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철공소 즐비했던 거리, 가난한 예술가들의 천국으로 (daum.net)
[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철공소 즐비했던 거리, 가난한 예술가들의 천국으로 ‘서울 영등포 문래창작촌’
요즘 젊은이들 사이 ‘핫플’로 뜨고 있는 서울 영등포 문래창작촌은 ‘소문난 잔칫집’으로 비칠 수 있다. 좁은 골목길엔 쇠뭉치와 기계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철제 제품들을 실은 트럭들이 위태롭게 오간다. 철강, 특수강, 빠우, 절단, 절곡, 컷팅, 레이저 샤링, 주물, 기계…. 이 육중한 단어들과 결합한 간판 아래 하얀 콘크리트 바닥은 벌건 녹물로 얼룩져 있고 그 길로는 번쩍번쩍 용접 불꽃이 튄다. 쇠 깎는 소리도 행인을 때린다. 철공소 즐비한 골목은 결코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지만, 멋을 한껏 부린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작은 철공소들과 공방, 식당들이 함께 늘어선 문래창작촌의 한 골목에서 젊은 커플이 사진을 찍고 있다. 예술촌, 창작촌으로 이름 붙은 공간이지만, 이곳을 처음 찾은 이들이 그 묘미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천천히 오래 봐야 보인다. 많은 이들이 이색적인 풍경 속에 놓인 예쁜 카페,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내다 간다.
오래 봐야 보인다
영등포구에 따르면 관내 예술가들은 모두 1,015명(2020년 4월 기준). 이 중 절반가량이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붙은 이름처럼 그들의 공방이나 작업실은 눈에 쉬 띄지 않는다.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는 탓이다. 더구나 많은 예술가의 하루는 일반인들의 그것과 반대인 경우도 많다. 쇠를 엿가락 부리듯 하는, 용접 마스크로 얼굴 가린 이곳 사람들을 예술가라고 못할 것 없지만, 얕은 소문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실망하기에 십상이다.
지하철 2호선 문래역에서 문래창작촌을 향해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나는 조형물 중의 하나. '못 뽑는 망치'
이곳이 예술인들이 모인 예술촌, 공방과 작업장이 집결한 창작촌임을 알려주는 것은 골목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조형물과 벽화들이다. 가위로 색종이 오리듯 잘라낸 철판으로 만든 다양한 상징물, 철공소 간판답지 않게 앙증맞거나 세련된 간판들이 이 공간 어딘가에 ‘심상치 않은 예술가들이 숨어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등포문화재단 박만식(45) 차장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임대료 저렴한 2, 3층이나 옥탑에 자리를 잡고 작업한다”며 “시선을 끄는 조형물이 건물에 하나 붙어 있다면 그곳이 바로 공방이나 작업장이 있는 곳”이라고 귀띔했다. 창작촌, 예술촌이되 허투루 봐선 알 길 없는 예술, 창작촌이다. 그들이 만든 창작품, 공작품 구경이 쉽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풍경을 담으려는 사진 동호인들, 예술가들이 흘린 흔적을 배경으로 한 컷을 남기려는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 상가 건물 위에 설치된 철 조형물. 허름한 건물들 사이를 거닐다 고개를 들면 이따금 이런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예술’ 입은 ‘철의 도시’
크고 작은 철공소 밀집지역으로 유명한 문래동은 원래 방직 공장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들어섰던 방직 공장이 한동안 있었다. 지금의 이름은 그 공장에서 실을 뽑던 ‘물레’에서 유래했다.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영등포구 일대가 산업단지로 개발되면서, 또 경인공업지역 끝 혹은 시작점에 위치한 이곳에서 서울과 경기 지역에 철강 자재를 공급하면서 70, 80년대 최대 호황기를 누렸다. 철재상들과 철강공장, 철공소들이 빽빽이 모여 ‘철의 도시’로 불려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여의도 전경련 회관 앞에서 시작해 인천 미추홀구청까지 이어지는 길이 28㎞의 경인로를 달리다 보면 만나는 입간판. 예술인들에 이어 빠른 속도로 들어오고 있는 상가들에 더 이상 밀리기 싫다는 듯, 외친다. "이곳은 철의 도시!"
그 명성이 퇴색하기 시작한 때는 90년대. 값싼 중국산 철강 제품들이 서해를 건너오면서,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내 산업구조 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쇠락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경영난에 처한 기계부품 임가공 업체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고, 드문드문 비어 있던 그 자리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면서 ‘문래창작촌’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사단법인 영등포마을의 이용희(46) 이사장은 “철공소들이 어려워지기 전에 힘들었던 곳이 바로 이들을 상대로 영업하던 다방이었다”며 “쇠와 씨름하는 이들에게 카페인을 공급하던 다방들이 빠지면서 생긴 공간에 인근에 있던 예술가들이 자리를 옮겨왔다”고 말했다. 이게 2003년쯤의 일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천국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한 예술가들은 그 장르를 불문한다. 시각예술 시작으로 가구, 패션, 건축, 디자인, 공예 등의 실용예술, 공연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밤낮으로 ‘틀어박혀’ 소리 없이 활동한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문래동은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낡았을지언정 저렴했고, 누추했을지언정 작업하는 동안 마음 하나는 편안했다. 특히 누구 하나 시끄럽다고 ‘민원’ 넣는 데가 없었다. 쇠를 자르고 붙이는 철공소들이 밀집한 지역 특성상 그들의 소음에 주목하는 이는 없다.
소음 민원에서 자유로운 작업(작곡) 공간을 찾아 문래창작촌으로 입주한 천광우씨가 자신이 만든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저렴한 월세도 그를 만족시킨다.
작곡 일을 하는 천광우씨는 “홍대에서 작업하다 몇 달 전에 이곳으로 옮겼다”며 “소음 민원에서 자유로운 이곳은 음악하는 이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허름한 건물의 2층, 20㎡ 남짓한 공간 한 달 월세는 26만원. 저렴한 임대료는 덤이다. 화장실 가고 손 한번 씻는 게 약간 불편하다면 불편할 뿐, 그에게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허름한 상가 지하 공간에 들어선 헤비메탈 전문 클럽으로 드는 계단 풍경.
코로나19로 휴점하기 전엔 세계 각국에서 마니아들이 찾는 명소였다고 한다. '철의 도시' 콘셉트를 잘 활용한 클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각예술,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에게는 또 어떤가. 해 질 무렵이면 내려오는 공장과 철공소들의 셔터, 허름한 벽들은 예술가들에게 거대한 도화지가 된다. 이 때문에 성업중인 철공소들이 늘어선 문래동의 주요 골목 풍경은 밤과 낮이 다르다. 그라피티로 화장한 셔터가 천장에서 내려오면 그 골목은 시치미를 뗀다. ‘누가 여길 철공소 골목이라고 해!?’
어둠이 내리면 ‘변신’
공방과 작업실은 즐비한데, 그들의 작품을 구경하는 것도, 구입하기도 어렵다? 문래동우체국 맞은편에는 이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선물가게가 하나 있다. 이곳 지킴이 정재우씨는 “이곳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과 제품을 한데 모아 보여주고 팔면 이곳 예술가들에게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도움 될 것 같아 1년 전 문을 열었다”며 “하지만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그들이 만든 물건보다는 카페나 식당에 관심이 더 많다”고 했다. 삼삼오오 몰려온 젊은이들은 ‘음식점 추천 좀 해줘요’ ‘여기 어느 카페가 좋아요?’ 같은 문의를 그에게 끊임없이 날린다.
문래창작촌에 있는 한 철강공장 관계자가 퇴근에 앞서 조각문을 붙이고 있다. 이 지역에 입주한 예술가들에게 문짝을 내어준 '댓가'다. 이런 공장들이 주변에 수두룩한 까닭에 밤이 되면 골목길 풍경은 사뭇 달라진다.
거무튀튀하던 창작촌 일대는 밤이 되면 옷을 갈아입는다. 낮에 들리던 소리와는 다른 종류의 소리들로 데시벨이 올라간다. 어느 길 모퉁이에는 ‘아시아의 헤비메탈 성지’로 불리는 클럽도 하나 볼 수 있고, 낮은 건물들 옥상에는 한낮의 열기를 피해 문을 열고 음악 볼륨을 올리는 맥줏집, 식당들을 볼 수 있다. 이질적이면서도 이곳 풍경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 카페와 와인바, 말끔하게 단장한 레스토랑 속으로 행인들이 빨려 들어간다. 한 식당 주인은 “철공소 골목이 뿜어내는 묘한 분위기는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것 같다”며 “늦도록 떠들다 가는 작가들과 젊은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문래창작촌 인근에는 동네 작가, 예술가들이 작품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방앗간을 활용해 만든 '스페이스 나인' 내부 모습.
방앗간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전시공간 ‘스페이스 나인’에서 전시회 ‘마주하다’를 연 조형예술가 민호선 작가는 “이 공간의 ‘시간성’에 주목, 이곳을 전시장으로 택했다. 전시 작품의 가치를 배가시키는, 설명이 따로 없는 곳”이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지역 예술가들의 회동 장소로도 쓰이는 이 같은 공간들은 창작촌 일대 서른 군데 정도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의 전시회를 공략해야 ‘틀어박혀’ 있던 예술인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영등포구나 문래예술공장을 접촉하면 관련된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속가능 발전은 공생에서
그러나 동네의 이런 변화가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현재 철공소 밀집지, 예술ㆍ창작촌, 상권 공존하고 있으나 터줏대감격인 철공소들이 언제까지 이곳에서 예술인, 상인들과 함께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탓이다. 각종 철제품 임가공 일을 하고 있는 한 철공소 대표는 “예술촌 만든다고 온 동네를 망쳐놨다”고 했다. “여기 저기 카페, 식당들이 들어서면서 월세가 200만, 300만원으로 치솟고 있는데, 매달 100만원 수준의 돈을 내면서 지내고 있는 철공소들이 여기서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문래창작촌의 마스코트 '양철로봇.' 손에는 꽃 한송이가 들려 있다.
버려지던 땅에 예술인들이 들어왔고, 그들이 숨을 불어넣은 덕에 상권이 형성되면서 문래동을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궤를 보면 철공소들이 밖으로 밀려 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용희 영등포마을 이사장은 “예술 작가들도 공장 사장님들도 꾸준히 도시에서 생산, 작품 활동을 계속 할 때에만 ‘철의 도시’ 문래 예술창작촌은 유지될 수 있다”며 “이 부분에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정민승 기자 (한국일보 20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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