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꽃이 진 자리 몽글몽글 솜이 피어나다고?
ㅣ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17 목화
뜨겁던 여름도 이제 한풀 꺾여서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해졌습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날씨가 추워졌다며 따듯한 옷과 두꺼운 이불을 찾게 되겠지요. 요즘에는 무릎 혹은 발목까지 따뜻하게 덮어주는 롱패딩 한 벌이면 추위도 거뜬한데요. 과거에는 뭘 입고 겨울을 났을까요?
따뜻한 이불 하면 떠오르는 솜에서 뽑아낸 실로 옷을 만들어 입거나 옷에 솜을 넣어 입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추위를 막는 데 쓰였던 짐승의 털가죽, 모피보다 싸고 가볍고 좋았지요. 그 솜은 어디서 왔을까요? 바로 식물에서 옵니다. 어떤 식물일까요? 바로 ‘목화’입니다. 8월의 햇볕 아래 피는 많은 꽃 가운데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꽃이기도 하죠.
면화·미영·목면 등으로도 불리는 목화는 영어로 cotton plant라고 합니다. 7월 하순에서 8월 하순에 걸쳐 꽃이 피고, 꽃가루받이가 된 후 안에 있는 종자가 커지면 다래라고 부르는 열매가 됩니다. 다래가 잘 영글면 꼬투리가 벌어지면서 솜이 밖으로 드러나죠. 목화가 솜을 만들어낸 이유는 아마도 씨앗을 보호하거나 이후 씨앗이 여물었을 때 바람을 타고 가거나 물에 떠서도 멀리 이동시키려는 전략일 겁니다.
그렇게 나온 솜은 방직(실을 뽑아 천을 짬)·제면(솜을 만듦) 등을 통해 면사·면직물·솜으로 가공돼 옷이나 이불을 만드는 데 쓰이죠. 그뿐만 아니라 외과 치료에 사용되는 탈지면으로 만들기도 하고 공업용으로도 사용됩니다. 솜을 떼어낸 씨앗으로 기름을 짠 것을 면실유라고 하는데, 식용 샐러드유나 버터·마가린 등의 제조에 사용하죠. 면실유로 비누도 만들어요.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은 사료나 비료로 이용하고 줄기인 목홧대는 제지용 펄프 원료와 땔감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다른 식물들이 그렇듯 목화도 버릴 게 없죠.
목화의 원산지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지만 보통 인도로 알려져 있는데요.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을까요? 아마 1363년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올 때 반출 금지였던 목화씨를 붓두껍에 넣어 숨겨서 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거예요. 그 씨를 장인 정천익과 나눠 심었는데 문익점이 심은 건 다 죽고, 정천익이 심은 것 중 1개만 싹이 나왔대요. 여기서 얻은 씨를 가지고 계속 재배에 노력해 지금의 목화가 되었다고 하죠. 문익점의 손자는 목화로 면포를 짜는 법을 고안했고요. 이들이 3년의 시험 끝에 싹을 틔운 목화시배지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있어요.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온 14세기 이전에도 이 땅에서 면직물을 만들기는 했습니다. 그보다 800년 앞선 면직물인 백첩포가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백제 유적서 출토됐고,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서도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죠. 목화씨를 몰래 가져오기 위해 붓두껍을 사용했단 이야기도 후대에 덧붙여졌다고 해요. 고려 말이나 조선 초 기록에는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왔다거나 얻어 갖고 왔다고 나오죠. 다만 목화의 대량 재배 및 면직물 생산법을 대중에게 널리 보급한 점에서 문익점의 업적이 중요한 건 변하지 않습니다.
목화는 미국의 노예해방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미국 건국 이후 상대적으로 빠르게 노예제도가 사라졌던 북부와 달리 남부에서는 18세기 말부터 목화 농장이 크게 발달하며 인력이 부족해졌거든요. 목화를 재배하는 데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농장주들은 큰돈을 벌게 해주는 목화를 더 많이 재배하기 위해 노예제도를 더 비인간적이고 가혹하게 만들어 조금이라도 더 노예를 부려먹으려고 했죠. 노예제도는 당시 미국의 가장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이후 남북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때 노예해방을 기치로 내걸었던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에서 승리하며 노예제도는 폐지 수순을 밟았죠. 미국의 흑인들에게 목화는 애증의 식물이겠지요?
목화로 옷을 만드는 것을 과거의 일로만 생각할 수 있는데요. 6·25 전쟁으로 전국이 황폐해진 우리나라를 일으키는 데 면방직산업이 큰 역할을 했답니다. 1970년대까지 방직업은 수출의 주역이자 잘 나가는 한국 경제 대표 산업이었죠. 사실 지금도 우리는 목화로 만든 옷을 입고 있습니다. 흔히 면 티셔츠라고 부르는 옷의 ‘면’이 바로 목화를 원료로 했다는 뜻이에요. 면직물이죠. 우리가 즐겨 입는 청바지를 비롯해 대부분의 옷에 면이 들어갑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도 입었던 면으로 만든 옷을 지금도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놀랍지 않나요.
목화뿐 아니라 자연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동식물은 우리의 삶과 관련이 아주 깊습니다. 하나하나 찾아보고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즐겁고 유익한 공부가 될 것입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출처] 중앙일보 2021.08.30
/ 2021.10.06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21083008302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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