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민지의 꽃' 정희성 (2021.05.17)

푸레택 2021. 5. 17. 08:11

 

 

■ 민지의 꽃 / 정희성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꽃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ㅡ 시집 《시(詩)를 찾아서》(2001)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민지의 모습을 통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도 순수하고 맑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의미와 가치를 가지게 됨을 깨닫고 있다. 화자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다섯 살배기 민지와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의 속물적인 태도를 반성허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존재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있다.

모두 16행으로 된 단연시인데, 대화체의 어법을 사용해서 아이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을 대비시켜 현장감과 생동감을 극대화 하고 있다.

시적 전개 과정에 따라서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1~4행에서는 시적 주인공인 민지를 소개하고 있다. 강원도 산골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설정은 이어지는 민지의 행동에 사실성을 부여하면서 그녀의 순수한 행동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나의 제자이기도 한 민지 아버지는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고 있다는 점에서 욕망에서 초탈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시적 상황 또한 민지의 동화적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해준다.

5~9행에서는 다섯 살배기 민지의 순수한 행동을 소개된다. 아침 일찍 일어난 민지는 자신이 들기에는 버거운 ‘물뿌리개’를 들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등의 풀에 물을 주고 마치 사람들에게 하듯이 ‘잘 잤니’ 하고 아침 인사를 한다. 이러한 민지의 태도는 자연과 친구처럼 살면서 자연스럽게 교감(交感)하는, 자연친화적 삶의 모습인 것이다.

10~12행은 그런 민지와 화자와의 대화를 통해 양자의 생각이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라는 내 질문에 ‘꽃이야’라는 민지의 대답과 ‘그건 잡초야’라고 ‘나’의 생각에는 큰 대조를 이룬다. 즉 민지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동심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있지만, 화자는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자연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라는 것은 화자가 ‘잡초’라고 반박하려다 그만두는 행동으로 세속적 가치관으로 자연을 바라본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13~16행은 민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터득한 깨달음을 피력하고 있다. 자신이 반박하고자 했던 잡초라는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라고 진술한다. 즉, ‘잡초’라는 말은 인간 중심의 속물적인 생각이 투영되어 있어서 자연의 이치를 반영할 수 없으며,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킬 수 없지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꽃이야’라고 한 민지의 말은 자연의 실재를 담고 있기에 생명력을 지닌 자연의 본성을 발현시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 작자 정희성(鄭喜成, 1945~)

시인. 경남 창원 출생.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인은 시대의 모순과 그로 인해서 핍박받는 도시 근로자들의 아픔과 슬픔을 주로 다루면서 절제된 언어와 차분한 어조로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시집으로 《답청》(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시(詩)를 찾아서》(2001), 《돌아다보면 문득》(2008) 등을 펴낸 바 있다.

ㅡ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 2021.05.17 편집 택