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작수필] '우리 꽃 산책' 이유미(李惟美) (2021.11.14)

푸레택 2021. 11. 14. 15:09

■ 우리 꽃 산책 / 이유미(李惟美)

예부터 우리 나라는 금수강산이라 불려 왔다. 금수강산은 비단에 수를 놓은 것과 같이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뜻이니, 이보다 더한 찬사는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사계절 수놓는 것이 바로 우리 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꽃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기 예사이고, 도대체 저 꽃이 우리 꽃인지 아닌지조차도 모른다. 그만큼 무관심하다는 말이다.

우리 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 강산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지금까지 우리 꽃 이름도 모르고 우리 꽃인지조차 몰랐지만, 이제부터 우리 꽃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꾼다면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봄날의 앵초

봄에는 봄나들이 떠나는 병아리 떼처럼 앙증맞은 노란 꽃이 유난스럽게 많다. 냉이와 함께 피는 꽃다지가 그러하고, 길가에 나지막하게 피는 민들레,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복수초, 동의나물과 애기똥풀, 그리고 노란 개나리가 모두 그러하다.

봄꽃 중에서도 앵초는 독특한 자태와 고운 빛깔로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한순간에 빼앗아 버린다. 들판에 아지랑이가 한창 피어오를 무렵, 주로 물가에 피어나는 앵초는 주름진 잎새와 진분홍색의 작은 꽃송이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앵초는 이렇게 고운 모습을 하고서도 어린잎을 산나물로 내주고, 뿌리를 포함한 식물 전체가 기침, 천식, 기관지염, 종기 등에 약으로 쓰인다고 하니 참으로 기특한 식물이 아닐 수 없다.

앵초의 꽃말은 ‘행운’이다. 아닌게아니라 봄날, 앵초의 무리를 만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다면 이는 분명 행운이다.

봄의 꽃들은 잎보다 꽃을 먼저 피워 내는 것들이 많아 더욱 화사하고, 멋없이 키를 키우지 않고 햇살이 따사로운 양지쪽에서 고만고만하게 자라므로 더욱 사랑스럽고 앙증맞다. 그 어떤 화려한 꽃 사진이라고 할지라도 직접 들과 산에 나가서 오감으로 느껴 보는 봄꽃만 못할 것이다.

여름의 문턱에 피어나는 붓꽃

여름의 문턱인 유월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꽃이 붓꽃이다. 정원에 심은 큼지막한 붓꽃을 보면서 외국에서 들어온 꽃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산길이나 들판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붓꽃을 본다면, 이웃의 아주머니나 아저씨를 만난 듯한 다정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붓꽃은 모양 자체가 워낙 독특한데다가, 꽃색마저 신비스러운 보랏빛을 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붓꽃이란 이름은 꽃봉오리가 마치 먹물을 머금은 붓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붓꽃은 서양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데, 붓꽃의 서양 이름은 아이리스이다. 아이리스는 무지개라는 뜻으로, 비 온 뒤에 볼 수 있는 무지개처럼 ‘생활에 기쁜 소식’을 전해 준다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붓꽃에는 여신 주노와 아이리스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여신 주노의 시녀 아이리스에게는 주피터가 사랑을 간청하자, 아이리스는 주인을 배반할 수 없어 무지개가 되어 주노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붓꽃은 비가 내리고 난 뒤나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

붓꽃은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잘 자라므로 키우기 쉽고 뿌리를 약재로 쓸 수 있으니, 외양도 곱고 덕목(德目)도 많은 꽃이다.

가을의 전설 쑥부쟁이

쑥부쟁이는 이름이 조금 낯설지만 그 모양을 한 번 보면, “아, 그 연보랏빛 들국화!” 하고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꽃이다. 고향(故鄕) 산천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에 따라오는 꽃이 바로 쑥부쟁이이다. 쑥부쟁이는 이 땅의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정겨운 꽃이다.

쑥부쟁이는 원래 산이나 들에 자라는 꽃이지만, 집 안의 화단에 옮겨 심어 놓아도 잘 자란다, 또, 어린 순을 먹기도 하고, 약으로도 쓸 수 있으니, 이 정도면 재색(才色)을 겸비한 꽃이라 할 수 있다.

쑥부쟁이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아주 깊은 산골에 가난한 대장장이 가족이 살고 있었다. 대장장이의 큰딸은 병든 어머니와 11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보며 틈틈이 쑥을 캐러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네의 딸’이라는 뜻으로 그녀를 쑥부쟁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쑥부쟁이가 산에서 쑥을 캐다가 상처를 입고 사냥꾼에게 쫓기는 노루를 보게 되었다. 쑥부쟁이는 노루를 숨겨 주고 상처까지 치료해서 보내 주었다. 쑥부쟁이가 다시 산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멧돼지를 잡으려고 파 놓은 함정에 빠진 사냥꾼을 보게 되었다. 사냥꾼을 구해 주고 보니 아주 잘생기고 씩씩한 청년이었다. 첫눈에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청년은 내년 가을에 다시 찾아오겠노라는 약속을 하고 떠나 버렸다. 청년을 기다리면서 한 해 두 해 가을이 지났다. 다시 여러 번의 가을이 지났지만, 청년으로부터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쑥부쟁이는 청년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렸다. 그랬더니 몇 년 전에 목숨을 구해 주었던 노루가 나타났다. 그 노루는 바로 산신령이었던 것이다.

노루는 보랏빛 주머니에 담긴 노란 구슬 세 개를 주었다. 그러고는 “구슬을 하나씩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세 가지 소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쑥부쟁이는 첫째 번 구슬을 입에 물고 어머니의 병환을 낫게 해 달라고 했다. 산신령의 말처럼 어머니는 순식간에 건강을 되찾았다. 둘째 번 구슬을 입에 물고는 사냥꾼 청년을 보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러자 바로 그 자리에 청년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이미 결혼하여 아이까지 두고 있었다. 쑥부쟁이는 청년이 원망스러웠지만, 아버지를 잃을 아이들이 불쌍하여 그 청년이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해 달라고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그 후 쑥부쟁이는 청년을 잊지 못하다가, 어느 날 그만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죽고 말았다. 쑥부쟁이가 죽고 난 뒤, 그 자리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이 꽃을 보고 쑥부쟁이가 죽어서도 배고픈 동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꽃을 쑥부쟁이라고 부르고, 쑥부쟁이의 보랏빛 꽃잎과 노란 꽃술을 노루가 준 주머니와 함께 세 개의 구실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겨울 팔손이 이야기

팔손이는 꽃송이가 풍성하고 잎이 시원스럽게 생겨서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팔손이는 경상 남도 통영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쯤의 거리에 있는 비진도를 중심으로 한, 남해 도서 지방에 자라는 우리 꽃이다. 비진도에서는 팔손이를 총각나무라고도 하는데, 총각나무라는 이름을 나직히 읊조려 보면, 비밀을 간직한 듯 수줍게 웃고 있는 섬 총각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팔손이의 꽃말은 ‘비밀’이다.

팔손이는 어린아이 팔뚝만한 큼직한 잎이 8갈래로 나뉘어 있어서 팔손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잎이 7개나 9개인 것도 있다. 겨울철에는 잎이 아래로 처지기도 하는데, 아마도 꽃을 더 잘 보이게 하려는 배려가 아닐까 싶다. 줄기의 끝에 달리는 우윳빛의 둥근 꽃은 우산 모양으로 모여 있는데, 이것들이 다시 모여 전체적으로 큼직한 원뿔 모양의 꽃차례를 이룬다. 꽃이 달렸던 자리에는 둥글고 까만 열매가 맺히는데, 푸른 잎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팔손이에는 인도 공주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인도에 아름다운 공주가 살고 있었다. 공주는 열일곱 살이 되던 생일날, 어머니로부터 예쁜 쌍가락지를 선물로 받았다. 어느 날, 시녀가 공주의 방을 청소하다가 거울 앞에 놓인 반지를 보게 되었다. 시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두 손 엄지손가락에 반지를 하나씩 끼고 말았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한번 끼운 반지는 아무리 애를 써도 빠지지 않았다. 벌을 받을까 겁이 난 시녀는 반지 위에 다른 것을 끼워 감추었다. 상심한 공주를 보고 왕은 온 궁궐을 다 뒤지게 했다. 그래도 공주의 쌍가락지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왕은 궁궐 안의 사람들을 조사하게 되었다. 왕은 한 사람씩 손가락을 펼쳐 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겁이 난 시녀는 엄지손가락 두 개는 감추고 여덟 손가락만 내밀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져서, 순식간에 시녀는 한 그루의 나무로 변하고 말았다. 이 나무가 바로 팔손이이다.

꽃에는 우리의 마음이 담겨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이 땅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했다. 우리 선조들의 마음 또한 담겨 있다. 하지만, 우리 꽃은 그 마음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철따라 피어나서 보여 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소박한 마음씨에 때로는 감동받고, 작은 기쁨을 누리는지 모른다. 이 산하 곳곳에 무더기무더기 피어나는 우리 꽃은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꽃들로 가득하다. 보고 싶고 확인해 보고 싶다면 산과 들로 가 보자. 아마 가슴 가득 기쁨을 안고 돌아올 것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근사한 들꽃 하나쯤 품고 사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 2021.11.1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