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벼슬이 귀타 한들 - 신정하(申靖夏)
벼슬이 귀타 한들 이내 몸에 비길소냐
蹇驢를 바삐 몰아 故山으로 돌아오니
급한 비 한 줄기에 出塵行裝 씻괘라
[뜻풀이]
*비길소냐: 견줄 수 있겠느냐? 비교할 수 있겠느냐?
*건려(蹇驢): 다리를 절룩거리는 나귀.
*고산(故山): 옛 보던 산, 고향 산.
*급한 비: 소나기.
*출진행장(出塵行裝): 속세를 벗어난 여장.
*씻괘라: ‘씻겟노라’의 옛말. ‘~괘라’는 ~었노라, ~겠노라의 옛말이다.
[풀이]
벼슬이 귀하고 좋다고는 한들 이 내 한몸이 소중함에야 어찌 견줄 수가 있겠는가? 다리를 절룩거리는 나귀를 바삐 몰아서 고향땅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가 속세를 등지고 돌아오는 티끌 묻은 행장을 말끔히 씻어 주었구나!
[지은이]
신정하(申靖夏: 1680~1715): 조선 후기 때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정보(正甫), 호는 서암(恕菴). 여정(汝挺)의 손자이며, 영의정 완(琓)의 아들이고, 유(瑜)에게 입양 되었다.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이다. 1705년(숙종3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설서(說書)·부교리 등을 역임했다. 1715년 헌납으로 있을 때, 유계의 《가례원류(家禮源流)》를 발간하면서, 발문을 쓴 정호(鄭澔)가 윤증(尹拯)을 비난했다가 윤증·유계의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소송사건에 연루되었다. 그의 아버지 완은 윤증의 제자였는데, 이때 그도 윤증을 옹호하는 편에 가담하여 정호를 반박하였다가 파직당했으며, 젊은 나이로 36세에 요절(夭折)하였다. 저서로는 《서암집(恕菴集)》을 남겼다.
[참고]
환해풍파(宦海風波)를 뒤로 하고 고향(故鄕)으로 돌아가는 심경이 잔잔하게 그려진 시조이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의 큰 뜻을 품고 벼슬길에 나왔다가 본의든 타의든 환향(還鄕)한다는 것은 패배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이 시조의 작가는 25세에 벼슬길에 나갔다가 10년만에 당쟁(黨爭)의 제물이되어 파직(罷職)되었던 것이니, 분명 바라던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의 미련도 없이 귀한 몸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자위(自慰)하면서, 저는 나귀에 몸을 싣고 그리운 고향땅을 찾아 들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소나기가 내려 속세(俗世)의 때묻은 옷을 씻어 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찌 옷뿐이겠는가? 그 동안에 쌓인 마음의 먼지까지 깨끗이 씻어 주었을 것이다.
[출처] 원문보기
https://blog.daum.net/thddudgh7
일소일빈
한자는 우리글이다
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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