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선에 그물 실을 제 - 이유(李渘)
小船에 그물 실을 제 酒樽 행여 잊을세라
東嶺에 달 돋았나 어서 배를 띄워스라
아희야 盞 자로 부어라 李白 본 듯하여라
[뜻풀이]
*소선(小船): 작은 배.
*주준(酒樽): 술통.
*잊을세라: 잊어 버릴까 염려 하노라. ‘~ㄹ세라’는 ‘그렇게 될까 염려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형 어미.
*동령(東領): 동쪽 산등성이.
*띄워스라: 띄우자꾸나! ‘~스라’는 ‘~구나’의 옛말이다.
*자로: ‘자주’의 옛말.
*이백(李白): 중국 당나라 때의 대시인.
[풀이]
동쪽 배에 그물을 실어 놓을 적에 혹시나 술통을 함께 실는 것을 잊어버릴까 염려가 되는구나! 동쪽 산등성이에 달이 솟았으니, 고기를 잡으러 가게 어서 배를 띄우자꾸나! 배에 오르거들랑 잔에다 술이나 자주 부어다오, 아무래도 내가 이백을 만나 본 것만 같도다!
[지은이]
이유(李渘: 1675~1753): 조선 숙종때 문신. 자(字)는 중구(仲久), 호(號)는 소와(笑窩)·석호(石湖)·소악루(小岳樓). 선성군의 9대손이며 준도의 5대손이고 명운의 증손자이자 희안(希顔)의 아들이다. 1714년(숙종40)에 생원(生員)이 되고, 세마익위수(洗馬翊衛率)에 연거푸 제수(除授)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32년(영조8) 백씨(伯氏)의 말을 듣고 장릉(莊陵) 참봉(參奉)에 나아갔으며, 금부도사(禁府都事)·감찰(監察) 등을 역임(歷任)하였다. 1734년(영조10)에 동복현감(同福縣監)을 제수받았고, 1737년(영조13)에 관직(官職)에서 물러나자 그 곳 사람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고 한다.
[참고]
이백(李白: 701~762): 자(字)가 태백(太白)이고, 호(號)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이백의 어머니가 태백성을 태몽(胎夢)으로 꾸어 백을 낳자 자를 태백이라고 하였다. 청련향(靑蓮鄕=사천(四川) 면주(綿州) 창명현(彰明縣)에 살았기 때문에 호를 청련거사라고 하였다. 5세에 아버지를 따라 사천 지방으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낸다. 25세경 고향 사천을 떠나 전국을 만유하며 시우(詩友)를 사귀고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여 관직에 추천해 줄 인사를 찾아다닌다.
42세에 드디어 오균(吳筠)의 천거로 장안(長安)에 입성, 현종을 알현하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라는 직책을 제수받는다. 그러나 황제를 대신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연회에 불려질 노래를 짓는 등의 임무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침내 채 2년이 못되어 장안을 나온다. 이후 다시 중원지역을 만유하며 두보·고적 등의 시인들과 친분을 맺고 혹은 도교에 입문하여 도사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 후 이백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영왕의 반란에 일조하게 됨으로써 역모(逆謀)에 가담한 죄로 사형(死刑)에 처해질 위험에 봉착하게 되었으나 지기(知己)의 도움으로 유배형을 받게 되고 다시 사면되어 장강가를 유랑하다 62세가 되던 해 당도의 친척 집에서 병사(病死)하였다. 약 1,000수 가량 남아있는 이백(李白)의 시는 그의 생애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하다. 세상을 구제하고자 하는, 정치적 이상과 여의치 못한 현실 속에서의 모순된 심정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뜨거운 열정은 중국 역대 어떤 문인(文人)도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하고 초월적인 시세계(詩世界)를 형성하고 있다.
[출처] 원문보기
https://blog.daum.net/thddudgh7
일소일빈
한자는 우리글이다
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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