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에밀리 디킨슨 (2021.12.07)

푸레택 2021. 12. 7. 17:49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면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쳐 있는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ㅡ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생일』(비채, 2006)

[감상]

비록 메아리 없는 짝사랑일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성숙의 첩경이요 사랑의 으뜸이라고 말했던 장영희 교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역시 성숙한 사랑의 행위였다. 그녀는 목발에 의지한 불편함보다 암과 싸우는 고단한 일상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사랑 없는 삶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사랑에 익숙치 않는 옹색한 마음이나 사랑에 통달한 게으른 마음들을 마음껏 비웃고 동정하며 열심히 사랑하세요!" 그녀의 사랑에 기대어 경건한 마음으로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여성시인 디킨슨의 시를 다시 읽는다.

디킨슨은 독신의 삶을 외롭게 살다간 시인이었다. 대학 1학년 때 건강악화로 학업을 중단하고는 집에 틀어박혀 오로지 독서와 시 쓰기에만 전념하며 폐쇄적인 삶을 살았다. 막 사랑에 눈뜰 무렵 갑자기 나빠진 눈은 치료를 받았지만 시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어머니가 병으로 거동을 못하자 곁에서 간호하기 바빴고 그 와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디킨슨은 44세 이후 일체 바깥출입을 삼간 채 고독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정원 가꾸기, 요리, 편지 쓰기, 이웃집 아이들이 놀러 오면 같이 놀아주는 정도였다.

시련은 계속되어 52세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잃는다. 디킨슨은 식구들이 자신의 병에 옮아 죽는 게 아닌지 의심하며 괴로워했다. 그녀는 아예 바깥문을 걸어 잠건 채 외롭게 살다가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교회 장례식 대신 집에서 장례를 치러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녀의 시신에다 평소 좋아하던 흰 드레스를 입히고 머리에 바이올렛 핀을 꽂아주었다고 한다. 생전에 친구들이 시집 출판을 권했지만 디킨슨은 겨우 10편만 발표했다. 그러나 그녀의 여동생이 죽은 언니의 방에서 찾아낸 원고뭉치가 10권의 시집으로 묶어도 충분할 만큼의 분량이었다.

매우 지적이고 자유주의자이며 강한 개성의 디킨슨은 험난한 현실에서 느꼈던 갈등과 좌절 속에서도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아픈 마음 하나 달래려고 틈틈이 시를 썼다. 훗날 그녀의 시를 통해 누군가 함께 돋우어가는 삶을 살고 ‘기진맥진 지쳐 있는 한 마리 울새’가 둥지로 되돌아가기도 하였겠으니 정녕 헛되이 살다가진 않았던 것이다. 그와는 삶의 방식이 많이 달랐지만 장영희 교수도 그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장영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부대끼며 살 때 인간은 비로소 존재 의미가 있고, 결국 삶이란 ‘사랑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사랑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배워가는 과정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음을 전제하면서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어요. 내가 남의 말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한 것은 몽땅 망했지만, 내가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더군요.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습니다.”고 말했다.

영문학자 장왕록 교수의 따님이며 수필가이기도 한 장영희 교수는 10년 전 어버이날에 홀로 남은 어머님께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다음날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를 찾아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도 속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당시 장 교수의 바로 아래 동생 장영주씨는 “언니는 걷고 뛰는 것 빼곤 뭐든지 잘 하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장 교수는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었지만, 어려서부터 글쓰기, 그림, 공기놀이에서는 경쟁자가 없을 정도라며, “내 언니라는 게 자랑스러워서 목발을 짚고 걷는 언니의 옷자락을 꼭 쥐고 다녔다.”고 추억했다. 나도 그의 칼럼을 애독하면서 누구 못지않은 폭넓은 통찰력과 예리한 직관의 눈을 지닌 분임을 알 수 있었다. 언제나 세상을 낙관하고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눈을 가진 이가 장영희였다. 그 자신의 말대로 ‘나쁜 운명, 좋은 운명을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다간 장영희 교수를 떠올리면 늘 부끄럽다.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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