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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인절미' 조선 인조와 충남 공주의 인연 깊어 (2021.10.24)

푸레택 2021. 10. 24. 21:58

[우리말] 인절미, 조선 인조와 충남 공주의 인연 깊어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55. 인절미

찹쌀이나 찹쌀가루를 시루에 쪄 내어 떡메로 친 다음, 성냥갑만 하게 썰어 고물을 묻힌 떡을 인절미라 하는데 한자어로는 인절병引絶餠이라고도 표기한다.

여기 한자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인절미는 찹쌀을 원료로 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찰지어서 약간 잡아당겨서 썰은 떡이라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이 인절미의 내력에 대하여 공주지역에는 인조대왕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① 조선조 17대 임금 인조대왕은 당시에 일어난 ‘이괄의 난’을 피하기 위하여 공주로 피난을 하였다. 인조대왕은 피난길에 초라한 민간복장으로 공주군 유구를 거쳐 우성 땅에 이르러 어느 동네에 들러 노씨 성을 가진 집에 묵게 되었는데 마침 그 집은 가세가 넉넉하였다.

주인 노씨가 보니 그 평복의 나그네는 비록 행색은 초라하지만, 예사 어른이 아닌 듯싶어 따뜻한 방에다 편안히 모시고 풍성한 음식으로 극진히 대접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조대왕께서 공주로 가기 위해 금강을 건널 때도 배편을 제공하는 등 정성껏 모셔드렸다. 후한 대접을 받은 왕은 그 뒤 그 노씨네가 사는 마을을 임금을 도운 마을이라 하여 ‘도울 조助자와 임금 왕王자를 써서 조왕동助王洞’이라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의 충남 공주군 우성면 조왕동은 그래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② 인조대왕이 공주의 공산성 안의 쌍수정에 도착했을 때는 겨울인지라 몹시 추웠을 뿐 아니라 배마저 고팠다. 그때 한 신하가 민가에서 진상한 별식을 한 쟁반 가져다 상감께 바쳤다. 임금은 시장한 김에 맛을 보니 콩고물을 묻힌 떡인데 맛이 쫄깃쫄깃하고 보들보들하여 단숨에 거의 한 쟁반을 다 들었다.

떡을 맛있게 드시고 난 뒤 인조대왕은 그것을 가져온 신하에게 “도대체 이렇게 맛있는 떡의 이름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신하는 자세히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 떡을 진상한 백성이 누구냐고 왕이 재차 물었다. 신하는 그 진상한 사람의 이름은 모르고 다만 인근에 사는 성이 임가라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임금은 그렇다면 이처럼 맛있는 떡의 이름을 지금부터 임씨네가 썰어서 만든 떡이니 ‘임절미’라고 부르자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임절미로 명명된 떡의 이름이 뒤에 차츰 변하여 지금처럼 ‘인절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글=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출처: 중도일보)

/ 2021.10.2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