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따라지’는 있어도 ‘싸가지’는 없다
존 F 케네디는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전쟁은 인류 최악의 범죄행위다. 수백 수천년을 쌓아온 문화와 문명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한다. 그처럼 참혹한 전쟁을 우리는 참 많이 겪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말 중에는 전쟁의 아픔이 배어 있는 말이 적지 않다. ‘골로 가다’도 그중 하나다.
‘골로 가다’는 ‘고택골로 간다’의 준말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고택(高宅)골’은 현재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해당하는 마을의 옛 이름으로, 예전에 이곳에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많아 ‘죽다’의 속된 말로 ‘골로 가다’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유래설이다. 하지만 ‘골로 가다’는 6·25전쟁 이후 더욱 널리 쓰이게 된다. 6·25전쟁 때 인민군이 양민과 포로들을 골짜기로 끌고 가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산골짜기, 즉 ‘골’로 끌려간다는 표현이 죽음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예전부터 쓰이던 말이지만 6·25전쟁 때문에 더욱 확산된 말에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속되게 가리키는 ‘삼팔따라지’도 있다. ‘따라지’는 본래 “왜소한 사람”을 뜻하던 말로, 노름 중 하나인 ‘섰다’판(두 장씩 나누어 가진 화투장을 남과 견줘 가장 높은 끗수를 가진 사람이 판돈을 가져 감)에서 ‘사칠따라지’ ‘삼팔따라지’ 따위처럼 쓰였다. 둘의 합이 한 끗밖에 되지 않아 거의 상대를 이길 수 없는 초라한 끗발이다.
그런데 이 ‘삼팔따라지’를 6·25전쟁 때 홀로 또는 자기 가족끼리만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스스로를 한탄하는 단어로 쓰기 시작했다. 삼팔따라지의 삼팔에서 ‘38선’을 떠올린 듯하다.
한편 우리말에는 바가지(박+아지), 모가지(목+아지), 따라지(딸+아지) 등처럼 어떤 말에 ‘-아지’가 붙어 변한 말이 많은데, “씨·줄기·뿌리 따위에서 처음 돋아나는 어린잎이나 줄기”를 뜻하는 ‘싹’에 ‘-아지’가 붙은 꼴인 ‘싸가지’는 표준어 대접을 못 받고 있다. 바른말은 ‘싹수’다. (글=엄민용 기자)
[출처] 경향신문 2021-06-07
/ 2021.10.2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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