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나무노트]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떡갈나무' (2021.10.10)

푸레택 2021. 10. 10. 21:45

◇ 벌레 먹어서 더 예쁜 나무 떡갈나무

가을비가 소리없이 내린다. 서울식물원 산책길에 나섰다. 초지원에서 온 잎이 벌레의 먹이가 되어준 떡갈나무를 보았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는 이생진 시인의 마음과 공감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뭇잎에 난 구멍은 나뭇잎이 자신의 것을 베풀어 다른 존재를 먹여살린 아름다운 흔적이다. 나도 시인이 되어 벌레구멍이 뚤린 떡갈나무 잎 구멍으로 하늘이 바라보았다. 정말 예쁘다. 상처난 구멍이 별처럼 아름답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비단 떡갈나무에만 있지 않다. 너도 나도 온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와 흔적이 남아있다. 온 잎을 벌레에게 내준 상처난 떡갈나무를 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봉사와 희생, 섬김과 헌신으로 남을 위해 살아가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 내 몸 하나, 내 삶 하나 추스리기 힘든 시절. 때로는 떨어진 낙엽 하나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가을은 정녕 상념의 계절인가, 사색의 계절인가.


사진=2021.10.10(일) 서울식물원

■ 벌레 먹은 나뭇잎 / 이생진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 2021.10.10 옮겨 적음


https://youtu.be/ojC7sDMbcP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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