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병의 유전성,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사람 세포의 핵에는 46개(2n=46)의 염색체가 간직돼 있으며, 그 안에 생명현상과 일상 활동을 조절해주는 3만개 정도의 유전자(DNA)가 들어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생명의 원천으로 불리는 유전자는 우리의 모습과 성격, 질병에 대한 민감성은 물론 수명에 이르기까지 생명현상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유발되는 질병이 유전질환(또는 유전병)이다.
유전자 이상은 유전자인 DNA의 복제 과정에서의 오류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며, 우리가 주변에서 접하는 여러 가지 화학물질이나 환경 요인들의 영향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질병들과 유전성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부모의 생식세포(정자와 난자)를 통해 물려받은 유전자 이상은 자손에게서 모두 발현되어 나타나고, 유전적 질병은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 대답은 ‘아니요!’이다. 왜냐하면 부모로부터 받은 질병 유발 유전자들은 자손에서 모두 발현되는 것이 아니며, 유전질환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환경요인들에 의한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생긴 유전자 이상이 자신에게는 나타나지 않지만 자손에게는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당뇨병, 암, 심장질환, 동맥경화 같은 질병들뿐만 아니라 꽃가루와 같은 특정 물질에 대한 과민반응(알러지), 전염병에 대한 민감성, 대머리와 탈모 등도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유전성 질환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인슐린의 장애로 나타나는 당뇨병 발생의 유전적 조사에서 부모 모두가 당뇨일 경우 자녀 중 58%, 부모 중 한 사람이 당뇨인 경우 자녀 중 27%, 그리고 부모가 모두 정상일 경우에는 자녀 중 0.87%가 당뇨병 환자로 나타나 당뇨병은 유전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뇨병은 질환 자체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당뇨병에 쉽게 걸리는 체질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당뇨병의 소인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모두 당뇨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당뇨병의 발생에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지만 일상생활에서 당뇨병의 원인에 잘 대비하면 발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뇨병의 비유전적 발병 요인으로는 비만, 정신적인 스트레스, 약물복용, 바이러스 감염, 임신 등을 들 수 있는데, 그중에서 비만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진국들에서 당뇨병의 주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비만에 대해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나서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비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비만 유전자가 발견되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연구 성과는 만성질환인 당뇨병과 비만의 유전적 소인의 사전 예측과 진단은 물론 개인별 맞춤의약 정보 개발 등에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암 발생의 유전성은 어느 정도일까. 암의 발병 조사에서 유방암, 대장암, 췌장암 등의 발생에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정 암이 한 가족 내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인 유전성 암증후군도 보고되고 있다. 대장암은 15~20%가 유전적 소인과 관계가 있으며, 유전성이 아닌 가족력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병 원인의 5~10%가 유전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췌장암의 발병은 흡연이나 고열량, 고콜레스테롤 함유 음식의 선호도와도 관련성이 높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머리나 탈모의 유전성은 어느 정도일까. 대머리 유전의 가능성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대머리인 경우 높게 나타날 수 있다. 20세 남성의 경우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대머리가 아닐 때의 탈모 발생률은 10%이지만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대머리이면 발생률이 35%로 높아진다. 대머리 유발 유전자는 우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대머리의 성향이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대머리가 유전자의 작용뿐만 아니라 호르몬 이상 분비나 나이 또는 스트레스의 작용 등에 의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질환들은 그 원인이 되는 생활태도나 주위 환경을 잘 조절할 경우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건강한 삶을 위해 평소 자신의 생활습관이 올바른지, 주변 환경이 질병 유발물질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글=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서울대 대학원 박사
'[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과학] ‘후성유전’과 삶의 이야기 (2021.08.30) (0) | 2021.08.30 |
---|---|
[생명과학] 시험관 아기들과 함께 하는 삶의 이야기 (2021.08.30) (0) | 2021.08.30 |
[생명과학] 유전자 감식과 DNA 지문 (2021.08.29) (0) | 2021.08.29 |
[생명과학] 유전자가위기술, 어디까지 왔나 (2021.08.29) (0) | 2021.08.29 |
[생명과학] 생명의 설계도, DNA 이야기 (2021.08.29) (0) | 2021.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