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소유 / 백무산
굶주리는 사람이 건강단식을 어떻게 이해하나
없는 사람이 무소유를 어떻게 이해하나
글자 조합이 잘못된 낱말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잃을 것은 사슬뿐인 사람들은 자유를 위해 떨쳐 일어날 거라지만
그들도 잃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가진 것 아무것도 없는 거지는 동냥 구역을 잃을 게 있지
없을수록 집착할 수밖에
거액의 자산가가 방송에 나와 무소유의 자유로움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할 때 그건 진심이었을 거다
무소유의 청빈함을 제대로 글로 쓰는 작가는 좀 살 만한 작가다
어디 가나 밥과 집이 넉넉한 스님이라야 무소유를 제대로 설법할 수 있다
무소유는 가진 뒤의 자유다
무소유는 ‘소유’가 있은 뒤 조합된 낱말이다
다 내려놓은 사람의 무소유는 이미 그 낱말이 아니다
가진 것이 있어야 무소유를 맘껏 가질 수 있다
- 시집 『초심』 (실천문학, 2003)
[감상]]
오래 전 독후감 공모전에서 고등부 지정도서 중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포함되어있었다. 대구 한 인문계고등학생의 독후감이 눈길을 끌었다. 소유에 대한 과도한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내 것을 더 많이 갖기 위해 다른 사람과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겠다는 생각까지는 좋았는데 그 무소유의 실천을 위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일치감치 시골로 내려가서 자연을 벗 삼아 푸성귀농사나 지으며 살겠다는 것이다. 진도가 좀 나갔다는 느낌은 들었으나 생각이 그런대로 영글어있고 글 솜씨도 고교생 치고는 괜찮은 편이라 최우수는 아니고 차하 정도의 입상을 천거했지만 다른 심사위원들의 반대에 부닥쳐 무산되고 말았다.
그 심사자들은 정년퇴임 교사들이었고 문제된 부분은 ‘당연히’ 대학진학을 포기하겠다는 대목이었다. 그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반대 이유에 납득은 갔다. 그러나 속으로 시골로 가겠다고 했기에 망정이지 머리를 깎고 산으로 가겠노라 했다면 빌어먹을 놈이란 욕도 얻어먹지 않았겠나 싶었다. 현대인의 건전한 상식으로 보면 그 학생은 ‘무소유’를 오독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선생님들의 잣대로 보면 틀림없이 잘못 읽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학생의 신분으로서 꿈과 패기마저 불필요한 것이라 치부해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다.
물론 나도 동의하고 말았지만 개운치 않았다. 그 학생은 어쩌면 진작 ‘덜 가지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다는’ 스님 말씀의 비의를 꿰뚫고 ‘맑은 가난’의 삶을 선택하려했는지도 모른다. 남들 가는 길로 가고 남들이 부대끼는 그대로 겪다보면 생의 어떤 고통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통찰했을 것이다. 그 흐름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며, 소유에 대한 집착을 줄이면 사는 게 훨씬 가볍고 자유로워진다는 진리도 터득했으리라. 적어도 이순은 넘어야 뒤돌아보며 어렴풋이 보이는 모든 것은 순간이고 스쳐간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채고, 그래서 오히려 긴 고단함 뒤의 허무보다는 내내 건강한 삶을 서둘러 각성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찝찝함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그 찜찜함을 백무산의 이 시가 얼마간 풀어주고 정돈해주었다. “무소유는 가진 뒤의 자유다” “무소유는 ‘소유’가 있은 뒤 조합된 낱말이다” 칼릴 지브란의 “이제 당신이 쓸데없이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손에서 놓을 때입니다. 그것들을 버린 후 빈손으로 당신의 삶과 행복을 들어야 할 시간입니다.”란 설파도 이치에 들어맞는다. 가진 게 있어야 하루에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가져본 경험이 있어야 참된 ‘무소유’도 누릴 수 있는 법 아닌가. 그 학생이 어찌 집착과 얽매임을 겪지 않고 처음부터 난을 놓아버린 뒤에 오는 홀가분한 무소유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내 생각엔 시근이 꽉 들어찬 학생이라 여겨지지만, 행여 이솝우화의 ‘신포도’ 이야기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글=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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