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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조] (111) 불여귀 불여귀한이 - 이유(李渘) (2021.12.05)

푸레택 2021. 12. 5. 17:12

불여귀 불여귀한이 - 이유(李渘)

不如歸 不如歸한이 돌아감만 못하거든
에엿분 우리 님금 므스 일로 못 가신고
只今히 梅竹樓 달빗치 어제론 듯하여라

[뜻풀이]     

*불여귀(不如歸): 두견새의 울음 소리가 마치 "불여귀"라는 듯이 들린다고 한다. 글자대로의 뜻은 ‘돌아감만 못하다’이다.
*에엿분: ‘어엿분’의 옛말로, 행동이 거리낌 없이 아주 당당하고 떳떳한 것을 말한다.
*매죽루(梅竹樓): 강원도 영월에 있는 누각으로 단종이 자규시를 지었다는 곳이다.

[풀이]

"돌아감만 못하다, 돌아감만 못하다"고 하니 돌아감만 못하거든, 당당한 우리 단종 임금이 무슨 까닭에 못 돌아가시고 이 곳에서 세상을 떠나셨는가? 지금의 매죽루의 달빛을 보니 지난 일이 새로워진다.    

[지은이]

이유(李渘: 1675~1753): 조선 숙종때 문신. 자(字)는 중구(仲久), 호(號)는 소와(笑窩)·석호(石湖)·소악루(小岳樓). 선성군의 9대손이며 준도의 5대손이고 명운의 증손자이자 희안(希顔)의 아들이다. 1714년(숙종40)에 생원(生員)이 되고, 세마익위수(洗馬翊衛率)에 연거푸 제수(除授)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32년(영조8) 백씨(伯氏)의 말을 듣고 장릉(莊陵) 참봉(參奉)에 나아갔으며, 금부도사(禁府都事)·감찰(監察) 등을 역임(歷任)하였다. 1734년(영조10)에 동복현감(同福縣監)을 제수받았고, 1737년(영조13)에 관직(官職)에서 물러나자 그 곳 사람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고 한다.

[참고 1]

영월(寧越) 땅에 유배되어 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사(賜死)된 단종의 넋을 위로하여 지은 시조이다. 특히 작가가 서 있는 매죽루는 그 옛날 어린 임금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바장이다가 마침 자규의 울음 소리를 듣고 단장곡(斷腸曲)인 자규시를 읊은 곳이다. 그래서 작가는 마치 그 때의 일을 다시 보는 듯 솟아나는 비감(悲感)을 감출 길이 없어 이 시조를 지은 것이다. 자규는 ‘불여귀 불여귀’하고 우는데 임금님께서 왜 돌아가지 못하였는가? 자규의 울음소리를 불여귀(不如歸)라고 적는데, 그것을 단종에게 궁중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일러주는 말로 풀이한 것이 이 시조의 애절함을 더욱 높여 주고 있다. 지금도 영월 땅 어디에서는 어디에서는 ‘불여귀, 불여귀’하고 자규가 울고 있을 것만 같다. 《자규 삼첩》 중의 한 수이다.

[참고 2]

매죽루(梅竹樓): 단종은 1456년(세조2) 노산군(魯山君)으로 낮추어져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국지산 아래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그해 여름 홍수로 청령포가 범람하자, 관풍헌으로 옮겨가 생활하며, 동쪽의 자규루에 자주 올라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 소리에 자신의 처지를 견준 《자규사(子規詞)》를 지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원래는 매죽루(梅竹樓)였던 것이 후에 자규루(子規樓)로 개칭되었다.

[출처] 원문보기

https://blog.daum.net/thddudgh7

 

일소일빈

한자는 우리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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