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관 아기들과 함께 하는 삶의 이야기 /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최근 영국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로 태어난 아이의 수가 25만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1978년에 영국에서 시험관 아기가 처음 탄생한 이래, 현재 전 세계적으로 시험관 아기의 수는 5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1985년 10월 서울대병원 장윤석 박사팀에 의해 첫 시험관 아기가 탄생한 후 시험관 아기 시술로 태어난 아이들이 많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시험관 아기라고 하면 아기가 시험관에서 자라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할 수도 있지만, 시험관 아기는 정상 임신으로 분만한 아이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험관 아기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과 초기 발생만 시험관에서 진행되고, 그 후에는 정상 아기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자궁 내에서 자라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 시험관 아기는 언제 어떻게 태어났으며, 시험관 아기 시술은 앞으로 인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1977년 영국에서 결혼한 지 9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부부가 그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검사를 받았다. 부부의 정자와 난자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정밀검사를 시행한 결과, 부인에게서 난자가 만들어지는 난소(卵巢)와 수란관 사이에 있는 나팔관이 막혀 있는 이상이 발견됐다. 나팔관이 막혀 있으면 난소에서 배란되는 난자가 수란관으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정자와 만나 수정이 되지 못해 임신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 부부의 불임문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에드워즈(Robert Edwards) 박사와 부인과 전문의사인 스텝토(Patrick Steptoe) 박사에 의해 해결됐다. 그들은 나팔관이 막혀 있는 부인으로부터 배란기에 난소에서 방출되는 성숙한 난자를 채취한 다음, 남편으로부터 정자를 받아내 시험관에서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시험관에서의 수정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수정란의 세포분열도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그들은 수정란의 분열을 통해 만들어진 배반포(胚盤胞; 난할이 끝난 배)를 부인의 자궁에 이식해 임신을 유도했고, 1978년 7월 25일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험관 아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체외수정으로는 사람이 탄생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당시의 관념을 깬 커다란 사건이었다.
여아로 태어난 첫 시험관 아기는 루이스 브라운(Louis Brown)으로 이름 지어졌다. 브라운의 탄생 후 지금까지 많은 불임 부부들로부터 시험관 아기가 태어나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
브라운이 시험관 아기로 탄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성장해 결혼하면 정상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그 우려는 브라운이 26세(2004년)에 결혼을 해서 3년 후인 2007년에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아들을 낳으며 불식되었다. 물론 브라운은 지금도 아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다.
에드워즈 박사는 2010년에 ‘시험관 아기’를 처음 탄생시킨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와 함께 체외수정 기술을 개발한 스텝토 박사는 1988년 사망했기 때문에 죽은 사람에게는 상을 수여하지 않는 노벨상의 관례에 따라 수상 대상에서 제외되고, 에드워즈 박사가 단독으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 것이다.
시험관 아기는 현대 사회에서 심각한 사회 이슈 중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는 불임문제 해결에 청신호가 되고 있지만, 다른 사회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시험관 아기의 출생에도 해결해나가야 할 여러 가지 과제들이 내포돼 있다.
시험관 아기의 출생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용이 쉽지 않으며, 체외수정을 위해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얻을 때 주입하는 호르몬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시험관 내 수정의 성공 확률은 30~40% 정도로 향상됐지만, 수정란을 자궁 내에 성공적으로 착상시키기 위해서는 한 번에 여러 개의 수정란을 주입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쌍둥이의 출생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체외수정 연구의 초기부터 제기되고 있는 불법적인 난자 공여와 매매, 대리모, 배아의 성 감별, 착상 전 유전진단을 통한 맞춤형아기 출생 등의 윤리적 문제들도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글=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서울대 대학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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