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뽕나무 열매는 내가 먹고, 뽕나무 잎은 누에가 먹고
ㅣ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15 뽕나무
슬금슬금 더워지는 날씨.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소중 독자 여러분은 여름이라는 계절의 이름이 ‘열매’에서 비롯된 말이란 걸 아시나요. 옛날에는 ‘열음’이라고 했지요. 그 말처럼 주변을 둘러보면 나무마다 조그만 열매들을 열심히 매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름이 깊어지면서 그 열매들을 열심히 살찌우는 게 식물의 삶이에요.
그런데 열매는 식물의 종류에 따라 익어가는 시간이 다릅니다. 냉이나 민들레 같은 풀은 이미 봄에 열매를 만들어냅니다. 버드나무와 느릅나무 같은 나무들도 5월에 이미 열매를 만들어서 바람에 씨앗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사과나 배, 감처럼 우리가 따서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들은 상대적으로 조금 늦게 익어갑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다른 나무에 비해 일찍 열매가 익는 것들이 있습니다.
동글동글 귀여운 앵두가 일찍 열매를 매달고 뒤이어 보리수와 버찌, 뽕나무도 열매를 매답니다. 특히 버찌와 뽕나무는 어린 열매가 열려 익어갈수록 열매의 색깔이 다양하게 변해서 그 과정 자체도 아름답지요. 뽕나무의 열매를 따로 ‘오디’라고 부릅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이맘때면 어린이들이 산과 들로 나가서 버찌와 오디를 한껏 따 먹느라 입가가 시커멓게 변하곤 했습니다. 여러분도 버찌나 오디를 만나면 하나 따서 입에 넣어보세요. 신 듯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나서 자꾸 더 먹고 싶어질 거예요.
특히, 뽕나무는 ‘누에’가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누에는 누에나방의 애벌레로 뽕나무 잎을 먹고 자라죠. 쑥쑥 커 가면서 모두 4번 잠을 자고 5번 허물을 벗으면서 어른벌레가 될 준비를 합니다. 애벌레는 입에서 실을 내어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서 번데기로 안전하게 지내면서 어른벌레로 탈바꿈하게 되는데요. 이때 만들어진 고치에서 실을 뽑아서 명주실을 만들고, 그 명주실을 이용해서 비단, 즉 견직물을 만들어냅니다. 뽕나무를 이용해 누에를 키워 고치를 생산하는 산업을 양잠이라고 하죠.
옛사람들은 어떻게 벌레가 만든 고치에서 실을 뽑아낼 생각을 했을까요?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중국의 한 여인이 누에고치를 뜨거운 차에 떨어뜨렸는데, 고치에서 실이 풀려나오는 것을 발견하여 실을 뽑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만든 비단은 가볍고 부드러워 최고급 원단으로 주목받았어요. 중국에서만 생산되던 비단은 우여곡절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양잠이 시작된 시기는 고조선(古朝鮮) 시대로 기록되어 있어요. 백제 무령왕릉에서도 견직물 조각이 나왔죠. 견직물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특히 고려에서 생산한 라(羅)는 원나라에서 공물로 요구했을 정도로 좋은 품질로 유명했어요. 조선시대에는 역대 왕후가 궁중에서 누에를 치고 관련 서적도 간행해 양잠 기술을 전파했죠. 그렇게 오래전부터 누에를 길러 비단을 짰으니 뽕나무가 우리 주변에 흔하게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뽕나무와 관련된 사자성어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어요. 풀어보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보게 변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고 많은 것 중에서 하필 왜 뽕나무밭이 바다가 되었다고 했을까요? 그만큼 당시에 뽕나무밭이 많아서, 혹은 뽕나무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중국에서 처음 비단을 만들었을 때, 다른 나라에는 양잠에 대해 알려주지 않으려 했어요. 견직물이 누에고치에서 나온 실로 만들어지는 것을 전혀 몰랐던 서양에서는 특히 최고급 직물·의류로 취급받아 아주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됐습니다. 견직물을 비롯한 무역을 위해 개척한 중국에서 로마까지 이어지는 무역로를 비단길, 이른바 실크로드(silk road)라고 하죠. 여러 가지 무역을 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경제와 문화, 정치가 교류를 하게 됐고요. 그러면서 서로 영향을 받아 같이 발전하게 됩니다. 뽕나무 한 그루를 보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야기를 함께 상상하면 더 재미있죠.
괴테는 “로마는 육체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디 로마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도 그렇고, 뽕나무도 그렇고, 우리 가족도 그렇고 나 자신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겉에 드러나는 모습만이 아니라 내면에 갖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보면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중앙일보 2021.06.14
/ 2021.10.0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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