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받지 않은 손님 왜가리 /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왜가리는 우리나라, 중국 동부, 몽골에서 여름을 보내고 일본, 태국, 필리핀에서 월동을 하는 여름철새다. 10여년 전만 해도 왜가리를 두루미로 잘못 알고 두루미를 보호하고 있으니 빨리 와서 구조하라며 동물원에 연락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자기 평생에 이렇게 큰 새는 처음 보았다는 호들갑에 미심쩍어하면서도 강원도까지 가 보면 어김없이 왜가리였다.
왜가리는 몸의 길이가 91∼102cm, 날개를 펴면 175∼195cm나 되는 중대형 조류이다 보니, 제대로 두루미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다. 두루미와 왜가리는 몸집이나 형태도 완전히 다르지만, 왜가리와 해오라기류들은 목을 S자로 구부린채 날고 두루미 황새 저어새는 목을 길게 뻗은 채 나는 것이 쉽게 구별되는 특징이다.
서울동물원에는 공식적으로 왜가리가 3마리 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는 몇 마리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왜가리들이 살고 있다. 여름이면 나타나 해양관 지붕에 앉아 있다가 물개가 흘린 생선을 냉큼 채가던 녀석들이 언제부터인지 30m 높이의 큰물새장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아예 눌러앉아 겨울을 보내기 때문이다.
처음 한두 개의 둥지가 생기더니 곧 수십 개로 늘어났다. 무리를 지어 나는 왜가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한 볼거리였다. 문제는 2006년 여름에 장마가 시작되면서 발생했다. 둥지만 틀면 괜찮은데 그 옆에서 볼일까지 보게 되니, 이것들이 장맛비와 함께 큰물새장 안의 연못에 떨어지면서 연못의 물을 부패시켰다. 이제 왜가리는 큰물새장에서 살아가는 두루미와 백조들의 생명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큰물새장 지붕 꼭대기에 있는 왜가리 둥지를 철거해야 했는데 경사가 심한 30m 높이의 그물망 위를 올라간다는 것은 보통 담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전문철거업체도 위험해서 못하겠다는 것이다. 고심을 거듭하다 결국 동물원 식구들이 직접 몸에 밧줄을 걸고 올라가 둥지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왜가리들도 서울동물원 전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큰물새장 지붕을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둥지를 철거하면 며칠 후에 다시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지붕 맨 꼭대기에 밧줄을 달고 아래에서 그 밧줄을 이리 저리 움직여서 둥지를 못 짓게 했다.
다행히 지금은 왜가리들이 큰물새장 건너편 소나무 숲에서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하지만 다시 3월이 되어 둥지를 짓는 시기가 되면 전쟁은 시작될 것이다. 큰물새장 안의 귀한 생명을 지켜내야 하는 사육사와 큰물새장이라는 최상의 입지조건을 포기할 수 없는 왜가리. 이들 간의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글=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출처] 국민일보 2010.02.24
/ 2021.09.19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100224180510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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