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루벤스는 생애 마지막 10년간 사랑스러운 젊은 아내의 모습을 여러 점 그렸다.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가장 치열하게 파고든 조각가 자코메티도 말년에 한 모델과 사랑에 빠졌다. 자코메티는 거리의 여자들을 지독히 사랑했다. 자코메티는 결혼을 했음에도 창녀들에게 단단히 빠져 있었다.

1958년 늦가을, 50대 후반의 그는 예술가들이 독한 술을 마시고 하룻밤 풋사랑을 하는 몽파르나스의 한 바에서 카롤린을 만난다. 그보다 마흔 살쯤 어린 여자였다. 그녀는 불량스럽고 변덕스러웠으며 약간의 바람기도 있었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했고, 미친 듯이 서로를 사랑했다. 평범한 육체관계일 수도 있는 것이 이 로맨스의 시작이었다. 그는 카롤린이 꿈꿨던 빨간 자동차를 사줬고, 그녀를 데리고 루브르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런던 테이트갤러리에도 갔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을 그녀에게 몽땅 보여주며 공유하고 싶었던 것. 당시 영국의 유명화가였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에게도 그녀를 소개했다.

자코메티는 카롤린이 자신을 계속 후원해줄 남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과, 그렇게 그녀를 후원하는 남자들에 대해 지독히 질투했다. 자코메티가 1962년과 1965년 사이에 그린 유화 ‘눈물을 흘리는 카롤린’과 ‘빨간 원피스를 입은 카롤린’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감탄을 자아낼 만큼 독특하다. 카롤린은 자코메티의 마지막 모델이자 최후의 열정이었던 것이다.

예술가의 만년 로맨스라면 피카소도 빼놓을 수 없다. 피카소는 60대 초반에 21살의 프랑수아즈 질로를 만나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들었다. 70이 넘은 나이에 자기보다 무려 45세나 어린 자클린느와는 결혼까지 한다. 흥미로운 건 여자가 바뀔 때마다 피카소가 새로운 사조를 몰고 왔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나이가 들었을 때 만났던 여인들이 훨씬 더 많은 영감을 준 것은 아니다. 영감의 근원으로 작동했던 여자들은 오히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만난 페르낭드 올리비에, 마리 테레즈, 도라 마르 등이었다. 하지만 늙어서 만난 여자들이 그의 창작의 불길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얼마 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읽고 난 후, 영화도 보게 됐다. ‘늙은 남자의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늙은 남자여, 포기 말라. 어쩌면 절체절명의 사랑이 남아 있을 수도!

유경희 미술평론가ㅣ매일경제 2016.02.22

/ 2022.03.2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