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노벨 생리의학상 해설]
■ 촉각수용체 발견, 만성통증 치료 시대 올까?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우리 몸의 촉각 수용체 분자들을 규명한 2명의 과학자에게 수여됐다.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샌프란시스코) 교수와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 교수가 그 주인공들이다. 필자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파타푸티언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하며 9편의 논문 작업을 함께 하기도 했다.
○ 감각이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둘러싼 주변의 변화, 그리고 몸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변화를 비롯한 환경을 잘 감지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유리한 환경을 잘 파악한 생명체들은 오늘날까지 생존하며 지구에서 번성하고 있다. 무언가를 감지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가 현재 갖추고 있는 감각을 통해 유추하면 될 것이다. 척추동물들의 경우 바로 시청후미촉이라 줄여 부르기도 하는 바로 ‘오감’이다.
원거리, 근거리 등 여러 위치에서 벌어지는 환경 변화를 우리는 오감을 통해 파악한다. 심지어 우리 몸 속의 변화(예를 들어 복통, 발열), 몸 각 부위의 위치나 이동(예를 들어 균형있게 걷기)까지도 오감이 관장한다. 몸 자체의 변화를 감지하는 감각은 오래 전엔 오감 중 촉각의 일종으로 배웠지만, 최근 의학 교육에서는 내장감각, 고유감각 등으로 따로 분류해 배우는 추세다.
우리에게 친숙한 오감을 환경변화에 따라 어떻게 작동시킬까. 일단 감각기관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시각에는 눈, 청각에는 귀, 후각에는 코, 미각에는 혀, 촉각에는 피부다. 뇌와도 연결되어 있는 감각신경들이 감각 기관에 분포하고 있다. 이들이 전기신호를 보내 우리 뇌는 환경을 인식한다. 그에 따라 먹고 싶은 과일을 찾아내기도, 맹수의 포효를 듣는다면 불안해하기도 한다. 뜨거운 냄비에 무심코 손을 댔다가 피하기도, 쓰담쓰담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 분자 수준의 감각 원리
이런 감각을 담당하는 감각기관과 그에 분포된 감각신경은 어떻게 환경 변화를 감지해 뇌로 전기신호를 보낼까. 과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궁금해 해왔던 질문이다. 지금도 모르는 것들 투성이지만 현대 생리학의 발전에 힘입어 감각신경에 존재하면서 주변 환경의 변화를 전기신호로 바꾸는 분자들의 실체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빛(시각)을 감지하는 망막의 로돕신 분자, 냄새(후각)를 감지하는 후각상피의 후각수용체 분자에 관한 연구는 이미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각각 1967년, 2004년). 청각, 미각, 촉각은 어떨까. 달팽이관의 기능 규명으로 1961년 이미 노벨상을 한차례 수상한 바 있는 청각 분야는 예상보다 다양한 분자들이 감지에 참여하기 때문에 서로 어떻게 얼키고 설켰는지 밝혀내느라 과학자들이 고전하는 분야 중 하나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을 빠른 시일 내에 예상하기는 힘들다.
그에 비해 촉각과 미각은 분자들을 꽤나 밝혀낸 편이다. 대체로 촉각의 감지와 전기신호 변환은 주로 특별한 종류의 이온 채널들이, 미각의 경우는 G-단백질 수용체들이 주인공이다. 과학자들은 G-단백질 수용체 자체는 전기신호를 일으키지 못하니, 전기를 일으키는 파트너 이온채널들도 함께 밝혀나가는 중이다.
○ 촉각 수용체 분자의 발견
1997년 10월 마지막주 주말 필자가 박사과정 대학원생이었을 때 지도교수(오우택 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장)께서 감사하게도 3만 명의 뇌과학자가 참석하는 세계 최대 뇌학회인 연례 신경과학회에 함께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한 번 참석한 적이 있어익숙한 느낌으로 학회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과학자들이 학회장 안팎에서 삼삼오오 모여 웅성웅성대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곧 이유를 알게 됐는데 바로 며칠 전인 1997년 10월 2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한 ‘캡사이신 수용체(현재 명칭 TRPV1) 발견 논문’이 핫이슈인 것이었다. 학회 내내 수군대던 이야기는 과연 진짜 잘 발견한 걸까, 후속 연구도 하고 있다는데 계속 발견이 이루어질 촉각수용체들은 어떤 것일까 기대된다 등등 부러움과 찬사와 시기 등이 뒤섞인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현이 잘 되는 제대로 된 발견이었고 곧이어 10년여를 두고 줄줄이 촉각 수용체들이 발견됐다. 이들 모두 이온채널이고, 이온채널은 단백질이다. 단백질을 코딩하는 유전자 정보가 휴먼 게놈 프로젝트 등 각종 게놈 프로젝트에 힘입어 많이 늘어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덕도 좀 봤다고 봐도 될 것이다.
○ TRPV1, 뜨거운 온도 감지, 캡사이신 감지 수용체
TRPV1(Transient Receptor Potential Vanilloid subtype 1)은 캡사이신도 감지하고 열(43도 이상)도 감지하는 촉각수용체다. TRPV1 분자에 캡사이신이 붙거나, TRPV1 분자를 열로 뜨겁게 달구면 TRPV1의 분자구조가 변형되면서 ‘열린다’. 이온’채널’이기 때문이다. ‘이온통로’라고도 불리는 이온채널은 세포막에 존재해 상황에 따라 통로를 여닫으면서 전기신호를 일으키거나 이온을 수송한다. TRPV1이 열리는 특별한 상황 또는 환경은 캡사이신에 의해, 또는 열에 의해 자극받을 때인 것이다. 고추의 매운 맛이 맛의 일종이라기보다는 열감각을 흉내내는 것이라는 점은 오래 전부터 경험을 통해 일반인들도 짐작하고 있는 터라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TRPV1이라는 이름이 어렵고도 특이한데 이 이름도 무시못할 점이다. 사실 TRP 이온채널들은 TRPV1 뿐만 아니라 수십 개가 있고, 첫 TRP 이온채널은 유전학의 발전을 이끈 초파리 모델동물 분야에서 밝혀졌다. 초파리의 TRP 이온채널이 망가지면 시각장애가 일어나고, 초파리의 시각수용체 세포((photo)receptor)가 일으키는 전기(potential: potential은 전압을 의미한다)가 비정상적으로 짧아진다(transient). 초파리의 로돕신은 TRP과 파트너를 이뤄 빛을 감지하는 전기신호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은 TRP가 아닌 또 다른 종류의 이온채널이 시각을 담당하도록 진화했다. 이 TRP에 속하는 수십 종류의 이온채널들은 몸 곳곳에서 다양한 활약을 하고 있는데, 고추나 캡사이신에 친숙한 일반인들에게도 재미있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 TRP의 한 종류가 TRPV1인 것이다. Vanilloid를 의미하는 V는, 캡사이신이 화학구조 상 바닐린 유사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니셜이다.
○ TRPM8, 차가운 온도 감지, 멘톨 감지 수용체
1980~1990년대 TRPV1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실마리를 찾지 못해 고전하던 무렵,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는 효과적인 실험방법을 써서 그 발견을 실현해 무릎을 탁치게 만들었다. 당시엔 미생물학 분야에선 잘 활용되고 있었으나 뇌과학이나 생리학 분야에서는 생소했던 분자생물학 기법인 ‘익스프레션 클로닝(expression cloning)’ 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이를 통해 굉장히 많은 후보 단백질들을 대상으로 캡사이신을 뿌려서 이온 변동이 있는지 짧은 시간에 탐색할 수 있었다.
이 고효율 기법이 알려지고 나니 이후 연구 경쟁이 더 격화됐다. 게다가 게놈 정보는 더욱 확충돼 생물정보학 기법을 활용해 TRPV1을 템플릿으로 서열이 비슷한 친척 관계의 이온채널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온 촉각 수용체에는 캡사이신 대신 멘톨을 뿌려보면 되는 식이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저온(25도 이하) 수용체 발견은 과학계에서 드물게 이루어지곤 하는 동시 발견이 이뤄졌다. 바로 TRPM8의 발견이다.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의 논문은 ‘네이처’에 2002년 3월 7일 게재됐고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의 논문은 ‘셀(Cell)’지에 2002년 3월 8일에 게재됐다(참고로 학술지 네이처와 셀이 각기 정기적으로 내는 요일을 맞춰서 낸 것일 뿐 하루 차이로 줄리어스가 일찍 발견했다 보긴 힘들다).
두 논문 모두 해당 호의 대표 논문으로 선정돼 저널표지를 다시 한번 장식했다. 네이처는 박하 식물을, 셀은 빙과류를 표지에 실었다. 그 전후로 따뜻한 온도(33도) 촉각 수용체인 TRPV3와 초저온(17도) 촉각 수용체인 TRPA1의 발견도 있었는데 이 역시 경쟁이 치열했고 파타푸티언 교수는 이 둘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각각 2002년 ‘사이언스’, 2003년 ‘셀’에 발표).
○ 파타푸티언 교수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에 참여해 TRPA1 발견에도 기여
당시 파타푸티언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포닥)으로 근무하면서 TRPA1 발견에 기여했던 필자가 느낀 연구실 분위기는 캘리포니아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와 경쟁 연구실보다 앞서야 한다는 텐션이 기묘하게 조화를 이룬 것으로 기억한다. 줄리어스 교수는 당시 이미 경험치가 쌓인 중견급 교수였는데 비해 파타푸티언 교수는 갓 부임한 패기 넘치는 30대 젊은 교수였다.
두서너살 차이 밖에 안나던 전기생리학, 유전학, 세포생물학 등등 다양한 전공의 박사후연구원들과 격의 없는 토론을 나누고 가끔은 소풍도 나가면서 팀워크를 다졌다. 연구실 내에서 뿐 아니라 스크립스 연구소 내, 솔크 연구소, 번햄 연구소,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와의 세미나 교류, 영국과의 국제공동연구 등 소통과 융합도 활발히 했음은 물론이다.
○ Piezo2, 기계적 촉각 수용체
온도 촉각수용체 분자가 2000년 전후에 많이 밝혀진 반면 2010년에 가서야 기계적 촉각 수용체가 발견됐고 이때는 파타푸티언의 단독 발견이었다. ‘Piezo1’, ‘Piezo2’라는 두 형제 분자들 모두가 기계적 자극에 열리는 이온채널임을 밝혔는데, 특히 Piezo2는 촉각을 담당하는 감각신경과 그 근처의 피부층에서 지속적인 기계적 자극을 감지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메르켈 세포에 집중적으로 분포해 활약한다. 두 수용체 중 Piezo2가 실질적인 촉각수용체 분자라고 할 수 있다.
Piezo2는 앞서 언급한 고유감각을 담당하는 신경에도 분포한다. 이를 테면 눈을 감고도 우리 팔다리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파악하는데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역시 기계적 자극의 일종인 혈관, 방광, 폐의 확장이나 수축도 감지한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나오고 있다. Piezo2가 기계적 촉각수용체 중 대표선수인 것은 분명한데 그 능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대표선수급 후보가 미래에 좀 더 발견될 수 있을 것인지, 청각에 있어 소리(공기 음파)도 일종의 기계적 자극이므로 Piezo2가 청각기관의 소리 감지에도 기여할 것인지 등등 감각을 넘나들며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인 뜨거운 상황이기도 하다.
○ 촉각 수용체 연구의 현재와 미래: 탄탄한 기초 연구 위에서 출발하는 응용
2010년대 이후 지금까지 촉각 수용체 연구에서 초저온 전자현미경 연구의 활성화가 기반이 된 구조생물학의 기여도 컸다. 2013년 TRPV1 단백질 구조 규명(네이처 게재)은 줄리어스 교수가 직접, 그리고 2019년 Piezo2 단백질 구조 규명(네이처 게재)은 파타푸티언 교수의 제자가 이뤄냈다. 발견 및 기능 규명에 이어, 몇 옹스트롬 단위의 3차원 단백질 구조까지 밝혀짐으로써 촉각 수용체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볼 수 있다.
한국인 과학자의 활약 또한 무시할 수 없다. TRP 계열 수용체 연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TMC 수용체를 발견한(2013년 네이처 게재) 필자는 물론 파타푸티언 교수 연구실에서 Piezo2의 기능 규명에 앞장선 김성은 박사(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 우승현 박사(다케다 샌디에이고 연구소)의 노고가 대단했다 할 것이다. 필자의 지도교수이면서 줄리어스 교수와 파타푸티언 교수와는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라할 수 있는 오우택 KIST 뇌과학연구소장은 새로운 이온채널 ‘Anoctamin(2008년 네이처 게재)’과 새로운 촉각 수용체 ‘Tentonin(2016년 뉴런 게재)’를 발견하면서 이 분야의 지평을 크게 넓혔으며 후진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이같은 촉각 수용체 연구는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가능성이 약 10년 전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 2011년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는 한국을 방문해 제63회 대한생리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자신의 촉각 수용체 연구성과를 종합한 기조강연도 진행한 바 있다.
앞으로 눈여겨 봐야할 점 중 하나는 최초 게재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1997년, 연구가 시작된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보다도 10여년 전인 1980년대 말을 기점으로 한 세대를 지나온 기초과학 분야의 매진을 통해 다져진 촉각 수용체 연구의 토대 위에서, 이 발견들이 어떻게 응용으로 나아가느냐다.
가장 가깝게는 역시 의약 분야가 되리라 전망한다. 촉각의 극단적인 형태는 통각이며, TRPV1과 같이 우리 몸에 해를 입힐 정도의 과도한 자극을 감지하는 수용체는 통각수용체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들 통각수용체들은 단순히 온도의 높고 낮음만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염증물질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반응해 만성 통증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흔하다. 만성통증은 시장이나 환자 규모로 봤을 때 뇌질환 중 압도적인 세계 1위 질환이다. 질환 전체로 보면 1위인 암 질환 (600억 달러 이상)에 비해 근소한 차의 2위인, 미충족 수요가 매우 큰 만성 통증 질환이고 시장이다. TRPV1과 같은 통각수용체를,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치료기술 개발이 성공하는 경우 환자의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메가톤급 이상의 경제효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스마트폰 등 햅틱 기술 분야에서 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을 어떻게 바라볼지도 흥미롭다. 아마도 TRPV1이나 Piezo2 가 작동하는 생체 원리를 공학자들이 잘 이해한다면, 햅틱 기술도 한 차원 높은 정교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유익한 과학적 구상과 미래 혜택에 대한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은 TRPV1과 Piezo2 발견을 실현시킨 기초과학 및 기초의학의 강력한 잠재력, 과학자들의 줄기찬 노력, 이에 조응한 민관의 끈기 있는 투자 위에서 만이 가능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글=황선욱 고려대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
[출처] 동아사이언스 2021.10.05
/ 2021.10.0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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