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어도 11월 하순에는 / 김광일
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엔 없다. 그보다 난 기억을 믿지 않는다. 기억도 날 믿지 않을 것이다.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는 서로 배반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기억이 날 배반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지난 사십 몇 년 간의 세월을 지내온 것으로 믿어지는 기억의 총합이겠지만 그 기억은 언제든 나를 배반할 준비가 돼 있었다. 한때 사랑했던 기억도, 절망했던 기억도 청회색 살의殺意의 기억도 매우 불분명한 형태로 나를 따라오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에 없다. 다만 파편화되고 변색된 기억 조각들의 축조물 위에 배반을 게임처럼 설정하고 사귄 관계는 결코 배반의 쓰라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만 남아 있다. 얼핏 말장난 같지만 우리 선대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령, 내가 어렸을 때 술청에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가 주모가 아버지 앞에서 이런 육자배기를 털어놓는 과정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푹푹 질렀나 네가 먼저 살자고 엉덩이 팍팍 질렀지.
코흘리개(나는 사실은 코를 흘리고 다닌 적이 없다. 집단 무의식이나 관습적인 추억이 심어놓은 저 기억의 가증스러운 허구성이라니!)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옆구리 푹푹을 입에 올렸다가 호된 매를 맞았다. 이것 역시 기억에 흐릿하다. 난 기억을 믿을 수가 없다. 믿을 수 없는 그 기억이 나에게 끊임없이 퍼올리고 있는 과거는 매우 거추장스럽다.
그들은 장래에 대한 약속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과거와 기억에 대한 배반을 상정하고 통정을 해도 했을 것이다. 배반을 하더라도 그것을 배반이라 말하지 말자고,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어도 그들은 이미 알았을 것이다. 배반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에는 없지만 싸락싸락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마당에 떨어지고 있었다는 영상이 아버지의 어깨 뒤로 펼쳐 있다. 우리는 4남 1녀로 총 일곱 식구였다. 누나가 맏이였고, 그 밑으로 남동생이 넷이었다. 나는 누나와 띠동갑 막내였다.
누나는 고등학교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무렵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가출을 했다. 누나의 가출은 희생정신과 낭만주의의 결합이라고 나는 추억하고 있지만 누나가 당대의 전 인생을 걸었다는 점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가출의 명분은 돈이었다. 돈을 벌어야 해. 아버지 봉급으로 너희들(남동생들)을 대학까지 가르칠 수 없잖아.
행랑채 기왓장 위로 대추알이 도르르 굴러 떨어지던 어느 날 오후 외동딸이 집안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한 아버지는 아내와 아들들이 있는 자리에서 거의 독백에 가까운 어조의 단 한마디로 자신의 심정을 압축했다. 못된 년, 멕여도 내가 멕이고 굶겨도 내가 굶겨. 지깐년이 뭘하겠다고.
누나는 대전으로 갔다고 했다. 대전에는 먼 일가가 조그만 방직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곳에 가서 취직을 부탁했을 것이라는 게 어머니와 큰형이 수집한 정보였다. 아버지는 오버코트를 몸에 두르고 중절모를 꺼내 쓰셨다. 평소에는 잘 입지 않던 옷이었다.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 옷이었다. 아버지가 차비를 챙기고 검정색 구두를 싣고 나무로 만든 대문을 열고 나갈 때 그 곳까지 따라간 어머니가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라고 말했으나 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고 휑하니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골목을 빠져나가는 아버지의 등은 무척 많은 대답과 질책을 하고 있었다. 당신, 딸년 하나 간수 못해서 어찌 집안 살림을 한다 하시오? 이게 얼마나 낯부끄러운 집안 망신이고 동네 망신인지 알기나 하시오? 만에 하나 그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지기라도 했으면 어쩔 것이오? 아니 긴 말 할 것도 없소 다 내 탓이오.
아버지는 내가 상상으로 꾸며낸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말을 길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꼭 필요한 말의 절반만 하셨다. 나머지 절반은 상대편이 유추하면 됐다.
아버지를 보내고 대문을 잠그고 들어오다가 어머니는 마당 한가운데 우물 옆에 있던 대추나무 가지를 손으로 붙잡았다. 이미 잎을 모두 떨구고 서 있는 대추나무를 붙잡고 어머니는 뭐라고 중얼거렸다. 마루에 서서 물끄러미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막내를 의식했는지 어머니는 잿빛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그때 어머니가 눈으로 눈물을 삼키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 날 눈이 왔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눈이 내린 게 그 다음날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하룻밤을 주무시고 돌아오셨다. 해거름이었다. 초겨울이나 늦가을, 그러니까 그해 11월 하순쯤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물론이고 형들도 겉으론 아무런 동요 없이 그날 주어진 일정표 대로 자신들의 생활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온몸에 붙은 모든 신경다발은 대문에 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대문이 소리나게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그 뒤를 죄인처럼 손목을 잡힌 누나와 함께 걸어 들어오셨다.
대문 소리에 방에서 형들이 뛰쳐나온 것보다 부엌에서 저녁을 짓던 어머니가 더 빨리 마당으로 돌아 나왔다. 한동안 말이 없는 무성영화 같은 장면이 이어졌다. 형제들은 평소처럼 아버지 오셨습니까,라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 아들들과 아내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딸의 손목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토방 위에 아버지가 벗어놓은 구두도,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며 누나가 벗어놓은 운동화도 겉모양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으나, 신발의 분위기는 참 가지런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일이 잘 마무리되겠구나라는 마음이 가득 피어올랐다.
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에는 없지만, 밥을 짓기 위해 불을 땐 방안은 훈기가 돌았다. 어머니와 형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마무리’를 보기 위해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누나의 볼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행색은 그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는 딸의 손목을 마치 뿌리치듯 하면서 아랫목에 앉혔다. 그리고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네 이년, 넌 이제 내 딸이 아니다. 나가라. 집에서 썩 나가.
말하자면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문학을 느꼈다. 아하,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밤새 고생을 해서 데려온 딸을, 차가운 바깥바람에 퉁퉁해진 얼굴을 녹이라고 아랫목에 앉히면서까지 속마음을 숨기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문학이구나.
실컷 데려온 딸에게 이제 이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치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셰익스피어였다. 네 이년, 넌 이제 내 딸이 아니다. 나가라. 집에서 썩 나가. 그 말을 듣고 있었던 누나의 동생들과 어머니의 마음은 점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조마조마 졸여왔던 마음의 먹줄을 튕길 필요 없이 그냥 천천히 먹통에 되감으면 될 것이었다. 누나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집을 나가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며, 어머니는 다시 머릿수건을 쓰고 부엌으로 들어가 아무 말 없이 저녁을 지을 것이며, 누나도 안방 아랫목에서 잠시 몸을 녹인 후에 행랑채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옮겨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상차림을 도울 것이다.
그 날 잠시라도 집을 나간 사람은 다름아니라 아버지였다.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친 다음, 딸과 아들들과 아내가 동작 그만! 이라는 군대식 명령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 멈춘 상태로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을 두어 호흡의 시간 동안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가셨으며, 다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다. 틀림없이 아버지는 오늘 저녁에도 ‘옆구리 푹푹’ 집에 가서 몇 잔을 기울일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문학이 에필로그를 쓰는 방법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 에필로그를 집안 식구들은 들을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단 나만 빼놓고 말이다. 나는 식구들이 식사를 마친 후 어머니의 명령을 받을 것이다. 가서 아버지를 모셔 오너라. 나는 그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하듯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나 밖으로 나갈 것이다. 평소 같으면, 왜 만날 나만 보내는 것이냐, 형들도 있지 않으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어머니의 명령을 늦추거나 뒤집으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지만, 그날 저녁은 달랐다. 나는 한달음에 아버지가 계신 술청으로 가서 아버지의 동태를 살폈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서 몇 마디를 얻어들었을 술집 여인의 푸념 섞인 타령들을 통해 아버지 문학의 에필로그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튼 11월이었다.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 보는 서글픈 이 밤 노랫가락은 술청을 채우고 있고 아버지는 고개를 반쯤 기울인 채 말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전생애를 통해 단 한번도 무능한 적이 없으셨다. 언제나 꼿꼿하셨고, 언제나 부지런하셨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셨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어려운 일을 울러메셨다. 콧날은 늘 서늘하셨고, 턱수염이 검어지도록 내버려두는 법이 없으셨다.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적당한 각도로 이마를 숙이시고 항상 생각을 하셨다.
그런데도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로 하여금 가출을 결심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시절을 큰 걸음으로 앞질러 걷고 싶은 욕망이었을까? 처자식들에게 안분지족을 가르치지 못한 회한이 엄습하고 있었을까? 요동치는 격변의 1960년대에 나이 40대 중반을 넘기고 계셨던 아버지는 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집을 나간 큰딸을 찾으러 낯선 도시의 기차 정거장에 내려섰을 때 가슴에 와 닿았던 11월 하순의 찬바람이 얼마나 시려우셨을까?
나는 물론이었고 형들까지 합세한 우리는, 아니 어머니까지도 초미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큰누나를 찾아낸 그 전날 밤부터 그 다음날 오전, 그리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 두 사람은 도대체 무슨 대화를 했을까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문학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해질 무렵 돌아온 아버지가 누나를 아랫목에 팽개치듯 하면서 ‘썩 집을 나가라’고 하신 분위기가 다소 과장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버지는 누나를 찾아내자마자 위아래 옷차림과 얼굴 표정을 살폈을 것이고, 근처에 있는 여관에나 들어가 방을 잡았을 것이며, 다시 누나를 데리고 어떤 음식점에라도 가서 우선 뭣이라도 먹였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얘기는 아니더라도 다소간 몇 마디의 말씀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누나의 일기를 뒤졌다. 우리 형제들은 누나가 그 무렵 일기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간혹 그 세계를 훔쳐보기 위해 특공조特功組를 조직하곤 했었다. 조금 조심스럽긴 했으나, 우리 형제들보다 훨씬 성숙해져버린 누나의 새로운 세계를 알기 위해서라도 낯선 도시에서의 며칠, 그리고 아버지와 1박 2일을 보내면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세밀한 행적조사가 필요했다. 누나가 손때를 묻힌 《말테의 수기》에 어떤 쪽지글 같은 것을 남겨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둘째형의 코치에 따라 행동대원인 내가 이것저것 들춰보았지만 끝내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어머니 나름으로 부엌에서 여러 가지 작전을 세워 누나의 입을 열어보려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그럴수록 우리는 점점 상상의 나래만 퍼득일 수밖에 없었고, 안달이 나서 못 견딜 지경이 돼갔으나, 어떤 고비를 넘으니 희한하게도 점차 시들해졌다. 철딱서니없는 사내들이란 그랬다.
그 때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머리 풀고 슬피 울던 시집간 누나의 독백에서 어떤 단서를 찾으려 해보았으나 그나마도 실패하고 말았다. 누나가 독백처럼 몇 마디 말을 했으나 워낙 설움이 큰 상태에서 눈물까지 어룽진 딸꾹질 발음이었기 때문에 알아듣기엔 너무 불명확했다.
이제 또 11월이 오고 있다. 11월만 오면 아버지의 문학이 생각나서 가슴이 감전된 듯 느닷없는 전압을 느끼곤 하지만, 누나는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다만 내가 이제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됐다.
만약 내 큰아들이 집안을 건사한다는 명목으로 가출을 한다면, 나도 그 아이를 찾으러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를 찾아낸 순간, 말에 앞서 그 아이의 행색을 살필 것이다. 눈동자는 여전히 맑은지, 그리고 이마는 여전히 거만하지도 비겁하지도 않은 각도로 사색에 잠겨 있는지를 확인하고 일단은 안도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제는 누나를 설득해서 그 날의 대화를 털어놓게 한다는 것이 왠지 부당한 요구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저 내 큰아이가 가출했다가 다시 돌아오게 됐을 때 그 아이에게 나는 무슨 말을 들려줄 것인지, 내 가슴에 물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내 가슴에서 우러난 그 말이 아버지가 누나에게 했던 말과 똑 닮지 않았을까 짐작하며 ‘11월이면 대추나무에서 들려온다는’ 집안의 전설을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만약 올 11월 하순에 눈이라도 뿌린다면, 누나에게 대전행 열차 여행을 제안해볼까 생각중이다. 그 때 눈이 왔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글=김광일 수필가
/ 2021.10.19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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