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2021노벨상] 벽 허문 지구과학, 박해 피한 이민자 수상자들 (2021.10.08)

푸레택 2021. 10. 8. 22:47

[2021노벨상] 벽 허문 지구과학, 박해 피한 이민자 수상자들.. 올해도 드라마는 있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 이모저모

△2021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생리학과 교수(왼쪽),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신경과학과 교수.아뎀 파타푸티언 트위터 캡쳐

이달 4일 노벨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사흘간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올해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오랜 기간 인정 받지 못했지만 단기간내 백신 개발의 혁신을 이룬 mRNA(메신저리보핵산)기술의 개척자들의 생리의학상, 화학상 수상 가능성이 일찍부터 제기됐다. 비록 코로나19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이들이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올해 노벨상도 풍성한 뒷이야깃거리가 쏟아졌다.

● 박해 피해 정착한 이민자 출신 과학자들 노벨상 영예를 안다

올해 생리의학상은 오랜 기간 미스터리이던 인간이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인 촉각과 통증의 비밀을 밝혀낸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샌프란시스코) 교수와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 교수에게 돌아갔다.

두 사람은 사람 몸의 촉각 수용체 분자를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게 됐다. 핵심 업적은 캡사이신 분자가 특정 수용체(TRPV1)에 붙으면 전기신호가 신경계를 타고 뇌까지 전해지면서 42도 이상 뜨거움과 아픔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고추의 매운맛이 '뜨거운 아픔'이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셈이다. 호기심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일상의 궁금증에서 놀라운 과학적 발견을 이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들이 더 주목받는 건 전쟁과 핍박을 피해 기회의 땅을 찾은 이민자 출신이란 점이다. 파타푸티언 교수는 1967년 레바논 베이루트에 살던 아르메니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로부터 8년 뒤 레바논 내전이 일어났고, 그는 다행히 중립 집단으로 구분돼 학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의대 재학 중 무장세력에 잡혔다가 벗어난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그와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줄리어스 교수도 박해를 피해 탈출한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줄리어스 교수의 조부모는 1900년대초 소수 민족을 박해하던 러시아를 떠나 미국에 정착했다.

이주 후 미국 사회에 정착한 두 사람의 연구로 인간 오감의 밝힌 연구는 한층 더 완성에 가까워졌다. 황선욱 고려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는 "빛의 수용체(로돕신)을 발견해 시각 원리를 밝힌 성과가 1967년 가장 먼저 받았고, 2004년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 수용체들을를 발견한 성과가 받은 데 이어 이번엔 촉각 연구가 선정됐다"며 "오감 중 시각과 후각, 촉각 관련 연구가 순서대로 노벨상을 받았고 청각과 미각이 남았다"고 설명했다.

● 지구과학도 노벨물리학상 진입

 

2021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BBVA재단 제공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물리, 화학이라는 기초과학을 추구하는 노벨상의 단단한 벽을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르조 파리시 이탈리아 사피엔자대 교수와 함께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대기및해양과학프로그램 교수와 클라우스 하셀만 전 독일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 소장은 물리학 이론을 기반으로 기후변화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한 지구과학 분야의 선구자들이다. 특히 마나베 교수 역시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미국 기상청에서 연구를 하다가 1975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이민자 출신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지구온난화 개념이 없었던 1960~1970년 당시 기후변화 추이와 원인, 특히 인간 활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냈다. 마나베 교수와 동료들은 1969년 구름이 발생할 때 에너지 변화, 지표에서 성층권까지 기온 변화 등 물리적 특성을 활용해 기후를 예측하는 수리모델을 최초로 개발했다.

1969년에 처음 공개된 기후모델을 기반으로 다양한 후속 모델이 개발되면서 전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벨물리학상 역사에서 지구 과학 분야가 수상한 사례는 없다. 과학계는 노벨상위원회가 그만큼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서 기초과학의 역할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학부 교수는 “이번 수상자 발표가 전 세계 대기과학과 해양학, 지구과학 연구자들에게 동기부여가 많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화학상 수상자들은 '지한파'

 

2021 노벨화학상을 받은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네이처화학지 논문 게재 승인 후 축하 자리를 함께 한 배한용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 배한용 제공

올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 프린스턴대 화학과 교수는 분자를 합성할 때 쓰는 유기촉매를 개발해 다양한 의약품 개발이 가능하도록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들의 연구로 제약사들과 연구자들은 더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의약품 설계가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최근 10여년 사이에 정통화학 분야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수상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두 수상자의 또 다른 공통점은 공교롭게도 한국과 인연이 깊다는 점이다. 맥밀런 교수는 과거 프린스턴대에서 동료 교수로 지낸 이철범 서울대 화학부 교수의 초청으로 2016~2017년 서울대 석좌교수를 맡아 대학원생을 가르쳤다. 두 사람은 2018년에는 광촉매에 대해 연구한 성과를 국제학술지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했다. 리스트 교수도 2008년 성균관대 자연과학부 초청으로 방문교수를 했다. 당시 학부생이던 배한용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는 특강을 듣고 감명받아 ‘훗날 반드시 함께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고 실제 이후 리스트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두 사람은 지난 2월 향수 원료인 베티버 오일에서 향이 나는 원리를 유기합성으로 밝힌 공동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하는 등 공동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상당수가 사제 관계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보면 향후 한국의 수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2년째 이어지면서 코로나19 백신 중 하나인 mRNA 기술을 개발한 커털린 커리코 독일 바이오앤테크 수석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의 수상 가능성도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들이 노벨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지만 상을 수상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아직 끝나지 않은 데다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백신 효과가 다소 떨어지면서 좀 더 면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노벨상 수상 업적들은 대부분 20년 이상 인정받은 경우가 많아 mRNA 백신 연구 역시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입증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글=이정아 기자,서동준 기자

[출처] 동아사이언스

/ 2021.10.08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