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 / 그늘이 있는 맛, 소리, 삶, 사람 - 송수권 시인의 '퉁'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 / 그늘이 있는 맛, 소리, 삶, 사람 - 송수권 시인의 '퉁'
퉁* / 송수권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괴**
꼬막 보듯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손톱이 없으면 밥 퍼먹는 숟가락 몽댕이를
참고막 똥구멍으로 밀어 넣어 확 비틀래요
그래서 저도― 확, 비틀었지요
온 얼굴에 뻘물이 튀더라고요
그쪽 말로 하면 그 맛 한번 숭악하더라고요***
비열한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도 남도 시인― 이 맛을 두고 그늘이
있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이 있는 사람
그게 진짜 곰삭은 삶이래요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 게임하는 거 아니래요
그건 고양이가 제삿날 밤 참꼬막을 깔 줄 모르니
앞발로 어르며 공깃돌놀이 하는 거래요
詩도 그늘이 있는 詩를 쓰라고 또 퉁을 맞았지요.
* 퉁(꾸지람):퉁사리, 퉁사니 멋퉁이 등.
** 괴:고양이.
*** 숭악한 맛:깊은 맛.
― 『퉁』(서정시학, 2013)
송수권 시인의 시 '퉁'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전라도 고흥이 낳은 가장 전라도 시인다운 시인이 송수권이었다. 시인은 전라도의 구수한 사투리를, 특유의 풍습을, 수난의 역사를, 후한 인심을, 풍성한 먹거리를 멋진 가락으로 형상화하였다. 2016년 4월 4일에 돌아가셨으니 돌아가신 지 이제 3년이 되었다.
송수권 시인이 지인과 함께 벌교에 있는 참꼬막 집에 가서 꼬막 정식을 시켰을 때의 일이 시가 되었다. 전라도에는 ‘제삿날 밤 괴(고양이) 꼬막 보듯 한다’는 속담이 있는 모양이다. 화자가 잘 까서 먹지 못하고 서툰 솜씨로 꼬막을 굴리고만 있다가 남도의 지인 시인한테 퉁을 맞는다. ‘퉁바리맞다’의 준말이 ‘퉁맞다’인데 무엇을 말하다가 매몰스럽게 거절을 당한다는 뜻이다. 원래 ‘퉁’이란 품질이 낮은 놋쇠로, ‘퉁바리’란 이 퉁으로 만든 바리(놋쇠로 만든 여자의 밥그릇)이다.
아녀자의 밥그릇으로 얻어맞는다는 것이 어떻게 해서 무엇을 말하다가 매몰스럽게 거절당하는 뜻으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우리말임에 틀림없다. 화자는 퉁을 맞고 나서 시란 그늘이 있어야 한다는 충고를 또 듣는다. 남도 시인은 목포 출신 시인 김지하인 듯하다. ‘퉁’이란 이 시에서는 거절을 당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꾸지람이나 충고를 듣는다는 것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남도 일원의 말은 이렇듯 사전적인 의미와 조금 다르기도 하다. ‘거시기’가 수많은 표현의 대유법으로 쓰이듯이 말이다.
송수권 시인은 퉁, 괴, 숭악한 맛 같은, 사전적인 의미에 머물 수 없는 우리말의 묘미를 이 시를 통해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이 있는 사람”이 “진짜 곰삭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남도 사람’에게 들은 말이라고 하면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늘’의 뜻은 김지하의 저작을 펼쳐보아야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송수권 시인에게는 생의 비극적 측면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정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송 시인은 이 시에서 현대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끝을 맺는다.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 게임하는 거 아니래요”라는 말에는 현대시의 지나친 난해성에 대한 비난의 뜻이 담겨 있다. 많은 시인들이 책상머리에서 시를 쓰면서 퍼즐 게임을 유도하고 있는데 시인이 독자에게 퍼즐 게임을 시키면 곤란하다는 뜻이리라. 괴(고양이)가 제삿날 밤에 참꼬막을 앞발로 어르며 공깃돌놀이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럼 안 된다는 것이다. 참꼬막을 잘 까야지 시인이 된다는 뜻이리라. 나는 이 구절을, 시인이란 말을 갖고 놀 줄 알아야 하고, 그 말놀음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또한 부채를 부치며 쉴 수 있게 그늘이 좀 있어야 하는데 독자가 진땀을 뻘뻘 흘리며 하면 안 된다는 말로 이해했다. 난해한 현대시들이 우리의 곰삭은 삶을 제대로 표현해 내더냐고 이 시를 통해 은근히 충고해 준 송수권 시인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그립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뉴스페이퍼 2019.04.17
/ 2022.03.17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