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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인생] 배신당한 여인의 한 맺힌 호소 '애수의 소야곡' (2022.02.16)

푸레택 2022. 2. 16. 13:13

■ 배신당한 여인의 한 맺힌 호소 - 애수의 소야곡 / 송백헌 문학평론가(충남대학교 명예교수)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못 생긴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하구나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든고
모두 다 흘러가면 덧없건마는
외로운 별을 안고 밤을 새우면
바람도 문풍지에 싸늘하구나
- 애수의 소야곡

한국의 가요사상 처음으로 대 히트를 친 이 <애수의 소야곡>은 이부풍(李扶風)이 작사하고 박시춘(朴是春)이 작곡하여 남인수(南仁守)가 부른 노래이다. 이 노래는 1938년에 OK레코드사에서 발표한 남인수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다. 총 3절로 구성된 이 노래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애수의 소야곡>이 종전에 없던 대 인기를 얻은 이유는 노래 내용이 떠난 임을 애타게 그리지만 결국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슬픈 생각에 쓸쓸히 체념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등 대중의 정서에 맞았을 뿐 아니라, 남인수라는 가수의 타고난 미모에다 호소력이 있는 풍부한 미성(美聲)에도 청중이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남인수가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의 장례식에서도 장송곡으로 연주되었다.

이 노래가 발표될 당시는 누구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터놓고 표현하기 쑥스러운 때였기에, 설혹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감히 용기가 없어서 고백하지 못하고 가슴만 쥐어짜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이 노래가 발표되자, 마치도 가사 내용이 자신의 처지를 대변해 주는 것 같이 느껴져 인기를 모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노래는 어느 특정한 인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를 엮은 것이 아니라 당시 젊은 남녀들이 안고 있는 정서를 대변한 노래로 봄이 마땅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는 총각이 되었든 처녀가 되었든 자신이 살고 있는 이웃이나 같은 마을 등, 주변에 살고 있는 상대방에게 마음속으로 연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용기가 없어 터놓고 사랑한다는 고백을 못하고 짝사랑으로 속앓이를 하다 상사병에 걸려 목을 매거나 약사발을 마시는 등 자살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처럼 함부로 ‘사랑’이란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던 그 시대에 젊은이의 정서를 자극하는 노래 <애수의 소야곡>이 나옴으로써 큰 인기를 모은 것이다. 더구나 이 노래의 제목이 <애수의 소야곡>이 아닌가? 소야곡(小夜曲)이란 ‘밤에 연인의 집 창가에서 부르거나 연주하던 노래’라는 뜻이니 <애수의 소야곡>이란 ‘애수(哀愁)를 지닌 연인이 부른 슬픈 노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래인 것이다.

이 노래가 널리 퍼지면서 가정불화가 많았다고 한다. 밖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은 불이 켜진 집 안방에서 구슬피 흘러나오는 이 <애수의 소야곡>의 노래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같이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내의 노래 소리였기 때문이다. 분명 아내는 남편인 나 몰래 떠나간 애인을 그리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여 그는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옛사랑이 누구냐고 닦달을 했다. 이처럼 이 노래로 말미암아 가정불화가 잦았다는 일화가 당시 시중에 많이 떠돌았던 것이다.

특히 이 노래는 당시에 화류계(花柳界)에 종사하는 여인 즉 기생들에게 인기가 대단하였다. 고학을 하는 대학생과 정을 나누던 기생은 그 대학생이 자신을 배신하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유서에다 이 노래 가사를 남기고 음독자살을 했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한동안 장안에 떠돌았다고 한다. 다음 이야기들은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조금 각색하여 옮긴 것이다.

◆ 이야기 하나

30년대 화류계에 종사하는 기생 하나가 자신의 직업과 처지를 비관하여 유성기(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애수의 소야곡>을 들으며 유서를 써 놓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유서 속에는 자살한 주인공이 고학을 하는 대학생과 정을 나누어 마침내 결혼까지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대학생이 다른 여인과 함께 행방을 감추었다고 한다. 남자와의 약속을 철석 같이 믿고 기다리던 기생은 그 대학생이 자신을 배신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실의에 빠져서 마침내 자살을 했던 것이다. 그 유서에는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못 생긴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 하구나”

라는 <애수의 소야곡> 제2절을 남기고 자신을 속인 남자를 사랑하다가 끝내는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다. 이와 비슷한 또 하나의 이야기도 있다.

◆ 이야기 둘

이 여인 역시 고학을 하는 대학생 하나를 사귀어 결혼까지 약속한 화류계의 기생이었다. 대학생과 깊은 정을 나눈 그 여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연인의 학비를 대주면서 하루 빨리 그를 출세 시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보자는 희망을 가졌건만, 남자는 이 여인의 순정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여인은 절망한 나머지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버리고 말았다. 동료 여인들도 사랑에 배신당한 그녀를 위로할 길이 없어 그저 막막하기만 하였다. 이 여인은 마침내 자신의 직업과 세상의 인심을 원망하여 자살을 결심하고 양잿물을 마시고는 세상을 하직했다. 이 여인이 남긴 유서에는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든고
모두 다 흘러가면 덧없건마는
외로운 별을 안고 밤을 새우면
바람도 문풍지에 싸늘하구나

라는 <애수의 소야곡> 제3절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가수 남인수(南仁樹)는 본명이 강문수(姜文秀)로 1918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1935년 말에서 1936년 초 경에 시에론(Chieron)레코드사의 가수로 선발되었고, 1936년 2월 「눈물의 해협」으로 데뷔했다. 1937년 오케(Okeh)레코드사로 이적, 1938년 이부풍(李扶風) 작사, 박시춘(朴是春) 작곡의 <애수의 소야곡>으로 명성을 얻어 일약 가요계 톱 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백년설과 더불어 가요계의 미성(美聲) 가수로 인기를 모았으나 불행히도 45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출처] 《한국문학시대》 62호. 가요 속에 담겨진 사랑이야기

/ 2022.02.16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