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우리집 앞 나무는 생일이 언제일까?
ㅣ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12 봄맞이
3월이 되더니 며칠째 푸근한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완연한 봄이 온 듯해요. 마른 가지 끝 겨울눈에서도 싹이 나오고, 발밑에서 눈에 잘 띄지 않던 작은 풀들도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워냅니다. 개구리나 뱀처럼 겨울잠을 자던 여러 동물들도 잠에서 깨어나고요. 자연의 생명체들은 어떻게 봄이 온 것을 아는 걸까요? 정말 신기합니다.
자신이 세상에 나와야 할 때를 알고 나오는 식물들은 특히 더욱 신기해요. 소중 독자 여러분은 일 년 열두 달 중 어느 달에 생일이 있나요? 사람들은 태어난 날인 생일을 중요시하죠.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도 생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물만 생일이 있고 식물에겐 없을까요? 생명체이니 식물도 생일이 있을 겁니다. 그럼 언제를 생일로 봐야 할까요? 꽃이 화려하게 핀 때가 생일일까요? 암술과 수술 사이 꽃가루받이가 된 순간이 생일일까요? 아니면 열매가 성숙해서 씨앗이 익어간 때가 생일일까요?
아마도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나서 땅 위로 올라오는 때를 생일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풀 중에는 1년 이내애 싹이 나서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시드는 한해살이풀이 있어요. 한해살이풀을 보면 씨앗에서 새로 싹이 돋아 나와 땅 위로 고개를 내밀 때가 아마도 생일이 아닐까 싶어요. 여러해살이풀이라면 땅 위의 부분이 죽어도 봄이 되어 다시 땅속뿌리에서 싹이 돋아 나오거나 알뿌리에서 싹이 돋아 나오는 순간을 생일로 보는 게 좋겠지요.
나무는 어떨까요? 나무나 풀 모두 처음 시작은 씨앗입니다. 하지만 몇십몇백 년에 걸쳐 자라는 나무는 풀과 달리 가지 끝에 생장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이 ‘겨울눈’이라고 이전 10회 때 얘기했었죠. 겨울눈에서 잎·줄기·꽃 모두 나와서 또 다른 ‘씨앗’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겨울눈에서 새싹이 나오는 때를 나무의 또 다른 생일로 봐도 좋겠지요. 같은 종류의 나무를 비교했을 때 씨앗에서 싹이 나오는 날짜와 가지 끝 겨울눈에서 싹이 나오는 날짜가 매번 일치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무 수종에 따라 다를 수 있고, 같은 종류 나무라도 그때그때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처음에 땅속에서 새로 올라오는 싹을 관찰하기는 쉽지 않으니 겨울눈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때를 나무의 생일로 하면 좀 더 편할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반려견’이나 ‘반려묘’에 그치지 않고 ‘반려식물’도 유행이라고 합니다. 내가 집에서 키우는 식물의 이름뿐 아니라 생일까지 정해서 챙겨준다면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변의 풀과 나무에도 조금씩 관심을 갖고 다가가서 자세히 관찰하면 낙엽 틈에서 연둣빛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풀이나 단단하게 닫고 있던 겨울눈의 문이 따스한 봄 햇살에 살짝 열려있는 나무를 관찰할 수 있을 겁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식물들은 연둣빛 새싹으로 스스로의 생일을 수줍게 축하합니다. 그 축하 자리에 우리도 함께하면 외로운 생일파티가 되지는 않겠지요.
추운 겨울을 잘 준비해서 새봄을 맞아 싹을 올리거나 잎을 틔우거나 꽃을 내는 식물들을 보면 어떻게 봄이 온 줄 알고 제때 제 삶의 방식에 맞게 나오는지 신비할 따름입니다. 바쁜 하루하루 도심 속의 삶에서 오늘이 며칠인지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지 헛갈리고 어지럽기도 합니다. 그런 때 잠깐 짬을 내서 산책을 하거나 학교 가는 길, 학원 가는 길, 출퇴근 길에 두리번거리며 새봄을 준비하는 식물들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아스팔트나 보도블록 틈을 비집고 돋아난 새싹이나 창문 밖에 겨울눈의 껍질을 벗고 있는 나무를 보면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의 봄은 어떻게 시작할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 하루를 가져보는 것도 삶에 있어 멋스러운 한 장면일 것 같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출처] 중앙일보 2021.03.15
/ 2021.10.02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210315095056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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