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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사람마저 물들인 그대, 동백 (2022.03.19)

푸레택 2022. 3. 19. 19:27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사람마저 물들인 그대, 동백 (daum.net)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사람마저 물들인 그대, 동백

선운사 동백에 취하다미당의 '막걸릿집 여자' 육자배기 아련한 곳 선운사 동백.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동백은 소리 없이 툭툭 떨어진다. 떨어져서 더 아름다운 동백을 보러 전북 고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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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백.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사람마저 물들인 그대, 동백

선운사 동백에 취하다
미당의 '막걸릿집 여자' 육자배기 아련한 곳

 

동백은 소리 없이 툭툭 떨어진다. 떨어져서 더 아름다운 동백을 보러 전북 고창의 선운사를 찾았다. 미당이 들었던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가 들리는 듯하다. 시인이 찾던 옛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겠으나 선운사의 동백은 여전했다. 자주 들르는 선운사지만 계절에 따라 산사는 다르게 다가온다. 봄이면 겨우내 나무에 숨겨둔 동백을 피워낸다. 가을이면 꽃무릇이 안개처럼 온 산을 뒤덮어 그리운 이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형형색색 물든 단풍의 향연이 가을의 끝을 장식하곤 한다.

바닥에 떨어진 선운사 동백꽃.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선운사에 들어서다

선운사는 동백과 벚꽃을 즐기려는 상춘객들로 북적인다. 기대한 동백은 보이지 않고 벚꽃이 지천이다. 일주문에 이르는 동안 벚꽃세상이다. 선운사 일주문에 도달했다. 봄을 품은 햇살이 선운천에 내려앉아 연록의 푸르름으로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좌측 길로 접어들어 도솔교를 건넜다.
도솔제를 들렀다가 동백숲으로 가기로 했다. 동백이 궁금해서다. 봄을 두팔로 가득 품으며 숲으로 들어갔다. 도솔천(선운천) 물소리가 경쾌하다. 나무사이로 건너편 선운사가 아름답게 보인다.

봄 기운이 완연한 도솔천(선운천).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일주문에서 도솔천을 따라 1㎞쯤 오르면 쉼터다. 쉼터 삼거리를 지나면 도솔제다. 도솔천은 부처가 인간세계로 내려오기 전에 머무르는 곳이다. 도솔제 역시 부처가 머무르는 듯 넓고 평온하다. 도솔제의 봄은 햇빛에 아주 옅게 재잘거리며 호반을 수놓았다. 다시 길을 되짚어 쉼터로 내려왔다. 선운천은 도솔제의 물과 도솔암의 물이 만나 선운사 앞을 흐른다. 쉼터는 내려오던 두 갈래 물이 섞이면서 잠시 쉬는 곳이다. 사람 또한 쉬는 곳이기도 하다.

선운사 대웅전. 대웅전 뒷편에 동백꽃이 가득 피었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도솔제 쉼터에서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향하면 선운사다. 왼쪽으로는 도솔암과 참당암 방향이나 동백을 보기로 했기에 그냥 지나쳤다. 선운천은 맑은 물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따라왔다. 온통 검은색의 돌들 위로 물살이 이어져 물색은 시커멓다. 아주 오랫동안 참나무와 떡갈나무의 열매와 낙엽에 포함된 타닌성분이 천 바닥에 침착돼 그렇게 보인다고 한다.

◆ 동백꽃에 빠지다

선운사 끝 담벼락에서 왼쪽 산을 타고 올랐다. 동백이 선운사 뒤편을 지붕인양 가득히 덮었다. 한때 선운사 동백숲을 산사 울타리쯤으로 여긴 적도 있었다. “이럴 거면 웬 선운사 동백이랴”라는 푸념이었다.

동백숲과 선운사.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한동안 선운사 동백을 외면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상사화를 보러 선운사 뒤를 찾던 길에 동백을 보고는 가슴이 뛰었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3000여그루의 동백숲이 펼쳐진 것. 선운사 동백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소설가 김훈은 동백의 낙화를 일컬어 ‘후드둑 떨어진다’고 비유했다. 백제가 느닷없이 멸망하듯 말이다. 그렇게 떨어진 붉은 동백꽃은 하나씩 가슴에 와 박혔다. 그것도 아주 진하고 붉게 박혔다. 사방으로 꽃을 내보내고도 동백은 꽃을 가득 품었다. 겨울을 지나 한달여를 피고지는 게 동백 아니던가. 동백나무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여전히 짙푸르다.

땅에 떨어져 뒹구는 선운사 동백꽃.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정지용 시인은 동백을 두고 “같이 푸르러도 소나무의 푸른빛은 어쩐지 노년(老年)의 푸른빛이겠는데 동백나무는 고목일지라도 항시 청춘의 녹색”이라고 예찬했다. 붉은 안개처럼 가득한 동백숲을 뒤로 하고 선운사에 들어섰다. 만세전을 지나 대웅전 뒤를 돌아드니 동백꽃에 나무가 부러질 듯하다. 동백꽃의 붉음이 짙은 탓에 산사 뒤도 붉게 물들었다. 다시는 울지 말자며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에서 이내 펑펑 울었다는 시인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겠다. 수십년을 다녔던 선운사다. 하지만 이번 동백꽃 여행은 선운사를 새로운 모습으로 기억하게 했다. 노랫말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다시 찾아야겠다.

선운산 동백꽃. 땅에 떨어져 또한번 검붉게 핀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선운사 동구 - 서정주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ㅣ머니S 2022.05.02

/ 2022.03.19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