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인생무상] 비군인 노무자로 6.25전쟁에 참전하신 나의 아버지.. 국가유공자 신청 인우보증 유감 (2021.06.28)

푸레택 2021. 6. 28. 10:07

■ 군번 없는 비군인 노무자로 6.25전쟁에 참전하신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비군인 노무자로 6.25전쟁에 참전하여 군번 없이 군복무를 하셨다.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전쟁터에서 군수물자 보급과 지원 활동을 하셨던 그때 일을 가끔씩 들려주셨다. 수십 년을 잊고 지냈는데 마침 국가보훈처에서 현역 군인이 아니라도 노무자 등 비군인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으면 국가유공자로 선정하겠다는 정보를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국가보훈처는 20일 노무자, 유격대원 등 군인이 아닌 신분으로 6·25에 참전했지만, 국가유공자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보상과 예우를 강화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비군인 참전 유공자들은 7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관련 증빙자료 등이 없어진 경우가 많고, 동료 보증인을 찾기도 어려워 참전 유공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6·25참전자 90만여 명 중 42만여 명이 보훈대상자로 등록하지 못했다. (2019.6.20 연합뉴스 보도)
https://m.yna.co.kr/amp/view/AKR20190620025600504

2019년, 2년 전의 일이다. 이런 뉴스를 보고 나는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서 국가유공자 신청 양식을 다운받아 아버지의 6.25전쟁 때 낙동강 전투를 비롯한 참전 노무자 활동 내용을 적었다. 이때 아버지는 수년간 치매로 요양원에 계셨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시어 아버지로부터 당시 노무자 활동 상황을 다시 듣지 못하고 평소 아버지로부터 들은 참전 활동 상황을 적었다. 그리고 6.25전쟁 참전 중 아버지께서 노무자 복장을 한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동봉하여 의정부에 있는 경기북부보훈지청을 찾아가서 직접 서류를 제출했다.


3주쯤 후에 국가보훈처에서 회답이 왔다. 국가유공자 보훈심사 결과 사진 한 장으로는 참전 확인이 부족하고, 군번이 없으면 인우보증 서류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우보증서(인우증명서)란 특정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이웃이 객관적 사실을 보증하고 증명하는 서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연세가 97세로 백세를 바라보는데 그리고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데 그때 일을 보증(증명)해 줄 이웃을 어찌 찾아 인우보증(증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70년 전 아버지가 6.25전쟁 때 비군인 노무자로 참전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웃)들 그리고 함께 참전했던 동료들은 다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셔도 찾을 길이 없는데 말이다. 참전 활동 사진 한 장으로는 부족하고 인우보증(증명)하라는 말은 국가유공자 신청을 그냥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 없다. 6.25전쟁 통에 참전 활동하면서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 두었어야 했을까.

국가보훈처는 노무자, 유격대원 등 군인이 아닌 신분으로 6·25에 참전했지만, 국가유공자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보상과 예우를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홍보해 놓고는, 그 홍보와는 다르게 적극적인 발굴은 커녕 참전 활동 내용과 그 때 노무자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을 제출했는데도 사진만으로는 안 되고 인우보증 서류를 추가로 제출하라고 한다. 이러한 인우보증을 요구하는 비군인 노무자 국가유공자 신청 방식은 겉으로 보기에만 번지르르하게 홍보해 놓은, 말만 앞세우는 홍보 선전이다. 그림의 떡허울좋은 보여주기식 홍보 선전에 내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섭섭하기 짝이 없었다.

한 장의 사진이지만 그 사진 속 군번 없는 비군인 노무자 복장의 사진이 6.25전쟁 때 찍은 사진인지 심사하여 그 사진이 6.25전쟁 때 찍은 비군인 노무자의 사진이 확실하고, 또 그 사진 속 인물이 현재 주민등록증의 인물과 같은 사람인지를 심사하여 그 역시 확실하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나의 순진한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가서 인우보증할 사람도 이웃도 찾을 길 없고 하여 안타깝게도 그냥 국가유공자 추가 서류 제출을 포기했다.

비록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지만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께 “아버지! 6.25전쟁 참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으셨어요.”라는 말씀을, 큰 선물을 드리려는 작은 효심을 버려야 했다. 자식을 둘이나 둔 서른 살 나이에 비록 현역 군인은 아니지만 군번 없는 비군인 노무자로 6.25전쟁터에서 조국을 위해 봉사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어 유공자로 인정을 못받는 것이 자식으로서 못내 섭섭했다. 정작 아버지 본인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치매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데. 내 마음 속 국가유공자이신 아버지는 그 다음 해인 2020년 6.25 이틀 후 영면하셨다.

6.25전쟁터에서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호국영령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며, 생사고비를 넘나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비록 국가에서는 6.25전쟁 참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자식들은 안다. 아버지께서 비록 현역 군인은 아니지만, 비록 군번은 없지만 비군인 노무자로 6.25전쟁 때 참전하셨다는 사실을. 국가유공자 대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좋아하셨던 노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즐겨 부르셨던 노래를 선물로 드립니다. 이 노랫소리를 들으시며 근심도 걱정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그곳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 2021.06.28 글=김영택


■ "노무자 등 비군인 6·25참전 유공자 적극 발굴해 보상"


[국가보훈처 제공=연합뉴스] 2019-06-20

보훈처 "90만명 중 42만명이 보훈대상자로 등록 못 해"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국가보훈처는 20일 노무자, 유격대원 등 군인이 아닌 신분으로 6·25에 참전했지만, 국가유공자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보상과 예우를 강화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비 군인 참전 유공자들은 7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관련 증빙자료 등이 없어진 경우가 많고, 동료 보증인을 찾기도 어려워 참전 유공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6·25참전자 90만여 명 중 42만여 명이 보훈대상자로 등록하지 못했다.

보훈처는 "지금까지 5만7천436명(생존자 6천597명, 사망자 5만839명)을 발굴해 국가유공자 및 유족으로 등록했다"며 "지난 2년 간 생존자 77명을 새롭게 발굴해 월 30만원의 참전명예수당을 지급하고 병원진료비 감면, 국립묘지 안장 등의 지원과 예우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https://youtu.be/nTEaztgefWE

https://youtu.be/55Wt0HUD6MU

https://youtu.be/wpCItL4dX_


◇ 지난 해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쓴 글

■ 돌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광야에 찬 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너머 눈보라 세차게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날 구원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리던 성도들 한자리 만나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 했던가, 사람의 일생 덧없이 흘러감이라.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던가, 우리네 인생 만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있음이라.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했던가, 인생은 나그네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감이라. 고달픈 인생길 정처없이 떠돌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근심도 걱정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그곳 하늘나라로 돌아감이라.

어느 시인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로 돌아가서, 이 세상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망백(望百)을 넘어 백수(白壽)를 앞둔 아흔여덟의 연세, 8년 간 치매를 앓아 요양원에서 지내시던 부친이 지난 6월 27일(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셨다. 향년 98세.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조문객을 받기 힘든 시기여서 직계가족들만 입관을 지켜보았고 다음날 발인하였다. 고양 벽제화장터 서울승화원에서 한줌 재가 되신 아버지는 이천 큰딸의 집 양지바른 언덕 어느 소나무 아래에 묻히셨다.

경북 군위군 대가족 농군(農軍)의 집 차남으로 태어나셔서 장남 역할하시며 삼촌들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시고 자수성가(自手成家)하신 아버지. 한 많은 이 세상 하직(下直)하시고 하늘나라 먼길 떠나가신 아버지, 이제 이 세상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근심도 걱정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가난 속에서 육남매 키우시느라 맘 고생하시며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셨을 아버지. 삼십 삼년 전 먼저 가신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두번 상처(喪妻)의 아픔으로 정처없는 방랑의 길 떠돌아 다니셨던 별관 어른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고향 그리움도 이제 다 잊으시고 그곳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네
선창가 고동 소리 옛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타관땅 밟아서 돈지 십년 넘어 반 평생
사나이 가슴 속에 눈물 고였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즐겨 부르셨던 나그네 설움 유행가 가사처럼 지나온 자욱마다 서러움과 회한의 눈물 가득 고였을 아버지의 아흔여덟 해의 삶. 고향 땅 몇 마지기를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셨던 아버지. 빈손으로 자수성가하여 자린고비(玼吝考妣)의 삶을 살아가셨던 아버지. 고난의 삶 견뎌내시고 모진 목숨 다 하시어, 환하고 평안하신 얼굴로 누워 계신 아버지, 아버지의 영혼이 천국에 올라가셨음이라.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아흔 여덟 해를 살아오신 한 인생이 한 줌 재가 되었다. 인생은 나그네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인가. 서울승화원 벽제화장터에는 어리디 어린 한 생명이 싹도 피워보지 못한 채 한 줌 재가 되고 있었고, 꽃다운 나이의 한 청춘이 어린 핏줄을 남기고 또 한 줌의 재가 되고 있었다. 검정 예복을 입은 어린 소년, 군복을 입은 수십 명의 청년들이 한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듯 누구도 알 수 없는 각자 타고난 운명의 제 몫만큼의 인생을 살다가 홀로 먼길 떠나는 것일까, 덧없는 인생이어라. 뜬 구른 인생이어라.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신 이후 모든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하였고 또한 모든 장례 일정을 도맡아 처리한 동생 영준과 영일, 지연 동생, 계수씨, 남편의 뇌졸중까지 감당해 가며 눈물의 기도로 주님께만 의지하는 이천 누나, 모두들 고생 많았습니다.

먼길 장지까지 찾아와 준 은우 내외, 정아 내외, 정심 내외 그리고 멀리서 기도로 함께 한 정인 내외도 고맙고, 영정 사진 앞세우고 예(禮)를 다 한 이 서방, 할아버지의 관(棺)을 옮기며 손주 노릇 다 한 승열, 성찬, 웅찬, 지찬, 학균이 수고 많았습니다.

하늘나라 먼길 떠나시는 고인의 명복(冥福)을 빌어주신 판조 고모님, 수자 고모님, 수화 고모, 종대 아재, 종열 아재, 승희 동생 고맙습니다.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그리고 딸들의 지인들과 친구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감사의 인사 글을 씁니다. 금번 저희 부친상에 따뜻한 마음의 위로와 격려 보내주시고,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나라 먼길 떠나시는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풀어주신 따뜻한 위로와 은혜 잊지 않고 마음속 깊이 잘 간직하겠습니다. 언제나 가정에 평안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2020.06.29(월) 메멘토 모리!

부고 알림 저희 아버지 김종호 씨께서 향년 98세의 연세로 소천하셨기에 알려드립니다. 가족들과 함께 고인을 잘 보내드리려 합니다. 코로나로 힘든 시절이기에 조문은 사양하기로 하였습니다. 위로의 마음으로 먼길 떠나는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발인 2020.06.29(월), 장지 서울시립승화원, 상주 김영택 드림 / 2020.06.27(토)

/ 2020.07.04(토)
아버님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글=김영택


●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제망매가(祭亡妹歌) / 월명사

생사로난
예 이샤매 저히고
나난 가나다 말도
몯다 닏고 가나닛고 어
느 가잘 이른 바라매
이에 저에 떠딜 닙다이
하단 가재 나고
가논 곧 모다온뎌
아으 미타찰애 맛보올 내
도 닷가 기드리고다

(삶과 죽음의 길은
이에 있음에 두려워하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같은 나뭇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 세계에서 만나볼 나는
불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다)

● 하관(下棺) / 박목월

관(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下直)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다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스럽고 다정한 눈질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https://youtu.be/8_lmH-WypGc

https://youtu.be/NwTANszFRpA

https://youtu.be/f3AWtl8eC_E

https://youtu.be/iG8GwtJNtao

https://youtu.be/9FNMj1rPU2c

https://blog.daum.net/mulpure/15855314

 

[會者定離]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신 아버지 (2020.07.04)

■ 돌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광야에 찬 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너

blog.daum.net

https://m.yna.co.kr/amp/view/AKR20190620025600504

 

"노무자 등 비군인 6·25참전유공자 적극 발굴해 보상"

"노무자 등 비군인 6·25참전유공자 적극 발굴해 보상" 송고시간2019-06-20 08:11 보훈처 "90만명 중 42만명이 보훈대상자로 등록 못 해"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건물 [국가보훈처 제공=연합뉴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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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daum.net/mulpure/1585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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