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권정생 (2021.12.07)

푸레택 2021. 12. 7. 12:05

■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 권정생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가 그렇게 살다 가시는 걸까

한평생

기다리시며

외로우시며

안타깝게......

 

배고프셨던 어머니

추우셨던 어머니

고되게 일만 하신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던 들판 산고갯길

바람도 드세게 휘몰아치던 한평생

그렇게 어머니는 영원히 가셨다

먼 곳 이승에다

아들 딸 모두 흩어 두고 가셨다

버들고리짝에

하얀 은비녀 든 무명 주머니도 그냥 두시고

기워서 접어 두신 버선도 신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혼자 훌훌 가셨다

 

어머니 가실 때

은하수 강물은 얼지 않았을까

차가워서 어떻게

어머니는 강물을 건너셨을까

어머니 가신 거기엔 눈이 내리지 않는 걸까

찬바람도 씽씽 불지 않는 걸까

어머니는 강 건너 어디쯤에 사실까

거기서도 봄이면 진달래꽃 필까

앞산 가득 뒤산 가득

빨갛게 빨갛게 진달래꽃 필까

 

어머니 사시는 집은 초가집일까

흙담으로 지은 삼 간 짜리 초가집일까

봄이면 추녀 끝에 제비가 집 지을까

봉당엔 삽살이도 앉았을까

등우리엔 암탉이 병아리도 깔까

 

어머니는 누구랑 살까

이승에 있을 때

먼 나라로 먼저 갔다고

언제고 언제고 눈물지으시던

둘째 아들 목생이 형이랑 같이 살까

아침이면 무슨 밥 잡수실까

거기서는 보리밥에 산나물 잡수실까

거기서도 밥이 모자라

어머니는 아주 조금밖에 못 잡수실까

 

어머니네 집 앞으로 골목길도 있을까

대추나무 섰는 우물이 있을까

바가지로 만든 새끼끈 달린

두레박으로 물을 길으실까

물동이도 고만큼 예쁜 것으로 길으실까

왕골 껍질로 만든 또아리를 받치실까

어머니는 거기서도 팔이 여위셨을까

물동이 내리실 때 부들부들 떨지 않으실까

 

디딜방아는 누구랑 찧으실까

목생이 형이 찧고

어머니는 확 앞에 앉아서 쓸어넣으실까

수수가루 빻아

오늘 저녁엔 수수팥단지 만드실까

이남박에 꼭꼭 떡 담으시고

모락모락 김나는 수수떡 담아 놓으시고

저 아래 먼 먼 이승에 두고 온 일준이랑

또분이랑 생각하실까

수수팥단지 잡수시다 목이 메어 우실까

호롱불빛을 비껴나

어머니는 돌아앉아 눈물 닦으실까

 

참나무 떡갈나무 잎이 피면

꾀꼬리가 자랑자랑 숲속에서 울까

어머니는 꾀꼬리 소리 들으며

산나물 뜯으실까

췻동아리 뜯으시고

바디취나물 뜯으시고

뚝갈이, 미역취 뜯으시며

거기서도 어머니는 타령을 부르실까

꾀꼬리 우는 소리보다 더 구슬픈

타령을 길게 길게 부르실까

 

어머니 사시는 거기엔

전쟁이 없을까

무서운 포탄이 없을까

총칼을 든 군대들이 없을까

모든 걸 빼앗기만 하는 임금도 없을까

무서워서 하루도 한 시도

마음 못 놓는 날이 정말 없는 것일까

그래서 헤어지는 슬픔도 없는 것일까

정말 울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여름 뙤약볕이 쬐면

고추밭에 고추가 빨갛게 익을까

어머니는 목화밭 김도 매고

서속밭 김도 매며 바쁘실까

거기서도 어머니는 쉬지 않고

쉬지 않고 일만 하실까

어머니 얼굴은 거기서도 까맣게 그으르셨을까

주름살이 깊게 깊게 패이셨을까

 

어머니는 열무랑 나박배추 가꾸실까

고추따서 다래끼에 담고

열무랑 나박배추 솎아 담고

어머니는 언덕길로 걸어서 집으로 가실까

고무신 아끼시느라 벗어 들고 걸어가실까

다래끼 무거우면 한 번 추슬렀다가

ㅡ 휴유우 하시며, 잠깐 섰다가 또 걸으실까

 

소낙비 내린 다음 날

말똥버섯 돋아나면 따다가 잡수실까

쪽으로 짜개시고 끓는 물에 데쳐

국을 끓여 잡수실까

말똥버섯 국 끓여 놓고 앉아

ㅡ 일준아......

ㅡ 또분아......

그렇게 또 생각하실까

 

밤이면 달도 뜰까

둥글게 훤하게 달도 뜰까

앞마당 귀리집으로 엮은 거적을 깔아 놓고

어머니는 삼바람 이으시며 밤을 지샐까

누구랑 앉아서 삼 삼으실까

거기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도

진갑이네 어머니 같은 착한 이웃이 있을까

감자떡 나눠 잡수시며 걱정들을 나누며

함께 앉아 삼 삼으시며 밤을 지샐까

 

하얀 달빛에 실바람이 일고

초가지붕 위엔 박꽃도 필까

누나 얼굴 같은 하얀 박꽃이 필까

조롱조롱 애기박이 열리고

그렇게 또 가을이 찾아오는 걸까

바가지가 둥글둥글 굵어지는 가을이 오는 걸까

어머니는 사기요강에 오줌 받아

박넝쿨 구덩이에 부어 넣으실까

바가지 딴딴하게 영글라고

오줌 받아 부으실까

바가지 타서 말리시며

어머니는 시집간 귀분이 생각하실까

친정나들이 오면 제일 이쁜 것 주고 싶어

거기서도 어머니는 딸 생각하실까

거기서도 추석은 있을까

설날이 있을까

어머니는 추석에도 외로우시겠지

어머니는 설날도 외로우시겠지

아직도 아들딸 이승에 두고 가셔

어머니는 문구멍까지 귀 기울이시며

눈물지으실까

 

어머니는 거기서도

바람 머리 앓으실까

이앓이도 하실까

머리도 수건 두르시고

아픈 것도 애써 참으실까

겨울밤 어머니 방엔 군불 많이 지피실까

솜이불 두꺼운 걸로 덮고 주무실까

방바닥엔 삭자리 깔았을까

짚자리 가지런히 깔았을까

윗목에 물레실 자으시다가

어머니는 밤 늦게 잠자리 드시는 걸까

 

어머니 사시는 나라에도

그리움이 있을까

애달픔이 있을까

개똥벌레 날아가는 밤

귀뚜라미 우는 밤도 있을까

정지 부뚜막에 생쥐가 찍찍 울며 다닐까

뒷산에 부엉이가 와서 울까

 

장날이면 장보러 가실까

말린 고추 팔러 가실까

울양대 차좁쌀도 고만큼씩

올망졸망 가지고 가실까

동구 밖까지 삽살이가 따라오면

어머니는 주먹을 들어 으르시고

발로 탕탕 구르시고

그래도 안 되면

ㅡ 삽살아, 집에 가 있거라

ㅡ 집 잘 보고 있으면 착하지

삽살이는 알아듣고 못 이긴 척

서운하게 돌아서 텁썩텁썩 갈까

 

장에는 어떤 장수들이 있을까

개구리참외도 팔까

콧등에 하얀 테 두른

알룩고무신도 팔까

타래엿도 팔고 갱엿도 팔까

소금 장수도 저런 고등어 장수도 있을까

때깔이 예쁜 주발 장수도

항아리랑 단지랑 놓고 파는

옹기장수 할아버지도 있을까

 

어머니는 뚝배기 하나 사고

소금 조금 사고

개구리참외도 사실까

참외 사시면서도 이승에 두고 온

아들딸 생각 또 하시겠지

돌아오는 길에 소낙비도 내릴까

소낙비 내리면 무지개도 뜰까

청산 위에 색동빛 예쁜 무지개처럼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도

청산처럼 아름다운 산이 있고

중들 강물처럼 맑은 강물이 흐를까

거기 그렇게 예쁜 무지개 뜨면

어머니도 어린애처럼 즐거우실까

소낙비 맞고 옷이 젖어도

어머니는 무지개 쳐다보면 또 쳐다보며

비탈길을 동동걸음 걸어오실까

 

개구리참외는

목생이 형이랑 둘이서만 먹을까

거기서도 어머니는 찔름 들어간

못생긴 참외를 잡수시고

예쁘고 만난 건 아들 주실까

참외꼭지만 남기고 알뜰히 잡수실까

 

어머니는 자주자주 하늘 보실까

어머니는 자주자주 달 쳐다보실까

거기엔 정말 전쟁이 없었으면

빼앗아만 가는 임금도 없었으면

전쟁에 쫓겨 쫓겨 가지 않았으면

모구가 자유롭고 사랑이었으면

톳제비나 물레귀신 말고는

무서운 것들이 없었으면

거기에도 봄이면 진달래꽃 폈으면

꾀고리가 울었으면

골목길에 엄마닭이 병아리 데리고 다니고

감나무에 족두리 같은 꽃이 폈으면

창포꽃이 피고

그네 뛰는 단오날이 있었으면

 

응숙이네 머슴, 장수 아저씨랑

군마 할아버지 같은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살았으면

송아지도 있고 망아지도 있었으면

실개울엔 가재도 살고 우렁이도 살고

버들가지도 흔들리고 물총새도 날고

흰구름 동동 뜨고 제비가 날고

뻐꾸기가 자꾸자꾸 울었으면

아아, 거기엔 배고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

부자가 없어, 그래서 가난도 없었으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으르지도 않고 겁주지도 않고

목을 조르고 주리를 틀지 않았으면

소한테 코뚜레도 없고 멍에도 없고

쥐덫도 없고 작살도 없었으면

 

보리밥 먹어도 맛이 있고

나물 반찬 먹어도 배가 부르고

어머니는 거기서 많이 쉬셨으면

주름살도 펴지시고

어지러워 쓰러지지 말으셨으면

손목에 살이 좀 오르시고

허리도 안 아프셨으면

그리고 이담에 함께 만나

함께 만나 오래 오래 살았으면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어머니 함께 그 나라에서 오래 오래 살았으면

오래 오래 살았으면……

 

ㅡ 동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지식산업사, 1988)


[감상]

언젠가 수십 광년의 거리인 태양계 밖에서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 그때, 나는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넘어 지구별에서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들끼리 따로 한 살림 오붓하게 차려 살고 있진 않을까란 공상을 했다. 권정생 선생과 그 어머니의 이승에서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시를 으면서 내 공상도 활기를 띄어 내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도 이랬으면 하고 바랬다. 그곳에 전입신고 마치고 아이고, 이제 왔나, 고생 많았지” “보고 싶었어요, 어머니외할머니도 뵙고, 순영이 누나도 만나고, 그리운 사람 모두와 인사를 나눈 뒤 이제는 자리 잡고 지낼 만 하신지. 이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늬로 오래오래 사시다가 훗날 우리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내가 살아야할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권정생 선생의 섬세한 애정이 구구절절 배어있어 이오덕 선생 말씀 마따나 '무조건 감동적'이다. 선생 자신도 12년 전 517보리밥 먹어도 맛이 있고’ ‘나물 반찬 먹어도 배가 부른그곳으로 떠나가서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그러면서 오래오래 잘 살고 계실 것이다. 김용락 시인이 당시 임종을 지킨 뒤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기억한다. “돌아가시기 직전 선생님은 산소호흡기의 고무호스가 꽂힌 입을 움직여 무언가 맹렬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입모양은 어메였습니다. 어메소리를 2-3분간 안간힘을 쓰면서 지르시더니 더 이상 입모양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신 뒤 조탑리 이웃들은 세 번씩이나 깜짝 놀랐다고 한다. 혼자 골골하게 사는 외로운 노인으로 생각했는데 유명 동화작가라면서 전국에서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걸 보고 놀랐고, 지병으로 고생하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여운 노인인 줄 알았는데 연간 수 천 만원씩의 인세수입이 있는 분이란 사실을 알고 다시 놀랐으며, 그렇게 모인 10억 원이 넘는 재산과 앞으로 생길 인세수입 모두를 굶주리는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조목조목 유언장에 밝혀 놓으신 걸 보고 또 놀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생은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인류를 진정으로 사랑하신 이 시대의 성자셨다. 그리고 줘도 받지 않으실지 모르겠으나 누구보다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평화주의자셨다.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선생의 유언 중 일부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면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스물다섯 살쯤에 스물 두세 살의 처녀와 벌벌 떨지 않고 예쁜 사랑을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 나라에서 오래오래 사시다가 행여 이 세상으로 다시 오신다면 꼭 그러시길 바란다. 내 어머니도 내 아버지보다 조금만 더 마음씨 착한 남자 만나서 하고 싶은 그림 그리며 속 하나도 안 썩이는 딸 아들 하나씩 다시 낳아 진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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