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 골목에서 안선영씨가 맞은 편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고영권 기자
[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서울 익선동, 재개발 실패가 '레트로' 전화위복
서울 종로구 한복판에 자리잡은 익선동은 ‘선(善)을 더하다(益)’는 의미의 이름이다. 하지만 요즘 익선동은 ’익인동’으로 동네 명칭을 바꿔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사대문 내 기와를 정갈하게 얹은 한옥 밀집지역이라는 외형에 예쁘고 감각적인 가게들이 몰려 있으면서 ‘사람들(人)이 더해지고(益)’ 있기 때문이다. 딱히 공식적으로 유동 인구를 집계한 자료가 없더라도 요즘 익선동은 여유와 휴식 낭만과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의 대표적 핫플레이스다.
단층 건물의 한옥들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익선동을 지난 29일 오후 찾았다. 193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근대한옥 60여채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만들어 내는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국적과 상관없이 친구들과 밝게 웃으면서 길을 걷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내국인과 외국인의 수가 비슷할 정도로 외국 방문객이 많았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국제적인 핫플레이스의 위용이었다. 단층 한옥, 한옥의 처마선 등 전통미와 가게 옆으로 가지런히 놓여진 화분들은 유럽풍 느낌을 내면서 묘한 조화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지인들과 함께 놀러 온 안선영(54)씨는 개화기 의상을 함께 맞춰 입고 구석구석을 돌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안씨는 “익선동은 개화기 시대 느낌이 나 의상을 갖춰 입고 돌아다니기에 너무 좋고 사진을 찍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라고 해맑게 웃었다. 자신은 의상사이트에서 옷을 사 입었고 친구들은 익선동 내 개회기 의상 대여점에서 빌려 입었다. 안씨는 친구 혹은 친한 동생들과 2년 전부터 1년에 서너 번 정도 이렇게 나들이를 한다고 하는데 개화기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쑥스러워했다. 외국에서 친구들이 오면 꼭 데려간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프랑에서 온 마고, 악셀, 킴(왼쪽부터)씨가 익선동 한옥마을 내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고영권 기자
프랑스에서 온 악셀(28), 킴(26), 마고(25)는 10대 소녀가 된 것처럼 연신 재잘거리며 ‘사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친구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익선동의 이미지를 보여 줘 이 곳에 오게 됐다는 이들은 “특히 카페가 정말 멋지고 다른 곳과는 아주 다른 비교 불가능한(uncomparable) 곳”이라고 극찬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노나(26), 디아라(25)씨는 인터넷에서 알게 돼 익선동에 오게 된 경우다. 노나씨는 “전통 모습이 잘 재현돼 있고 독특한(unique) 카페가 많아 정말 맘에 든다”며 “친구들을 많이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ㆍ외국인의 눈길의 사로잡는 익선동의 매력은 다양하다. 도심 한복판에서 단층 한옥이 밀집된 곳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뽐낸다. 폭 1.5~2m 길에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로가 펼쳐진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주변에는 동쪽에 종묘, 북쪽에 창덕궁, 서쪽에 운현궁 등 문화재가 시민과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익선동에서 받은 느낌을 그대로 이어 가 주변 지역으로 이어지는 확장성도 갖췄다. 여기에 천편일률적인 도시 분위기가 아닌 레트로(retro)한 감성을 시내에서 누릴 수 있는 점도 상당한 장점이다. 곳곳에 섬세한 디자인으로 예쁘게 만든 현대적인 식당, 카페, 술집 등 가게와 그 가게들의 개성이 빚어내는 조화도 결코 무시 못 할 매력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디아라(왼쪽)씨와 노나씨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 골목길에서 길을 걷고 있다. 고영권 기자
교통편도 뛰어나다. 익선동은 지하철 1ㆍ3ㆍ5호선(종로3가역)이 통과하는 ‘트리플 역세권’이다. 한옥 비율이 높지만 지하철과는 멀리 떨어진 삼청동과 비교해도 접근성에서 월등히 유리하다. 이런 매력들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17년 여름 한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이 때 이후 익선동은 ‘레트로’라는 최근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하는 핫플레이스로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서울의 레트로 감성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로세무서 8층 식당에서 익선동 한옥마을을 바라본 모습. 고영권 기자
급부상한 익선동의 모습이 아쉬운 사람도 있다. 1972년쯤부터 익선동에서 살아온 이상화(83) 할머니는 “한옥에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오니 좋다”면서도 “예전에는 시골집 같고 인정도 많았는데”라며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변화에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익선동 한옥마을 내 물가는 비싸다는 평이다. 포장에 세심한 신경을 쓰긴 했지만 조각 케이크가 1만원을 넘기도 한다. 반면 한옥마을을 살짝 벗어난 가로변에는 1만~2만원대로 저렴하게 반주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음식점도 많다.
단기간에 핫플레이스로 변모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익선동은 젠트리피케이션 4단계 중 3단계인 ‘경계’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임대료가 상승하고 과잉 상업화 등이 심화된다. 기존에 있던 주택들이 상점으로 변했고, 한옥 수선점과 한복집 등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임대료도 최근 6년 동안 4배 상승했다. 상가정보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익선동 일대 상가 임대료는 평균 보증금 3,000만~5,000만원에 월세 120만~150만원선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상권 매출이 안정적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뤄 젠트리피케이션이 시기상조라는 반론에 힘이 더 실리는 편이다.
익선 지구단위계획구역. SAK건축사사무소 제공
[저작권 한국일보] 익선동 한옥마을 위치. 그래픽= 송정근 기자
익선동은 1920년대 경성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주거 공간이 부족해 졌고 현재와 같은 한옥(당시 조선집)이 밀집한 곳으로 개발됐다. 익선동 한옥마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인 기농 정세권(1888~1965년)이다. 정세권 선생은 일제 강점기 가회동을 비롯한 계동, 재동, 창신동 등 서울 각지에서 주택 사업을 왕성히 벌였던 인물이다. 현재 익선동 한옥마을 원형을 만든 사람으로 이광수의 소설 ‘무정’에서는 건축왕으로 묘사됐다.
기농 정세권 선생. 그는 1930년 철종의 후손으로부터 조선 25대 왕인 철종(재위 기간 1849~1864)인 태어난 곳인 누동궁을 매입해 현재의 모습을 다져 놓았다.
도시계획상 익선동의 당초 운명은 이 모습이 아니었다. 익선동 주민들은 2004년 한옥 등 기존 건물을 헐고 호텔 등 복합상업시설을 짓길 원했다. 이 조합 요구가 받아들여져 그 해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서울시와 주민들 간 용적률 이견 조율 실패로 서울시 도시계획심의위원회 통과에 실패했다.
10년간 재개발이 지지부진하자 지역은 슬럼화 돼 갔다. 재개발이 힘들다고 판단한 주민들은 2014년 도시환경정비구역 해제를 신청했다. 결국 지난해 5월 1층 한옥을 유지하고 가로변은 3~5층으로 단계별로 층수를 높이는 방식의 한옥보존형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됐다. 익선동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보전하기 위해서였다.
일견 대성공으로 보이는 익선동 한옥 보존과 달리 도시계획 전문가들의 눈에는 아쉬움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매거진 ‘창덕궁 앞 열하나 동네’ 김선아(건축사) 편집인은 “익선동의 도시재생이 100%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이유로 그는 “1930년대 근대 한옥의 유산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고 진한 아쉬움을 토한다. 한옥 건물의 정면은 유리로 변했고 1930년대와 1970~80년대 주거 양식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을 남김없이 헐어버리고 리모델링이 이뤄진 탓이다.
한옥의 외형만 고스란히 남은 셈이다. 주거 용도에서 상업 용도로 바뀐 까닭에 현실에 맞게 변했지만 살렸으면 더 의미가 있었을 역사성과 장소성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김 편집인은 “특히 실측을 한 북촌 한옥과 달리 익선동 한옥엔 실측 도면이 없는 게 뼈아프다”고 말한다. 익선동의 미래까지 길게 봤을 때 섬세하지 못 했다는 평가다.
김 편집인 말처럼 익선동 한옥마을의 도시재생에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산업화 시기 콘크리트 빌딩 숲에 둘러싸이고 한 때 ‘낙후, 흉물’에서 명소로 거듭나면서 100여년 전 과거 명성을 서서히 되찾아 가는 건 틀림없어 보였다.
글=배성재 기자 (한국일보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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