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 이야기 / 서정범(徐廷範)
옛날에 한 나이 어린 아가씨가 흰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갔다. 흰 가마는 신랑이 죽고 없을 때 타는 가마다. 약혼을 한 후 결혼식을 올리기 전 신랑이 죽은 것이다. 과부살이를 하러 흰 가마를 타고 가는 것이다. 시집에 가서는 보지도 못한 남편의 무덤에 가서 밤낮으로 흐느껴 울었다. 그래야만 열녀가 된다.
아씨가 흐느껴 울고 있는 밤중에 신기하게 무덤이 갈라지더니 아씨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친정에서 함께 따라온 하녀가 이 광경을 보고 달려가 아씨의 저고리 옷섶을 잡고 늘어졌다. 옷섶이 세모꼴로 찢어지며 아씨는 무덤 속 깊숙이 빠져들어 갔다. 이윽고 갈라진 무덤이 합쳐졌다. 아씨를 잃은 하녀의 손에는 세모꼴 찢어진 저고리 섶만이 남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찢어진 저고리 섶이 흰나비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아내가 지난 유월에 열대어를 사 놓았다. 금붕어가 자주 죽어서 열대어로 바꿔 놓은 것이다.
고기 이름도 생소한 엔젤, 불그람, 불랙 데뜨라, 네온 데뜨라, 키씽, 스마트라, 산따마리아, 구삐 등 열 한 가지의 고기고, 어항도 넉 자짜리 길쭉하고 네모진 것으로 바꾸고, 산소 공급기, 형광등으로 조명 장치까지 하니 한결 마루방이 환해지고 아이들도 퍽 기뻐하였다.
사온 지 이틀 만에 세 치가량 되는 하늘색 불그람이 좁쌀알만 한 흰 거품을 만들었다. 열대어 장수 설명에 의하면 암놈이 알을 깔 때면 수놈이 거품을 만들었다가, 알을 낳으면 숨겨 둔다고 한다. 수놈이나 암놈이 발정이 되면 하늘빛 색깔이 진하게 변했다 연해졌다 한다. 수놈이 진한 빛깔로 변한 채 흰 거품을 수면에 수복이 만들어 놓았다. 암놈이 수놈의 등을 다정스럽게 쫀다. 그러면 수놈이 진한 색깔로 변해서는 온몸으로 암놈의 배를 감싸주면서 알을 짜내는데 이때 수정이 되는 것이다.
몇 차례에 걸쳐 암놈의 배를 감싸서 약 팔백 개가량의 알을 낳았다. 그런데 암놈이 자기가 낳은 알을 집어먹는다. 그러자 수놈이 암놈에게 달려가 어항 구석으로 쪼아서 몰아넣는다. 암놈이 조금만 얼씬거리면 달려가서 쫀다.
다른 고기들이 날쌔게 달려와서 알을 집어먹는다. 구삐란 놈은 알을 하나 먹고 수놈한테 쪼며 빌빌한다. 그래서 알을 다른 어항으로 옮기려고 손을 집어넣었더니 수놈이 와서 쪼는데 깜짝 놀랐다. 전신에 전기가 감전되는 것과 같이 찌르르하였다. 불그람으로서는 약탈자에 대한 결사적인 방어였을 게다. 숟갈로 뜨는데도 숟갈을 쪼아 감전을 느낀다. 결사적인 공격이었다. 그래서 먼저 수놈을 잡아서 알을 옮길 어항으로 옮겼다.
흩어져 떠 있는 알을 본 수놈은 알을 모조리 입안으로 잡아넣는다. 수놈이 화가 나서 잡아먹는 줄 알았는데 흩어져 있는 알을 물어다가 모아 놓는다. 그러나 계속 거품을 만들어 알을 숨긴다. 알을 낳은 지 二十 四 시간이 되니까 알에서 새끼가 나오기 시작한다. 알이 뱅그르르 돌아가는 새까만 점이 톡 튀어나오는데 바로 새까만 점이 새끼인 것이다.
사람이 얼씬거리자 수놈은 안절부절 흥분해서 공격태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더니 새끼들을 잡아먹는 게 아닌가. 사람들이 얼씬거리니 화가 나서 잡아먹는 줄 알았다. 보아하니 새끼들을 물어다가는 거품 속이나 풀 밑으로 숨겨둔다.
암놈은 알만을 낳고 다른 어항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데 수놈은 알을 낳기 전부터 먹이를 통 입에 대지 않고 새끼들의 보호를 위해 초긴장 상태다. 암놈은 알을 낳은 지 일주일만 되면 다시 알을 낳는다. 배가 부르고 발정을 해서 색깔이 진하게 된다. 수놈을 암놈 있는 곳으로 옮겨다 놓았더니 곧 거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암놈이 알만 낳으면 수놈은 조금도 쉼 없이 돌본다.
세 배 째 깠을 때다. 수놈이 먹지를 못해 마르고 피로했으니 좀 쉬게 하자고 플라스틱판으로 막고 혼자 따로 격리시켜 놓았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수놈은 새끼들이 있는 쪽을 향해 머리를 박고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달 가까이나 먹이를 안 먹고 피로해 겹친 데다가 새끼들과 떨어져 혼자 있으니까 안타까워 죽은 것 같다.
휴식을 준다는 게 도리어 죽음을 준 셈이 되었다. 아이들이 고기 눈에 흙이 들어가니 눈을 가려서 묻자고 한다. 아이들이 색종이를 내다가 예쁘게 싸서 묻었다. 아내나 아이들이 무척 섭섭해 하였다.
암놈은 수놈의 죽음을 아랑곳없이 다시 배가 부르기 시작하고 색깔이 진하기 시작한다. 열대어 장수에게 부탁해서 다른 수놈을 구해 왔다. 그의 말에 의하면 볼그람은 낯을 가리지 않아 아무것이나 불그람이면 짝이 된다고 한다. 엔젤 같은 열대어는 암. 수라 할지라도 짝을 맞추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이다.
새로 온 수놈이 암놈 배가 부른 것을 보더니 흰 거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잔뜩 거품을 만들고 수놈이 암놈에게 다가가자 암놈은 피한다. 받자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가 달은 수놈은 암놈을 더욱 쫓아다니며 암놈의 배를 자꾸 쪼는 것이다. 수놈이 암놈에게 너무 성화를 불이니까 아내는 암놈을 따로 떼어 놓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암놈은 혼자서 알을 하얗게 슬었다. 수놈의 도움 없이 알을 낳았으니까 새끼가 될 수 없는 무정란이다.
열대어 장사는 열대어를 기른 지 십여 년이 되지만 불그람 암놈 혼자서 알을 낳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사랑 없는 수놈의 새끼를 깔 바에야 그냥 무정란으로 낫고 만 것이다. 미물인 고기이지만 죽은 수놈을 그리워함인지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인지 새로운 수놈에게 받자를 않는다.
아내는 수놈과 암놈만을 떼어서 다른 어항에 넣었다. 둘만 되었는데도 암놈은 수놈을 피한다. 수놈은 암놈을 따라다니며 암놈의 배 언저리를 자꾸 쫀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수놈을 격리시겼다. 자세히 보니 암놈은 수놈에게 쪼여 지느러미가 갈라지고 뜯겨서 배 언저리는 상처투성이다. 암놈은 너무 아파서 지느러미를 움직이지 못하고 몸으로 데뚱대뚱 밀고 헤엄쳐 나간다. 보기에도 애처롭다. 헤엄치는 자세는 꼿꼿한 몸으로 결사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만약 헤엄치는 동작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빡빡이 죽을 것 같은 비장한 각오로 헤엄친다. 목숨을 건 헤엄이었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걱정이 되어 암놈이 속히 낫기를 바랬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산소 공급기에 머리를 거꾸로 박고 있는 게 아닌가. 산소를 호흡하느라고 거꾸로 박혀 있는 줄 알았더니 암놈이 죽은 것이다. 얼마나 아프고 괴로워 물방울이 올라오는 산소 공급기에 머리를 박고 죽었을까. 새로운 수놈에게 받자를 않으니까 그놈에게 쪼이고 물어뜯기어 죽은 것이다. 목숨을 걸고 절개를 지켰다. 하나의 작은 고기의 죽음이지만 아내나 아이들도 침통한 표정이다.
아이들이 아빠 고기 묻은 곳에 묻자고 한다. 색종이에 싸서 먼저 묻은 수놈과 함께 나란히 묻었다. 묻고 나자 여섯 살인 딸애가 눈을 깜빡거리더니 흙 속에 묻은 고기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그냥 썩어서 흙이 된다고 하기에는 어린이의 꿈을 깨는 것 같아 언뜻 나비가 된다고 했다. 그러자 네 살짜리 끝엣 딸애가 정말 나비가 되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어린이에게 거짓말한 게 좀 찔렸지만, 우물우물 그렇게 넘겨 버렸다.
그 후 불그람의 암놈이 죽은 지 보름 가량이 지났다. 나는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의 실황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었다. 지금 막 한국 팀이 홈런을 날려 이기고 있을 때였다. 네 살짜리 끝엣 딸애가 들어오더니,
“아빠 이리 와 봐!”
하고 손을 이끄는 것이다.
“무언데, 말해 봐!”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꼬마는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아빠, 저 나비 봐, 죽은 불그람 왔잖아!”
불그람을 묻은 코스모스 꽃에는 두 마리의 흰나비가 날아와서 앉아 있었다.
◇ 서정범(徐廷範, 1926~2009): 수필가이자 국어학자이며, 동시에 무속연구가이기도 한 서정범은 1926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황해도로 이주해 성장했으며 한국전쟁 중 해주에서 홀로 월남했다. 시인 김광섭과 소설가 황순원이 재직하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1957)와 동 대학원(1959)을 졸업한 후, 평생을 모교에서 후진 양성에 이바지했다.
서정범은 수필가로서의 명성만큼 저명한 국어학자로 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특수 계층인 ‘백정’의 언어를 다룬 《한국 특수어 연구》(1959)에서 시작된 그의 학문 분야 연구는 《15세기 국어의 표기법 연구》(1964), 《현실음의 국어사적 연구》(1975), 《음운의 국어사적 연구》(1982) 등으로 이어져 국내외 언어학계에 일찍부터 신선한 충격을 가했다. 특히 그의 후기 저작들인 『우리말의 뿌리』(1989), 『일본어의 원류』(1989), 『한국에서 건너간 일본의 신과 언어』(1994), 『국어어원사전』(2000)은 우리말의 원형과 기원은 물론 일본과 몽골, 터키 등이 속한 알타이 언어권과의 상관성을 추적하는 데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2021.11.19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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