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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의 삽질일기] 부러진 삽자루 우습게 보지 마라 (2022.03.20)

푸레택 2022. 3. 20. 15:27

부러진 삽자루 우습게 보지 마라 | 중앙일보 (joongang.co.kr)

 

부러진 삽자루 우습게 보지 마라

사방에서 터지는 꽃망울을 보며 한 주 정도 농사일이 빨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개장 안내문자가 오지 않았다. 하늘 보며 때를 기다리던 주인장 타박하는 난 아직 멀었다. 서울도 강남과 강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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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이다. 밭 옆의 야트막한 산에 지금 한창이다. 진달래를 철쭉과 혼동하는 이들이 꽤 있다.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뒤에 난다. 철쭉은 반대다. 진달래가 철이 빨라 4월에, 철쭉은 5월에 핀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 독이 있는 철쭉꽃은 개꽃이라고도 부른다. [그림=안충기]

[안충기의 삽질일기] 부러진 삽자루 우습게 보지 마라

제 별명이 ‘삽자루’입니다. 1998년에 주말농장을 시작했습니다. 이사하느라 때를 놓친 1년 빼고 꼬박 21년을 삽질했습니다. 흙 만지며 사는 이야기 ‘삽질일기’를 연재합니다. 그림과 글과 사진이 함께 합니다. 저는 농사 고수가 아닙니다. 그저 몸 써서 배운 일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내 맘대로 농법’이 혹시라도 농부들께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종로5가 종묘상 거리.

“벌써 뭐하러 왔대요?”

지난 주말 밭에 가니 주인장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사장님 보러 왔지요”

밭으로 나갈 날을 기다리는 갖가지 모종.

갈아엎은 밭에 번호판을 꽂던 아저씨가 내 농담에 낄낄 웃는다. 이번 겨울은 춥지 않았다. 언 땅도 일찍 풀렸다. 사방에서 터지는 꽃망울을 보며 한 주 정도 농사일이 빨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개장 안내문자가 오지 않았다. 성급한 마음에 밭을 찾은 날, 웬걸 눈비 날리고 기온이 십도나 떨어졌다. 하늘 보며 때를 기다리던 주인장 타박하는 난 아직 멀었다. 농장 개장 일자는 지역마다 다르다. 서울도 강남과 강북이 달라 내 밭은 4월 첫 주에 문을 연다.

내 농사는 매년 3월 마지막 주 서울 종로5가에서 출발한다. 큰길 한쪽에 종묘상이 모여 있다. 거리는 농기구와 씨앗을 구하는 사람들로 5월까지 북적인다. 이번에는 165㎡(50평)에 뿌릴 씨앗 26가지를 샀다. 남으면 가을에 쓴다. 쌈 채소만 열 가지가 넘는다. 아욱과 근대, 얼갈이배추는 국거리다. 밭 가장자리에는 군데군데 고수를 심는다. 향이 강한 허브 종류를 싫어하는 벌레퇴치용이다.

일지를 뒤적이다 보니 2006년 기록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주말농장은 지자체에서 분양하기도 하고, 개인이 분양하기도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집에서 가까운 농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단 신청할 것, 욕심내지 말고 작게 시작할 것, 초보라고 졸지 말 것. 밭에 가면 선생님들이 많으니까. [그림=안충기]

“옆 밭은 뽀얀 새싹들이 오글오글 자라는데 내 밭은 영 이상하다. 군데군데 떡잎이 머리를 내밀고 있지만 뿌린 씨앗의 양에 비하면 영 시원찮다. 상추가 그렇고 봄배추가 그렇고 옮겨 심은 쪽파도 부실하다. 혹시나 해서 땅을 파보니 있어야 할 곳에 씨앗이 보이지 않는다. 하얗게 실뿌리만 내린 놈들이 있고, 떡잎은 나왔는데 땅거죽을 뚫지 못하고 말라가는 놈들도 있다. 종자 불량인가, 거름을 잘못 했나… 혼잣말을 하는데 옆에서 놀던 아이가 그런다. 아빠, 씨앗이 싹틀 때는 양분이 거의 필요 없어요. 어린싹에 비료를 주는 건 갓난아이에게 고기를 먹이는 것과 같대요. 아이도 아는 간단한 상식을 놓쳤다. 책에서 봤어요. 감탄한 눈으로 바라보는 내게 아이가 말했다”

삭지 않은 거름을 흙에 섞고 바로 씨를 뿌린 결과였다. 그해는 밭을 갈아엎고 다시 시작했다.

안충기 아트전문기자ㅣ중앙일보 2019.04.06

/ 2022.03.2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