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작수필] 오빠의 바다 / 박미림
집 나간 오빠가 돌아왔다. 거지 행색을 하고. 달포만이었다. 초상집처럼 울고불고 전국을 찾아 나서곤 하던 가족들은 일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의 몰골에 할 말을 잃었다. 가난하지만 아들만큼은 온 정성을 다해 키우셨던 부모님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독 수재(秀才)였던 아들이었다. 내게도 오빠의 초라한 귀가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하늘같이 우러러 보이던, 우리 집의 우상이었던.
모범생 오빠, 그의 가출은 연유가 있었다. 난, 한 참 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부터 그는 모든 걸 포기한 인생 같았다. 짜증을 내고, 무단결석을 하고,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판을 벌이고, 온종일 기타를 두드리며 고성방가를 불렀다. 그러다가 급기야 호된 꾸지람을 받은 날, 기다렸다는 듯, 집을 나가버렸던 거였다. 난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변해버린 오빠가 섭섭하고 미웠었다.
70년대는 연좌제가 무시무시하던 시절이었다.
우리에겐 얼굴도 모르는 큰아버지가 계셨다. 보도연맹 서기로 일했다는. 6.25가 발발하기 직전, 그가 영문도 모른 채 불려 나가 한밤중에 주검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은, 늘 우리 일가친척을 주눅 들게 했다. 그 끔찍한 사연은 쉬쉬해야만 했던 우리 집의 불행한 가족사였다. 함부로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앗아갔다. 그로 인해 판검사를 꿈꾸던 삼촌도, 공무원을 원했던 사촌들도 모두 꿈을 접어야 했음을 오빠는 뼈아프게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연좌제가 걸려있는 가족들에게 똑똑하다는 건, 어쩌면 형벌이었을 거다.
‘공부한 들 뭘 해,’ ‘난 희망이 없어,’ ‘죽고 싶어.’ 오빠가 집을 나가고 난 뒤 이곳저곳 낙서장에는 자신과 시절을 비관하는 글들로 빼곡했었다. 그러니 집을 나간 오빠가 달포 넘어서까지 돌아오지 않았을 때 가족들은 모두 불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제발 살아있기나 해라.’ ‘그래, 희망이 없는 젊음이란, 이해하고도 남지.’ 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온 가족이 단서를 찾느라 책을 뒤지고 친구들을 수소문하고 속을 태우다 그만 지쳐갈 즈음이었다.
그날도 가족들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던 중이었을 거다. 오빠가 돌아왔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마루 끝에 선 저 사람, 옥수수수염 같은 머리카락, 엉클어진 수염, 퀭한 눈, 낯설었다. 저 이가 정녕 내가 아는 우리 오빠란 말인가? 하지만 어색하다거나 반가운 인사를 나눌 새도 없었다. 그는 쓰러져 시체처럼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 그는 푸르르 깨어났다.
바다 냄새가 났다. 그가 말문을 열었을 때.
죽음 근처에서 헤매던 냄새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바다를 한껏 껴안고 돌아온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는 죽기 위해 생의 끝인 양 바다를 향해 달렸다고 한다. 충청북도 보은 땅, 자신을 태어나게도 했거니와 자신의 삶을 저당잡은 고향을, 가족을, 등지고만 싶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완전한 반대 방향인 바다로 바다로 향해 끝없이 달렸다고 했다. 충청도에서 부산으로, 다시 목포로, 죽고자 찾아 나선 바다였다. 그가 죽기 위해 바다 앞에 설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파도 소리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안돼, 아들아! 그건 안돼.”
바다는 죽고자한 마음들을 흔들어 일으켜 주었을 것이다. 아픔을 토닥토닥 안아주고, 흔들리며 살아온 제 생을 일러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 문득 파도의 하얀 포말처럼 다가온 사람. 하얀 제복의 대학생이었다. ‘해양대학’. 눈이 부셨다고 했던가? 가슴이 뛰었다고 했던가? 희망처럼 무엇이 번쩍 솟아올랐다고도 했다.
“그래 바다와 함께 살자. 파도 너머엔 빛이 있을 것이다!”
‘돌아가자. 다시 돌아가 시작할 것이다.’
얼마나 흔들리고 흔들렸던 것일까? 깨어난 그에게 단단한 각오가 보였다. 오빠는 머리를 깎고 독서실로 향했다. 고등학교 1학년을 채 마치지도 않았던 그였다. 그가 불과 1년 남짓, 급기야 검정고시를 거쳐 목표한 대학을 입학하고 무사히 졸업까지 했다. 순탄치는 않았지만, 무사히 외항선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엄마는 늘 부뚜막에 바다를 모셔 놓고 사셨다. 그것은 어머니의 조왕신이자 포세이돈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추운 겨울 부뚜막에 떠 놓았던 조왕보시기 정화수가 얼었다고
“야야, 오빠에게 좋은 일이 있을랑갑다. 이것 좀 봐라. 돛을 단 배.”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정화수 보시기의 물은 배처럼 얼어있다. 가운데가 볼록 치솟아 정말 바다 위에 돛배 같았다. 나는 웃지 않았다. 굳이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과학 사전을 찾아보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엄마의 상상이 옳다고 무조건 믿고 싶었다. 사방 바다를 만날 수도 없는 충청도 산골에서 우리 엄마는 부뚜막에 날마다 바다를 모셔 놓았던 거다. 세상의 수많은 생명을 품을 줄 아는 바다, 흔들릴수록 더 아름답게 반짝이는 바다, 엄마의 부뚜막이 그 바다가 아니라고 누가 우길 수 있겠는가?
오빠의 하얀 제복은 우리 가족은 물론 마을의 설렘이었다. 대학생도 귀한 오지 마을, 오빠가 오는 날이면 이웃 마을 언니들까지 괜히 우리 집 앞을 서성대곤 했다. 그런 오빠가 다녀갈 때마다 나는 말로만 듣던 먼 바다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갔다. 바닷가에도 바지락이며 조개 농사를 짓는 어촌이 있다는 것도, 태평양 한가운데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와 진짜 배를 넘기도 한다는 것도, 그 파도를 헤치며 오늘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멋진 바다 사나이들이 있다는 것도. 나에겐 모두 처음 듣는 특별한 세상 이야기였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렵던 시절 우리 가족을 일으켜 준 바다의 신은 누구였던가? 용왕인가? 엄마의 부뚜막 조왕신인가? 황금 갈기를 휘날리며 바다를 달린다는 포세이돈인가?‘그때 오빠가 잘못되었더라면?’‘바다가 그를 안아주지 않았다면?’ 끔찍한 일이다. 우리 가족은 또다시 풍비박산이 났을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물려 흔들리고 떠밀려가던 우리 가족을 포근하게 껴안아 준 바다. 그러기에 나는 바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포기할 뻔했던 오빠의 젊음을 토닥여 주고 일평생 안아 준 바다. 망망대해 가도 가도 끝없던 바다 위에서 꿋꿋이 견디며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 온 오빠. 그의 고독한 삶을 존경하는 만큼 나는 바다를 흠모한다.
전화가 왔다. 바다와 평생을 산, 갓 퇴직한 오빠의 초대 전화다.
“동생아, 우리 이사한 집에 놀러 올래? 거실에서 바다가 보여.”
나는 눈물이 났다. 오빠는 언제까지나 바다와 함께 살고 싶은가보다. 보은(報恩)이리라. 절망이었을 때 그를 안아준 바다에 대한.
수화기 너머엔 바다가 있다. 작은 배 한 척 노을 속 바다 위에 평화롭게 떠 갈 것이다. 일출이 눈부시다면 일몰은 아름답다 했던가? 오빠의 해넘이 풍경도 그랬으면 좋겠다.
/ 《좋은 수필》에서 옮겨 적음 202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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