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 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코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코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 9월 / 반기룡
오동나무 뻔질나게
포옹하던 매미도 갔다
윙윙거리던 모기도
목청이 낮아졌고
곰팡이 꽃도 흔적이 드물다
어느새 반소매가
긴 팔 셔츠로 둔갑했고
샤워장에도 온수가
그리워지는 때가 되었다
푸른 풀잎이
황톳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메뚜기도 한철이라
뜨겁던 여름 구가하던 보신탕집 문지방도
먼지가 조금씩 쌓인다
플라타너스 그늘이 구멍 뚫린 채
하늘이 푸르디푸르게 보인다
짝짓기에 여념 없는 고추잠자리
바지랑대가 마구 흔들린다
■ 9월의 시 / 문병란
9월이 오면
해변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된다
나무들은 모두
무성한 여름을 벗고
제자리에 돌아와
호올로 선다
누군가 먼길 떠나는 준비를 하는
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
기도를 마친 여인처럼
고개를 떨군다
울타리에 매달려
전별을 고하던 나팔꽃도
때묻은 손수건을 흔들고
플라타너스 넓은 잎들은
무성했던 여름 허영의 옷을 벗는다
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
먼 항구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되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
눈물에 젖는다
/ 2021.08.09 편집 푸레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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