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 김태길(金泰吉)
팔자를 따라 타고난 두 다리가 유난히 길었다. 이것은 체질이 눈에 띄게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달음박질에 있어서만은 같은 또래 어린이들을 대략 물리칠 수 있는 조건, 이를테면 만사에 공평무사한 신의 섭리의 나타남이었다.
그즈음 ‘보통학교’ 라고 불리던 국민학교의 연중 행사에 있어서 가장 컸던 것은 ‘추계 대운동회’였던 것같이 기억된다. 대운동회는 대개 시월 말경 혹은 십일월 초순에 있었으나, 학교는 구월에 들어서자마자 벌써 그 준비에 바빴다. 학급마다 각 종목의 연습을 하였지만 나에게 있어서 가장 관심 깊었던 것은 ‘백미 도보(白米徒步)’라고 불리운 단거리 경주였다. 연습 때마다 거의 틀림없이 첫째로 달릴 수 있었던 이 허약하여도 다리가 긴 어린이에게 저 ‘대운동회’ 는 하나의 영광의 날로서 고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회가 열릴 전날부터 우리 남자 어린이들은 흰 러닝셔츠에 검정 팬츠 그리고 홍백의 운동 모자를 쓰고 하루종일 살았다. 그리고 밤에 잘 때는 그것들을 착착 개어서 머리맡에 모셨다.
드디어 운동회가 열리기로 된 날, 천지는 아침 안개로 자욱하였다. “안개가 끼면 비는 오지 않는다"는 아저씨의 기상학적 설명에 안도와 감사를 느끼면서 아침 숟가락을 든다.
“든든히 먹고 가거라. 왼종일 뛸 텐데.”
외조모의 노파심이 상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괜찮아요. 배도 안 고픈 걸요.”
두어 번 뜨는지 마는지 숟가락을 놓는 어린이들의 마음은 벌써 만국기 휘날리는 운동장으로 달린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그 위에 옷을 더 입고 가야 한다.”
당목 중의 적삼을 내놓으시는 어머니를 ‘아무것도 모른다’고 단정하면서 동갑(同甲)의 외사촌과 나는 셔츠와 팬츠 바람으로 안개 낀 골목길을 용약 바람같이 사라졌다.
골목길을 나서면 꼬불꼬불 전답(田畓) 사이로 뚫고 풀잎 끝에 아침 이슬 가득한 소로(小路)가 있으며, 이 소로를 지나면 미루나무 가로수들이 단풍에 시들은 신작로(新作路)가 나선다. 농민들의 부역으로 주먹같은 자갈이 빈틈없이 깔린 신작로는 마차 바퀴 지나간 두 줄기 평행선만이 겨우 판판하다. 운동회나 학예회날 고무신을 신고 가면 틀림없이 잃어버린다는 상급생의 충고가 있었고 운동화나 양복은 ‘읍내 애들’ 만이 사용하던 시절인지라 우리 농촌 아이들은 그저 맨발로 저 자갈길 십 리를 아무 불평도 없이 달렸다. 어머니와 아주머니 그리고 형님과 아저씨가 점심 식사를 준비하여 뒤를 따른다는 약속에만 태산같은 희망을 걸면서.
이 하루 대목장을 노리고 모여든 행상인들, 난가게들의 “군밤이요!” “홍시가 싸구려” 등으로 주변이 자못 소연(騷然)한 가운데 행사는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었다. 내 관심의 초점이었던 우리 일학년 큰 반 백미 경주의 차례가 왔을 때는 나의 ‘일등’을 보기 위하여 어머니를 비롯한 집안어른들이 이미 ‘부형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상품은 삼등까지 주기로 마련이다. 결승선 부근에는 고등과 학생들이 등수를 표시하는 기를 들고 기다린다. 흰 바탕에 빨간 줄 하나 그은 것이 일등 깃대, 둘 그은 것이 이등 깃대, 그리고 셋 그은 것이 삼등 깃대, 자신만만하게 출발선에 섰다. 그러나 호각 소리를 신호로 내디딘 스타트에 있어서 나는 아차 한걸음 늦었다. 악과 기를 다 써서 선두를 차지하려 하였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 스스로의 판단으로 볼 때, 분명히 이등은 차지한 듯하여 나는 이등 깃대를 잡으려 하였다. 하나 고등과 학생은 거절하고 딴 놈에게 그것을 준다. 그럼 상등인가 하고 삼등 깃대를 찾았으나 삼등 깃대도 이미 딴 임자를 만나서 교장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너무 억울하고 허무하여 그저 울고만 싶은 심정.
이렇게 하여 나의 생후 최초의 경주는 끝났으나, 나의 불평은 집에 돌아와서도 그치지 않았다.
“어떤 애들은 호각도 불기 전에 뛰었는걸 뭐” 하고 나는 말하였다. 그것보다 더욱더 나쁜 것은 기를 맡아보던 고등과 학생들이라고 욕설을 했다. 이때 나보다 열한 살이나 위인 형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니다. 고등과 학생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네가 잘못했다. 너는 흰 석회가루로 그려진 결승선으로 바로 달리지 않고 그 근처에 서 있던 깃대를 보고 달려갔다. 네 말마따나 너는 둘째로 달려갔다. 그러나 결승선에 들어가기 조금 앞에서 깃대를 잡으려고 옆길로 가는 사이에 뒤를 따르던 다른 아이들이 너보다 먼저 결승선을 지나간 것이다.”
이 말을 받아서 엽총장이 아저씨는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
“깃대를 잡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면 차례대로 깃대는 갖다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물론 이 두 성숙한 사람들의 말이 포함할 수 있는 모든 뜻을 깊이 살피지는 못하였다. 아마 그 말을 던진 본인들도 별달리 깊은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리라. 여하튼 그 다음해 운동회 때는 시키는 대로 앞만 보고 달렸으며, 그 결과 ‘상’ 자 도장이 뚜렷이 찍힌 공책 세 권! 저 숙망의 영광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깃대는 안중에 두지 말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라. 기를 가져다 주는 사람은 저절로 생기리라”는 말이 인생 전반에 걸친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끝내 염두(念頭)를 스치지 않았으며, 세월과 함께 경주와 깃대는 그대로 기억권 외(外)로 사라지고 말았다.
◇ 김태길(金泰吉, 1920~ 2009): 수필가 · 철학자. 충북 중원군(中原郡) 이류면(利柳面) 두정리(豆井里) 출생. 호는 우송(牛松). 1943년 일본 제삼고등학교(第三高等學校) 문과(文科)를 거쳐 동경대학(東京大學) 법학부(法學部) 수학. 해방후 서울대학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49년 동 대학원 철학과를 수료했다. 1960년 미국 존즈 홉킨즈 대학원을 졸업,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연세대학교과 서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1년 처녀 수필집 《웃는 갈대》를 발간, 이어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 마음 흰 마음》, 장편수필 《흐르지 않는 세월(歲月)》을 내놓았다. 이밖의 저서로 《한국인과 문학사상(文學思想)》(共著)이 있다. 주목받은 논문으로 《이조소설(李朝小說)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價値觀) 연구》가 있다.
[출처]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1998)
/ 2021.11.22(월)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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